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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09-12-31 13:36
조회 :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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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孟) 언니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맹(孟) 언니'로 불리던 한 여학생이 떠오릅니다. 저와 가까웠던, 저를 동생처럼 잘 대해 주던 여학생이었는데, 전 그녀의 결혼식에 간발의 차이로 가보지 못하고 입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입대일자는 그 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맹 언니의 이름은 '맹충자(孟忠子)', 편입생이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강의실 문을 밀치니 낯선 여학생이 덩그마니 앉아 있었어요. 치마 길이가 무릎 위 한 뼘이어서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녀는 우리나라에 갓 알려진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던 것이었죠. 누군가 소개를 하라고 하자 제스처까지 써가며 독일어로 술술 말하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문법적으로 정확치 않은 독일어였어요. 그녀 말을 어림해 보니, 서독에서 간호사로 있었고, 어떤 일로 귀국하여 쉬던 중 이왕지사 독일어를 전공하러 우리 과에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린 그녀 나이가 자그마치 스물여섯이나 된다는 데 놀랐지요. 하긴 강의실 옆자리에서 보니 눈 꼬리에 보일 듯 말 듯 은은한 잔주름이 잡혀 있었어요. 그래도 가무잡잡한 얼굴과 웃을 때 살짝 보이는 덧니가 귀엽긴 했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 우리들더러 동생뻘이니 잘 지내보자고 안 해도 좋을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 발언은 씨알 굵은 복학생들의 격분을 일으켰습니다. 강의 후 그녀를 성토하는 임시 과회의가 열렸어요. 몇 년씩 꿇었거나 제대한 복학생들에게는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그들은 사과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다른 강의가 시작되어 교실을 비워야 했으므로 큰 충돌로 번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지요. 그 일 이후 맹 언니(어린 축들이 그렇게 불렀음. 복학생들은 그저 '맹'이라고만 불렀고.)는 잠시 의기소침한 빛이 역력하였는데 얼마 후엔 그것도 잊은 모양으로 다시 활달해졌습니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대했는데-그런 느낌은 개개인에게 특히 과장되게 전해지는 법이어서-한때 그녀가 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적이 염려되기도 했어요. 그저 제가 제일 어린 편이라 누나처럼 잘 대해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끔 그녀가 제겐 오히려 동생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과에서 야유회를 가던 날이었습니다. 맹 언니가 기차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꼭 쥐고 있으라고 일일이 주의를 주고 다녔어요. 그러다 맹 언니 자신이 어디엔가 차표를 떨어뜨렸다고 해서 한바탕 법석을 피웠지요. 그런데 차표는 다름 아닌 그녀 핸드백 속에 있었지요. 어느 날엔 스웨터를 입고 왔는데 한쪽 소맷자락을 꼭 내려 말아 쥐고 있었어요. 왜 그런지 물어 보았더니 소매치기 당할까봐서라나요. 시계가 귀한 시절이긴 했지만 어이없게 느껴졌지요. 다음 날엔 글쎄 아예 시계를 핸드백 속에 넣고 왔다니까요. 기차표와 시계사건 아니더라도 맹 언니는 우리와 얘기하면서도 거울을 꺼내어 머리를 매만진다든지, 날씨가 덥다고 하이힐을 벗어 놓고 다리를 포개고 앉는다든지, 껌을 짝짝 소리 내어 씹기도 해서 불쾌함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맹 언니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그녀에겐 속된 것, 수선스러움과 천진스러움이 함께 섞여 있었어요. 그녀의 나이브함과 철딱서니 없는 행동의 조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적이 혼란스러웠는데, 맹 언니의 집에 다녀온 그녀와 절친한 동료여학생의 이야기는 놀라운 것이었지요. 맹 언니에겐 쌍둥이 동생이 있는데, 동생은 까무잡잡한 언니와는 대조적으로 흰 얼굴에 무척 아름답다는 것이었습니다. 몹쓸 병으로 초등학교를 어찌어찌 졸업했을 뿐 줄곧 방안에 누워 지내는데, 맹 언니가 독일에서 일찍 귀국한 것은 그런 동생을 돌보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 주었어요.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집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맹 언니의 성격 형성에 관한 것이었지요. 그녀의 잘 가늠되지 않은 성격은 동생에게서 전이된 것이 아닐까. 동생에 대한 연민으로 동생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복합적 성격이 외부현실과 부딪혀 특이한 기질로 변한 것이 아닐까. 그녀의 정신연령도 일정 부분 성장을 멈추었으며, 그녀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무렵 맹 언니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던 참이라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맹 언니와 상상 속 동생의 모습은 비극적인 대비로 각인 되었으며 가끔 둘이 하나로 합쳐지기도 했습니다.
2학기가 되자 그녀는 띄엄띄엄 학교에 나오더니 11월이 되자 아예 그만 두더군요. 어느 날 청첩장이 과 세미나 룸에 놓여 있었는데 이름이 이상했어요. 어라, '맹윤신(孟允信)'이 누구지…? 그 사이 그녀 자신 촌스럽다고 느낀 이름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성토하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대체로 적막하였지요. 과에도 남자가 많은데 굳이 외부 조달할 필요가 있느냐, 시집을 가면서 이렇게 깜짝쇼를 할 필요가 있느냐… 맹 언니가 어느덧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게 우선적으로 든 감정은 섭섭함이었습니다.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식을 미리 귀띰 좀 해주면 어떻게 되나? 그러면 동생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생의 처지도 걱정되었습니다. 아무렴 맹 언니이니 동생 문제는 알아서 조치를 취했으리라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녀의 결혼식엔 참석치 못하였습니다. 그에 앞서 제가 군에 입대한 때문이었습니다.
휴가를 나왔을 때 맹 언니를 만나진 못했습니다. 그녀의 결혼을 두고 뒷이야기가 있었어요. 원래 사귀던 사람이 아니라 나이 많고 돈 많은 사람의 후처로 들어갔다는 것이었지요. 소문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제겐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그녀를 닮았을 것임에 틀림없는 창백한 동생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맹 언니가 공연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닐 것이리라 하는 생각도 함께...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 게재 글.
2009. 12. 24(목)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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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09-12-31 1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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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회 회장님, 사무국장님, 여러 선배 문인님들께 지면을 빌어 안부 여쭙니다.
새해 뜻하는 바 이루시길 비오며 댁내 평안, 건필을 기원합니다. 김창식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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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12-31 1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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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선생님! 오늘 한 해의 마지막 날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더 좋은 일들이 터지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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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09-12-31 1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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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의 후의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댁내 평안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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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31 1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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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이 다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좋은 글 많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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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09-12-31 1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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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열심히 노력하겠사오니 앞으로도 잘 이끌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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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09-12-31 2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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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창식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즐거웠습니다
선생님의 낭만적인 감성과 필치가 등장인물마다 생명력을 주어
읽는 사람도 만나보고 싶을 만큼 매우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새해에도 좋은 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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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09-12-31 2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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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의 따뜻하고 은은한 글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선생님, 새해 댁내 평안과 문운을 기원합니다. 사진기술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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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0-01-01 0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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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언니가 지금도 어느곳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같이 바랍니다
금년 한해도 좋은 작품 많이쓰시고 소원성취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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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0-01-02 1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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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철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선생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맹언니는 코믹하면서도 때묻지 않은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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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0-01-01 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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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참신한 글이군요.
젊음으로 신선함이 풍깁니다.
새해 아침 청량음료를 마신 느낌!
좋은 많이 읽게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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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0-01-02 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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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새해 좋은 일 가득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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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
10-01-03 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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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옵니다. 그렇지요. 삶속엔 내가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요. 허나 그것을 다 이해하려 하는 것도 무리일 것 같아요. 김창식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선택하는 최선에서 자기를 이해 시키니까요. 결국 자기와의 협상이요 화해요 거래가 아니겠습니까.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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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0-01-04 1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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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현 선생님, 후의와 배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이끌어 주십시오.
맹언니와는 '속 팔도강산'이라는 영화의 독어 대사를 같이 더빙하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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