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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변영희 |
날짜 : 10-04-13 14:04
조회 : 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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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전화기를 붙들고 수다떠는 일이 대폭 줄어들었다.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친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전화 대신 핸드폰 문자 메시지, 또는 이메일 등은 수시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동시에 상대방의 답도 즉시로 받게 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몸이 아프거나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진 날에는 전화통화는 말할 것도 없고 핸드폰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조차도 거들떠 보기 싫어지는 경향이 있다. 지난 해 겨울에서 시작한 내 깊은 우울은 봄이 되어도 꽃필 줄 모르는 꽃나무들처럼 한동안 침묵으로 살아가도록 종용했다.
부득이한 외출외에는 거의 집안에 갇혀 지냈다. 연기 안나고 냄새 없는 무연쑥뜸을 손바닥에 올리고 시름시름 앓거나 졸며 4월을 맞이했다. 그동안 써놓은 소설작품이 성에 안차도 그걸 어떻게 고쳐볼 엄두도 내지 못했고, 하면 뭘해 쓰면 뭘해 하면서 비관론자로 굳어가는 중이었다.
'쌍계사 십리 벚꽃길 어때요?"
신명넘치는 법우의 전화에도 나는 시쿤둥했다. 물론 벚꽃 개화 시기가 지연되어 그녀를 따라 나섰더라도 仙界를 방불케하는 십리벚꽃길의 낭만은 상상하기 어려울 터였다.쌍계사를 돌아나오다 화개장터에서 섬진강 재첩국을 사먹고 구례마을의 산수유만 보고 왔다는 소식이었지만 그녀와 동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나는 별 섭섭함이나 일말의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그러저러한 마음의 움직임에도 나는 한껏 둔해지고 봄나들이에 대한 흥미가 도통 일지 않았다.
"논문병이야. 엄마는 하던 일 끝마치지 못하면 꼼짝도 안하잖아!"
딸아이는 제발 지리산 바람도 쏘일겸 쌍계사 벚꽃이든 홍쌍리의 매화마을이든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들쑤셔댔어도 그야말로 나는 묵묵부답, 날마다 먼 산만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하려고 노력도 기우리지 않았고 애초에 그럴 의욕도 동기도 얻어볼 수 가 없었다. 우울증의 실체가 바로 그런 것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핑핑 잘 흘러갔다. 하루 지내기는 악간의 지루함이 있었지만 한 주일 한 달 단위는 쏜살 같았다.
걱정이 슬슬 머리를 쳐들었다. 뭐든 해야지, 살아있는 생물이 마냥 퍼질러 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새벽부터 밤까지 그야말로 뼈빠지게 자존심 긍지 체면 다 던져두고서 가족들을 위해 생업에 몰두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건 몰염치한 행위나 직무유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책상에 앉아 보았다. 하지만 거의 완성단계에서 컴 미숙으로 날아가버린 <논문> 을 떠올리기만 하면 머리꼭지로 불이 치솟곤했다.시뻘건 불길이 훨훨 타올랐고 그 기세가 내 생명을 압박하고 압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세계로 서서히 견인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어린이 대공원으로 봄맞이 가자!"
무슨 어린이 대공원 같은 소리? 너나 잘하세요. 나는 전에 살던 동네친구의 제안을 냉정하게 사절했다. 그리고 다시 은둔의 시간 속에 자신을 꾸겨 넣었다. 봄인지 겨울인지 계절에 대한 인식이 가물가물했고, 진달래가 피건 개나리와 영춘화가 피건말건 관심밖이었다.
꽃이파리처럼 한 장의 편지가 동창회에서 날아온 날 오랫만에 여고 동창의 전화가 왔다. '꽃구름이 장관을 이룬 천년고도 경주 여행에 초대한다' 는 편지를 받고 마음이 설렌다는 여고시절의 친구였다. 입맛이 뚝 떨어지고 살맛도 함께 떨어진 차제에 여고동창회가 주관하는 경주여행은 마침 잘 된 일이라고 했다.그 친구도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가. 마치 내 심경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경주라면 교회 수련회 관계로 수차례 다녀왔지만 여고동창끼리는 수학여행 이후 첨이라며 반색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였다. 글쎄다 룸메이트로 아니면 버스에 나란히 앉아가는 동행자로? 나는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사이 내 마음 속에 작은 변화가 움트고 있음을 감지했다. 세상에 "너밖에 없어" 라니 얼마나 고무적인가. 구름 걷히듯 우울증 장막이 서서히 물러가자 나는 들고 갈 짐들을 챙겼다. 그 말 한 마디는 본시 내가 듣고자 했던 말이었던가. 나는 친구의 우정을 내 본심에 대비시키면서 밤늦도록 먼 길 떠날 채비를 했다.
"너밖에 없어"
꿈 속에서도 친구의 그 말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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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 |
10-04-14 1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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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그토록 오랜 시간을 고통스러우셨네요.
사람은 한때 그렇게 스럼프에 빠지곤 하지요.
우울증은 아니시지요.
글쓰는 사람은 우울증 걸리지 않는다네요.
변선생님. 너무도 솔직하신 고백의 수필 잘 읽고 배우고 겁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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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4-16 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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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선생님
얼굴 이름 우리 다 알면서도 그리고 청주에 계시다는 것도 다 알면서 우리 여기 이렇게 만나뵙네요.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비올랴면 먹구름 끼듯, 먹구름 잠시 끼고 비 쏟아졌으면 한답니다.
내 영혼을 훔뻑 적셔줄 단비를 고대하며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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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04-14 1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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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 진즉 말씀하셨으면, 저라도 가서 어떻게 해 볼것이었는데, 아무리 그런다고 개나리 진달래가 활짝 피었는데, 그렇게 춘래 불사춘만 외치고 있다니요, 사월의 노래가 콧노래로 넘쳐납니다. 목련꽃이 또 활짝 피었다니까요. 이제 털고 일어섭시다. 고목같은 내마음에도 봄이 왔는데요.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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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4-16 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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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고목같은 내 마음' 이라고 하셨습니까?
어찌 자신을 고목에다 비유하셨을까.
내가 보니 늘푸른 나무더만....올봄은 꽃 색깔이 별로 안좋아요.
목련도 벚꽃 봉오리도. 겨우내 혹독한 추위가 문제였는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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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0-04-15 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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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 너밖에 없어," 그 친구분의 말씀처럼 선생님은 오직 세상에 한 분뿐이신 보물같은 분이십니다. 글이 되지 않아도, 날이 궂어 마음이 심란해도, 와야하는 봄이 저만치서 서성거려도, 우수는 지나고 청명은 갔습니다. 모두모두 마음 탓이라 했습니다. 이 봄, 다 가기전 봄처녀되시어
살랑살랑 봄 따라, 꽃따라 마음 한번 싱숭생숭 설레보시지요. 항시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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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4-16 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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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문 선생님
천안함 침몰에도 경주 여행 가야 돼?
팔미도 등대 꼭 보러 가야 돼?
시인 친구가 말했습니다. 너무 죄송한 거 아니냐고.
저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간절하게. 그들 가족의 심정으로.
이래저래 2010년 봄은 우울증이 도지고, 우리 모두는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깨닫기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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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0-04-15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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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는 사실이 새삼 고요한 늪속에 가라 앉는 느낌이랄까요. 생각, 망상, 방황들만 분주하고 정작 내가 서야 할 자리, 그 자리를 찾지 못하고 마음밭에 쓸데없는 번뇌만 가득한 요즘입니다. 봄꽃 잔치가 출렁이는 세상밖에서 변선생님과 어깨를 곁하고 좋은 말씀이라도 듣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잠시 작품세계로 빠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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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4-16 0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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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법정스님을 생각하며.
캐나다 이민 20년 만에 처음 길상사에 왔다는 참한 여인 한 사람이 내 팔을 꼭 붙들고 함께 다녔지요. 법정스님의 생전의 모습 돌아보며 그녀와 나는 좋은 추억을 공유했습니다.
어쩌면 법정스님이 맺어주었을지도 모르는 소중한 인연.
첨 만나는 얼굴이면서 이리 친숙할까. 그녀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사찰순례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답니다.그러는 사이에 번뇌, 망상, 방황하는 심리 다 흘러가겠지요.
원명화 선생님께 감사를.
淨蓮心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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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영 |
10-04-17 1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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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심 보살님이 우울증이라니요. 아니겠지요
좋은 봄이기를 바랍니다. 아산 외암마을의 전통주
연엽주 한잔 권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뜨거워 진다내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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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4-18 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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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영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봄이 봄같지 않은 것이 마음을 서늘하게 합니다.
술 한 잔의 유혹, 그러나 어디까지나 술 한 잔일 뿐이지요.
더 고단한 이들에겐 사치로 들릴 이야기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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