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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09-12-15 09:25
조회 :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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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온 편지
임병식
오늘, 내 앞에서 화들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확률로 보면 거의 제로로, 기대하기도 어렵고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무슨 일이냐 하면 예전에 내가 기증을 했던 편지가 원주인을 찾아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우체부가 벨을 눌러 ‘등기 우편물이 왔다’고 외치기에 나가보니 얄팍한 등기 우편물을 내밀었다. 궁금하여 얼른 보낸이부터 확인했다. ‘박천식’이라고 적혀있는데,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내 맞아'하고 그를 떠올렸다. 바로 편지의 주인공인 ‘유희남’ 선생의 부군임이 기억났던 것이다.
즉석에서 내용물을 뜯어 확인했다. 세 가지가 들어 있었다. 즉, 시를 작곡하여 국군의 날에 연주한 시디와 유희남선생의 편지, 그리고 박천식 사장의 서신이었다. 한데, 유희남선생의 편지는 10년 전에 내가 받았던 것으로, 재작년 선생의 문학관에 기증했던 것이 아닌가.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임병식선생님께
창가의 적설이 바람 불 때마다 반짝이며 부서집니다. 눈비신 한 순간의 소멸을 보면서 아름다운 것은 대부분 단명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임선생님. 편편이 주옥인 작품을 보면서, 그 넉넉한 품성과 탁월한 사유의 폭에 감탄하곤 했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선생님, 참 이상합니다. 선생님의 격려와 용기를 주시는 편지는 편지 이상의 , ...바닷가 내음이 납니다. 아마 여수의 아름다운 바다 내음이 아닐런지요? (중략) 선생님, 선생님 글은 누구보다도 깊고 그윽합니다. 탁월합니다. 그 깊고 그윽한 향기가 깊은 사유와 통찰력에서 빚어지고 체험의 진솔함에서 우러나는, 이 시대의 틉틉함을 헹궈내는, 신선한 생수의 맛입니다.(이하생략 )
1999. 1. 30
유희남 올림’
경위로 보아, 편지가 내게 다시 돌아온 것은 남편 박천식 사장이 혼란을 빚은 것같다. 서신 내용에 ‘저희 아내가 남기고 간 여러 가지를 정리하다보니, 아내가 쓴 편지가 선생님께 미쳐 보내드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 발견되어 늦게나마 보내드리는 것을 이해해 주시며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써 있었기 때문이다.
유희남 선생은 한국수필 작가회에서 활동하다 10년 전 작고하신 분이다. 글재주가 출중하여 많은 이들이 일찍 세상을 등진 것을 아쉬워하고 아까워 한 분이다. 생시에 수필과 시와 소설의 장르를 넘나들며 평범함을 뛰어넘는 감성으로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분이다. 대표 수필집으로는 ‘삶의 향기 바람에 날리며’가 장안의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소설 ‘아카로스의 노래’는 방송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용산 한국전쟁기념관 입구에 세워진 시비 ‘님이시여’는 작곡이 되어 주요 진중음악으로 애창되고 있기도 하다.
이 편지가 기증된 내력은 이러하다. 한국수필작가회에서는 이태 전 문학기행 장소를 선생의 문학관이 있는 곳으로 잡았다. 그때 이왕이면 선생과 관련 있는 유품을 모아서 전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이 모여져서 참여의 뜻으로 보내게 됐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용은 이미 공개된 것이며 나는 그 복사본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되돌아온 편지를 보면서 기묘한 운명 같은 걸 느낀다. 이거야 말로 주인은 나니 내가 잘 간직하라는 뜻이 아닌가. 내가 살아오면서 이런 일이 내게 또 있었던가 생각해 본다. 또 한번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일도 기대하기 희박한 일로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은 일이다. 등산을 나갔다가 지참한 전정가위를 깊은 산속에서 잃어버렸는데 그게 되돌아 왔던 것이다. 험한 곳이라 되찾은 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데, 주어다 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멀찌기 뒤다라 온 사람이 숲을 헤치고 오는데 뜻밖에도 그게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것이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편지는 그보다 더 되돌아올 확률이 없는 것이 아닌가.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기증을 한 것이므로 되돌아 올 전제 자체를 막아놓은 일이다. 그런데 그게 귀신 곡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편지를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어찌됐든 우여곡절 끝에 되돌아온 것이니 잘 간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편지를 썼던 고인도 내게 보냈던 것이 아닌가. 되돌려 지기를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가 생전에 내가 보낸 편지는 편지 이상의 어떤 용기를 주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만큼 내가 잘 간직하면 선생의 영혼도 좀더 편안히 안식을 취하게 되리라.
나는 비로소 공개하지만, 선생을 한 작가로써 진심으로 존경했다. 학창시절 어느 대학의 백일장에서 3년 연속 장원을 한 경력 때문이 아니다. 그 자유분망한 필치가 경이로웠고, 삶의 신산함 조차도 영롱하게 빚어내는 능력이 빛났기 때문이다. 이는 예사 비상한 재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재주도 없으면서 턱없이 뛰어난 천재들을 사랑해왔다. 내가 만나고 교류한 유희남선생 또한 내가 보기에 적어도 감성의 영역에서만큼은 천재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선생이 이제 막 수필의 묘미를 터득하고 날개 달고 날아오르려는 마당에 쓰러지고 만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죽음이요, 운명이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오직 이 편지나마 잘 보존 해주는 것으로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기려주고 영혼을 위로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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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09-12-15 1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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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참으로 희한한 스토리를 읽고 있는 것 같아서 저어기 흥미롭습니다. 아마 돌아가신 유희남 선생님의 간절한 정성과 友情이 그런 형태로 나탄 난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고이 간직하시면서 깊고 넓은 故人의 衷情을 고이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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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15 1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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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내용물의 편지를 받고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무슨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느지,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유희남선생님이 우리 작가회에 소속하고 있었다는 존재감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스타작가가 나와야 그 조직도 돋보이는데, 그래도 그분이 그런 자리매김을 해주었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박천식사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문학관이 서있는만큼 우리가 잘 돌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주신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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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12-16 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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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유희남 선생님 노래방 십팔번 "한계령"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 한데 님은 가고 없습니다. 갑자기 더 유희남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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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16 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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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선생님의 '한계령' 노래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살아온 인생역정으로 보아 매우 처연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유선생님과는 그리 깊게 교유하지는 못했습니다.
등단작품을 읽고 그 순도높은 감성에 매료되고 말았지요.
그 무렵 김미정선생님의 '돌팍길 연상'이란 작품을 읽었는데, 두분이
어떤 사람인가 참 궁금해 했지요.
그런데 나중 안일이지만 이 두분은 절친했다는 걸 알고 감성의 싸이클이
비슷한 사람은 서로 통하는구나 생각했지요.
우리 작가회출신 여성 작가중에서 저를 맨 먼저 인정해 주신분도 유선생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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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09-12-16 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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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남 선생의 생전에 받았던 그 편지를
그분의 사후에 다시 받으셨으니 참으로 기이합니다.
저는 유희남 선생을 뵌 적이 없지만 단지 '사슴뿔' 만으로도
그분과 마음으로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그의 영혼은 유작 속에 깃들어 있는 듯합니다.
한계령에 가보고 싶어집니다.
저 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버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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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16 1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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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람은 가고 작품과 그리움만 남았습니다.
언젠가 (진주모임 ) 모임에서 제게 다가와
'선생님은 어쩌면 딱딱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섬세한 글을 쓸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건성으로 한 말은 아니구나 생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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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09-12-16 1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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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회장님. 그저 마음이 숙연해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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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16 1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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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선생님, 반갑습니다. 우리 동인들 끼리도 서로 좋은 인연을 쌓아갔으면 합니다.
문학은 결국 사람을 이야기 한 거고, 좋은 인연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즈은 어찌 사람들 사이가 너무 무미건조해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날을 새우고, 남의 마음을 다치게 하며, 삭막해 져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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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12-16 2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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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박사장님께 시디와 친필 서신을 받았습니다.
문학기행 때 참석 했었고, 다녀온 느낌을 써서 문학관으로 보냈었는데
그 답례로 박사장님은 깊은 관심과 애정을 줘서 고맙다는 편지였습니다.
저 외에도 여러 분이 받았을 줄 압니다.
죽은 아내를 위해 문학관을 지어놓고 아내의 넋을 기리는
자체가 감동스럽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임회장님은 아주 특별한 사연의 우편물을 받으셨군요.
임화장님께 색다른 글을 쓰시라고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작용한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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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17 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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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선생님도 서신을 받으셨군요.
최선생님 말씀처럼 그래서 이런 글도 한편 쓰게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선생님께서 내년초에 문학관 비품배치를 다시 한다고 해서 공간이
있으면 작가회원 작품 (대표작품집)을 한권씩 비치할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그렇게 검토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관심도 더 가고 개인적으로도 방문하는 회원이 있지 않을까 해서
지요.
육필진본의 편지를 모두 기증해 버려 한편 가지고 있을걸 했는데
잘됐다는 생각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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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09-12-17 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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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문학기행 때 가서 그곳에 전시된 유 작가의 유물 등을 촬영하과 와서 그걸 정리하여 그 부군에게 보내 드린 적이 있어요. 그;후 어느날 고려인삼 한 상자가 배달 되었더군요.
그 선물보다 박천식 사장의 먼저 간 아내에 대한 사랑에 감격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녀들이 결혼 전이던데 알게 되면 축하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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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17 0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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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촬영을 하여 정리해 드렸다면 큰 선물이 되었겠습니다.
따뜻한 선물을 받으셨군요.
편지에서도 확인했지만 전화를 드려서 말씀을 들어보니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는 분에게 열쇠를 맡겨놓고 한번씩 내려가 본다는데, 문학관이 상시
개관되어 관리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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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12-17 1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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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분을 잘모르지만 훌륭한 분들이 그렇게 칭찬들을 하시는 것을 보면
멋있게 피어 보지 못하고 쓰러지신게 무척 아까운것 같습니다
참 신기한 되돌림 같기도 하고 우연이라기 보다는 한번 다시 기억해보라는
하늘의 뜻이 있는것 아닌가도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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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17 1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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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우편물을 뜯어보고는 조금은 섬뜩했습니다.
그러다가 '이것은 나보고 보관해 달라고 다시 되돌려 보냈구나'
생각을 했지요.
선생님의 수사활동의 글을 많은 독자들이 기대할것입니다.
옛날 연속극에 나온 '법창야화'처럼 사건별로 그려나가면 홍미진진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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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09-12-25 1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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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그 편지가 다시 돌아왔군요.
저도 얼마전에 박천식 선생님과 통화를 했는데
유희남 선생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동인들이 버스 한 대 가득 타고 청주와 대전을 돌아
유희남 문학관과 묘소에 들렀던 그날의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살아가는 일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아름다운 추억이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줍니다.
연말연시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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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25 1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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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이 선생님이 회장하실때 문학기행을 그곳으로 하셨는데
깊은 배려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우리 동인중에서 문학관이 세워진 분은 유선생님이
유일한데, 우리 작가회에서 좀 신경을 써야 할듯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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