| 작가회 신입회원 가입 안내 |

몇 년째 만나지 못한 C작가와의 약속이 아니라면 나는 통영행을 포기하고 싶었다. 조롱조롱 조팝꽃이 만개한 철에 어디든 가고 싶고 동료 작가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쉬고 싶기만 했다 .

열일 제쳐두고 하동으로 내려간 이유였다. 쉬자. 만사 다 잊고 푹 쉬다가 몸 좋아지면 돌아오자 그렇게 작정하고 떠난 발걸음이었다. 나는 차멀미로 울컥쿨컥 토악질을 해가면서  5시간 여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먼 길을 달려갔다.

장작불을 넉넉하게 때서 온돌방을 달군 다음 나는 밤인지 낮인지 분간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바람소리가 휘파람으로 들리기도 하였고, 하늘에 오르지 못한 용이 몸부림치는 소리같기도, 혹은 유령이 떼를 지어 몰려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흉흉했다.나는 옴싹도 하지 않고 자고 또 잤다. 하는 일 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섬진강을 거슬러 온 바람은 동산에 밝은 달이 떠오르다가 지구밖으로 떠밀려 갈듯이 아니면 내 영혼까지 뒤흔들만큼 그 기세가 사나웠다. 바람소리 비소리가 내 신음소리를 압도하는 셈이었다.

뜻하지 않게 전화가 왔다. 전화는 나의 귀가를 서두르게 하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채근하는 내용이었다. 만약에 기일을 어기면 의도하는 일이 한 달 이상 지연되는 결과를 빚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 일은 시초에서부터 내가 간여한 것이므로 중도에 그만둘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괜히 오지랍이 넓어 남의 일 내 일 구분하지 못하고 덤벼든 게 탈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 일을 협조했고 나는 자리에 누워 또다시 신음소리를 흘렸다. 아, 내 건강! 내 건강은 어디로 갔는가 하고 사울왕에게 쫓기는 다윗처럼 장탄식을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통영가는 날이 다가왔다. 통영에 가겠다고 약속해버린 것이 후화막급이었다.

통영행은 설마 죽기야 할라구! 하면서 오기를 부렸다. 그리고 5월 5일. 통영에서의 1박2일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순신장군의 기상이라도 배우고 온 것일까. 청마시인의 <깃빨> 같은 표상을 만난 것일까. 그도 저도 아니라면 박경리작가의 문학정신이 내 졸고 있는 영혼을 일깨워 준것일까.
"힘 들으셨지요?" 새로 선출된 L 이사장님이 질문했을 때 나는 웃으며 답했다.
"마치 기를 받은 것 같은데요"
사실이 그랬다. 소협에서 봄세미나를 겸하여 통영시와 통영문인협회가 주관하는 박경리기념관 개관식과 제2기 추모제 행사에 참가하여 바다와 마을과 해송이 어우러진 박경리 공원, 기념관, 묘소를 돌아보는 사이 내 불건강은 말끔히 사라져 간 것 같았다.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에 매료된 20대처럼 이것은 하나의 환각이나 허상일지 모르지만 나는 동료들과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경남 하동에서 일차로 몸의 원기를 회복해서인가. 바닷가를 산책하고 경상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처음 맛본  멸치회도 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한국의 나폴리, 아름다운 예술의 고장 통영에서의 하루가 내 삶에 윤활유가 되어준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심신이 아플 땐 지체말고 여행을 떠나보는 것인가. 아무래도 내 인생의 지표에 변경요인을 체크해 볼 시기에 이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