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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변영희 |
날짜 : 10-01-04 19:45
조회 :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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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인 듯 생시인 듯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무려 일곱 번 쯤이나.
대체 누구야. 왜 남의 단잠을 깨우나.
구시렁을 여러 차례 한 다음에 하는 수 없이 전화기로 다가갔다. 몇 걸음 옮기는데도 나는 휘청 넘어질 것만 같다.
달포전 한국을 떠나 LA로 떠난 아라네 생각이 간절하여서 그들을 소재로 쓴 소설 원고를 손보느라 새벽 4시나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방바닥은 따스하고 이부자리는 포근하면서 가볍고 방안 공기도 서늘할 만큼 기분 좋았는데 그 시간에 전화가 온 건 솔직히 너무 이른 것이다. 겨울 아침 6시였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른 시간에 오는 전화는 대개 안좋은 소식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내 목소리가 껄끄럽게 전해졌던지 수화기 저쪽에서는
" 아, 죄송, 눈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어쩌고 하면서 전화를 끊을 태세다.
그 음성이 왜 그리 싱그럽게 들려오는 것인가. 겨울철 파란 하늘에 새 한 마리가 고공 비행을 하듯 쌩한 기운이 느껴졌다.
"누구? 시지요?"
그러나 나는 더듬거렸다. 뒷골이 휑하니 빈 것 같이 몽롱함과 아련함의 복판인 데다 도통 전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른 시간대에 전화를 받아본 일이 그다지 흔한 일도 아니므로.
끼니는 한 두끼 굶어도 잠은 안자면 안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이다.
" 눈이 멋있게 내려서.... "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엉거주춤 전화기를 붙들고 서 있는 나에게
"엄마! 눈이야 눈. 눈이 전화한 거야. 근데 엄마는 왜 그리 말을 못해."
출근준비를 서두르던 딸애가 핀잔인지 타박인지 톡 쏜다. 그 순간 나는 몽롱함과 아련함의 와중에서 화들짝 벗어났다.
방밖으로 나오니 과연 장관이었다. 학교 건물, 나무, 승용차, 길도 하늘도 온통 백색의 나라, 눈꽃 만발이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펑펑 쏟아져 내리는 눈발을 보자 나는 제일 먼저 <Y중령과 함박눈>을 상기했다. 눈사람이 되어 걷던 남산길이 떠오르면서 그리움이 목줄기를 타고 강렬한 기세로 차올라왔다.
눈이 내리면 '오 헨리' 의 [ 20년 후 ] 처럼 중앙공원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여고 때 친구 생각, 그리고 첫 눈 오는 날 누구든 먼저 눈을 발견한 사람이 전화하자던 L집사님이며, 며칠 후 태백으로 눈꽃여행을 가자는 나이가 지긋해도 여전히 장난끼 넘치는 D 대학원 원우들이 생각났다.
한없이 몽롱하거나 아련해서 전화 응대를 더듬거리고 우물거릴 양상이 아니었다. 그리운 추억들에게 눈꽃소식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솟구쳤다.
"명식아. 너 보구 있니? 눈오는 거 말야"
정신없이 전화를 걸다가 올 겨울 최고의 적설량을 기록한 빙판길에 딸애를 맨입으로 보내야 했다. 엊저녁에 시금치국을 한 냄비 끓여 놓고서.
"하여튼!!
딸아이의 탄식소리가 현관을 나서자 나는 본격적으로 동서사방으로 다이알을 돌려댔다.
전화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대학원에서 헤어진지 6,7년이나 됨직한 S녀, 세 번 째 시집을 상재하고 숨어버린 O 시인. 그리고 H 회장님. 눈꽃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편이었다. 우리는 양쪽에서 동시에 전화를 하고 있던 거였다. 나와 그들의 목소리가 하나같이 철이 좀 덜 들어 보일 정도로 들떠 있었다.
세상에나. 눈이 온 게 그렇게 좋아?
어이 없는 건 그네들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눈 때문이었다.
송이 송이 눈꽃 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밖에도
골고루 나부끼네 아름다워라
아라의 노래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한국에 첨 오던 그 해 겨울,그애가 밤이 이슥하도록 00초등학교 운동장에 나아가 눈사람을 뭉쳐와 베란다에 모셔두었던 기억도 진하게 가슴을 적신다.
함박눈은 좋은 선물인 셈이다. 2010년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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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0-01-05 0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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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오늘 서울은 모처럼 내린 눈으로 여백이 가득(?)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가만히 시간의 여백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의외로 편안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바빴나 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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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1-05 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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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같으신 이진화 선생님.
이몸은 달떠서 전화를 온 사방에.
철안든 백성들이 나 말고 꽤 있어서 더욱 부채질.
그러다보니 밤중엔 얼마나 힘들던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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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01-05 0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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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우기는 힘들어도 눈오는 날은 그렇게 마음이 흐뭇합니다. 우리 누구나 그렇게 느끼는가 봅니다. 저도 어린애처럼 눈오는 것이 좋아 뛰어다녔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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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1-05 1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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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말고 마당있는 집 살 때는 이른 아침 싸리비를 들고 눈쓰는 재미.
아무도 밟지 않은 골목길 맨처음으로 디디는 즐거움.
눈덩이 뭉쳐 입에 넣어보기도, 멀리 던져보기도.
출근길 이웃사람들이 흐뭇하게 바라봐주는 골목길 눈치우기.
그게 언제이야기?
아,아 세월은 가고 추억은 눈에 녹고.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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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0-01-05 0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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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면서 소녀같은 마음이 전해져 와서 새해초 부터
기분이 상쾌해졋습니다. 금년 한해도 좋은글 많이쓰시고
복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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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1-05 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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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쓰려고 하는데, 그러길 노력하는데
아, 그만 눈이 와버려가지고
펄 펄 눈발이 퍼부으니 종일 창밖만 내다보며 분주한 일과를.
감사하고요.
선생님도 경인년 새해에 복 듬뿍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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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0-01-05 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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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시까지 작품을 쓰시는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눈을 보고 흥분하며 즐거워하시는 그런 마음이 작품쓰기에
매달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금년 한해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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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1-05 1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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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여수를 가야 하는데 폭설이, 이게 가로막는군요.
레드 와인 한 병 정도는 구입을 마쳤습니다.
레드 와인 보다는 쐬주가 졸은가요?
아니 엄동설한에는 막걸리가 제격이라구요?
회장님을 위해 축배를 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멀었네요. 봄이 오자면.
올핸 기쁜일만 있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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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0-01-06 1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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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듣게 되는 본국 뉴스를 통해 눈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정도를 넘으니 피해도 있고 발이 묶이는 불편도 있군요.
모쪼록 무탈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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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1-07 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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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미역국 전문이거든요. 사시사철 우리 가족들이 미역국을 아주 잘 먹어서요.
그런데 먼저 번에 한국을 떠난 애들도 이상스럽게 미역국을 잘 먹어요.
음력설엔 떡만두국! 그 맛도 괜찮지요.
맛의 원천이 솜씨인지 재료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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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0-01-10 2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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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생님은 만년 소녀 같으세요.
글도 마음도 순수하고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글 많이 읽게 해 주십시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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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1-11 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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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다고 호들갑은 진탕 떨어놀고 빙판길 겁나서 방콕 신세인 걸요.
내 기분같아서는 열 두번도 더 인사동거리나 우이동 숲길을 걷고 싶은데 아들 딸의 윽박지름- (절대 밖에 나가시지 말라우야!)
몇 년 전 눈오고 녹은 듯 하다 그 위에 또 눈내려 유리알이 돼버린 줄 모르고 태백산에 올랐다가 정형외과로 직행한 쓰라린 기억.
"엄마! 지금 어디야?" 아이고 수사관보다 더 무서워요.얘들이ㅎㅎㅎ
그동안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책 사그리 다 읽는 거지요.수필집 소설집 그리고 교보문고에서 딸애가 사온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등등
최복희 선생님 고맙습니다. 좋은 날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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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13 2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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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서울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곳 청주에도 보기 좋을 만큼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내린날은 걸어서 출근해도 그 눈이 싫지 않습니다. 코트 깃에 하얗게 쌓인 눈을 털며 현관을 들어서는 멋이 있으니까요. 선생님의 소녀 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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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0-01-14 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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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시절 눈내리면 책접고 설거지통에서(그 시절은 고3 아니라 고시생이라도 청풍명월 양반 고장인 우리들의 집에서 청소 설거지 작은 빨래는 기본) 손건지고 중앙공원으로 달려갔답니다.
약속 특별하게 한 건 없는데도 희. 수. 자 걔들 벌서 와서 지저굴지저굴.
지지배들 들개처럼 잘도 싸돌아다니더니.
눈오면 지금도 전화 붙잡는 지지배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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