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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09-12-23 04:12
조회 : 2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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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센트짜리 횡재
박 영 보
“이것좀 봐. 백프로 면(綿)이래. 일 나갈 때나 외출을 할 때 입고 다녀도 좋겠어.”
공구 섹션에서 이것 저것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두장의 티 셔츠를 들고 와서 옆구리를 쿡 찌른다. “음, 색깔도 괜찮네. 다른 색깔이 있으면 몇 개 더 사지 그래”
“있긴 있는데 다른 색깔은 별로야. 그렇지 안아도 두개를 사서 번갈아가며 입을려고 그래.”
마치 횡재라도 만난듯한 얼굴이다. 마치 어린 시절 설빔 옷 하나를 받아들고 좋아하는 어린아이를 바라다 보고 있는 것 같다. 사용하기에 편리하며 색상이나 디자인이 흉하지 않으며 거기에 가격까지도 비싸지 않으니 이 정도면 됐지 뭐 명품이 따로 있느냐는 게 이사람의 생각이기도 하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 겠다. 그렇게나 좋아하니 나 또한 덩달아 좋아하며 수선을 떨 일은 아니지만 딴지를 걸 일도 아니지 않겠는가. 사실 나 자신도 속으로는 세금을 합한 구입 가격이 일불 팔 센트만으로 외출이나 근무복으로도 충분할 것같은 셔츠 한장의 가치에 대한 계산을 해본다.
우리는 집 근처의 99센트 스토어에 자주 가는 편이다. 집에서 두세불럭 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는 곳이다. 집안에서 수시로 쓸만한 물건들은 거의 대부분을 갖추고 있는 만물상과 같아 편리한 점도 많다. 자잘한 공구로부터 사무용품, 주방기구에 어린이 용품도 있고 전자 부품은 물론 야채나 음료 또는 캔이나 병같은 저장식품도 있다. 부엌에서 음식준비를 하다가도 갑자기 조미료 같은 것이 필요할 때 오가는 일도 큰 일이 아니다. 가격도 무슨 종류이든 개당 일 달러가 넘는 것이 없고 어떤 것은 두개나 세개를 합한 가격이 99 센트이니 우리같은 서민들이 단골로 삼을만도 하다.
그런데 저렇게나 좋아하고 있는 아내를 바라다보고 있자니 왜 이렇게도 미안하고 안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걸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와 함께 지내온 지난 세월들을 되돌아 본다.
삼년만 있으면 이사람과 결혼을 한지도 만 사십년이 된다. 이제까지 지내오는 동안에도 이 사람은 항상 이런식의 삶을 살아온 여자이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크건 작건 간에 복잡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홀히 여기지도 않는 사람이다. 겉모습만으로 자기 자신의 격을 낮추거나 높일 수 있다는 생각 같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방문을 해온 손님들이 귀국하기에 앞서 샤핑 안내를 할 때가 있다. 내가 이곳에 살아온지 삼십년이 넘었지만 베벌리 힐스의 로데오 샤핑거리를 가보게 된 것도 그분들 덕분이었다. 우리 집에서 삼십마일 정도의 거리지만 그곳에 가는 길 안내는 오히려 그분들이 해 주었다. 그분들은 미국내 명품 거리를 꿰차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지 운전을 해주는 기능인으로서의 역할일 뿐이었다. 이태리의 유명 디자이너 제품이라며 드레스 한벌에 몇천불이 되는 실크 원피스나 몇 백불 되는 블라우스를 망설임 없이 들고 나서는 모습을 바라다볼 때마다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이 불쌍한 여자야. 어쩌다 나같은 쭉정이를 만나 이렇게 생 고생이냐. 여자는 남자 하나만 잘 만나면 팔자가 핀다는데. 지질히 복도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쯧쯧~”이라고 한마디 해주면 “흥, 그래도 알기는 아네~.”라며 해해거리는 여자.
나의 이런 농담같은 한마디는 아내에 대한 미안하고 죄스러워하는 나의 진심이기도 하다. 각자마다 다른 ‘눈높이의 차이’일 뿐이라며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비관하지도 않고 그런 분들을 부러워하거나 그들 앞에서 주눅이 들 사람도 아니다. 눈높이를 높게 책정을 한다해서 그것이 기쁨이나 행복의 높낮이까지도 맞추어주지 못하고 그 높이를 낮춘다고 해서 기쁨이나 행복의 도까지도 낮춰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기도 하다. 아내의 이런식의 삶을 살아가는 자세나 말의 한마디 한마디는 나의 이러한 죄스러워하는 마음들을 다독여 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가끔 이런 아내를 고마워한다거나 다행이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기만 해도 되는가를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다행으로만 여기게 된다면 자칫 나 자신의 현재에 안주를 하게 된다거나 타성화 될지도 모를 일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고마워하며 다행이라고 여기기만 하기에 앞서 이사람을 위한 마음과 행동의 자세에 대한 어떤 변화를 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뚜렷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지도 않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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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12-23 2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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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옷 선물이 최고인것 같습니다. 저도 살아오면서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원피스 한 벌 사준때가 있었는데 동네 방네 자랑하던 아내의 기쁜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답니다. 여성은 선물로 옷 아니면 화장품이 제격인 것같습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부부사랑을 몸소 실천 하시는 박영보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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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12-24 0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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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말 연시의 선물도 특별히 생각해 둔 것이 없고 시나 한편 써줄까 생각중에 있습니다. 마음을 알리기에 무난할 것 같고 밑천도 들지 않고 생각을 해가며 약간의 시간만 내면 될 일이니 불만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만복하심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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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09-12-25 1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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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가격도 가격이지만 가치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싸고 작은 물건을 통해서도 기쁨을 얻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요.
한 편의 시를 연말 연시 선물로 준비하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사모님이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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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12-26 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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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치란 금액으로나 名聞만으로 판단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비록 저가의 작은 물품일 지라도 꼭 필요할 때 부담도 없고 고마운 마음으로 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해에도 만복하심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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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12-26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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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생님, 글 잘읽었습니다. 더이상 욕심 가지지 마시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냥 편안한것이 행복한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ㅎㅎ
글에서 나타나있듯이 두분 부부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의미도
모두 갖추고 있으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행복하시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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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12-26 2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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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알타리무 20파운드를 99센트에 세일을 해서 사다가 총각김치를 담았는데 1 갤런짜리 김치병에 하나 가득 나오더군요. 저만의 레시피로 담은 이 총각 김치가 맛있다며 며느리까지 포함한 식구들 모두가 식당김치보다도 맛이 있다며 환장들이더군요. 집에 있는 양념재료와 뒷마당에는 파가 있으니 꼭 99센트 이상의 돈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2주 정도 밥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식품에는 세금도 붙지 않지요. 제 음식솜씨를 뽐내려니 <환장>이라는 용어 말고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한 점 용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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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26 1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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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아릅답게 느껴집니다.
한해동안 열심히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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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12-26 2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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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감은 물론 저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이 더해가는 것 같습니다. 살아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후회를 하기에 앞서 자신에 대한 한계를 가늠해 보며 변명의 구실을 찾기도 해 보지만 개운치가 않습니다.이 해를 보내며 쌓여있는 묵은 찌꺼기들을 흘려 보내고 싶습니다. 큼지막한 새해를 맞으려는 욕심에 앞서 그냥 이른 아침 창문을 열어놓고 산뜻한 바람을 쏘이며 햇볕이나 맞을 차비나 해야 되겠습니다. 새해에도 건필하시고 사모님께서 쾌차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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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12-28 1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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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말년시에 따뜻한 선생님의 글 한 편이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어쩌면 저희 처지와 비슷한 점이 많아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엊그제 제 생일이었는데 남편의 생일 선물은
전날 밤 '내일 아침 미역국 끓여아지?' 이것이 전부입니다.
40여 년간 살아오면서 받은 선물이라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제 대답은 '고맙네요' 생일을 잊지않고 기억해 줘서' 였지요.ㅋ
선생님께선 '시' 선물을 계획하고 계시다니 아주 멋지십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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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12-29 0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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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은 단순히 머릿속에 간직해 두고 있는 마음의 문을 살짝 열어보는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그 한마디 말씀 속에는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최선생님께서 <미역국>이라는 글의 제목을 마련해 주셨군요. 33년 전의 일을 소재로 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제목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새해에도 기쁨으로 가득찬 나날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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