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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권섭 |
날짜 : 12-12-06 21:08
조회 :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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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편
내가 다니는 ‘PC’에서는 애경사를 치루고 나면 점심 때 당사자들이 과일이나 떡, 고기로 대접한다. 과일 중 단감이 난 때에는 감 한개, 시루떡은 발포스티렌 수지 도시락에 담아 비닐 봉투에 넣어 준다. 이 날은 팔순을 맞이한 분이 낸 것으로, 절편 한 개를 비닐에 담지도 않고 접시에 나눠준다. 점심상에는 쇠고기를 양배추와 삶아서 요리한 것을 스테인리스 스틸 큰 그릇에 담아, 탁자마다 상추와 같이 나왔다. 절편은 손에 묻으면 찐득하고 가져 올 수 없으니, 밥을 적게 먹어도 절편은 먹어야 했다. 다른 때 같이 비닐에 담아주면 ‘점심과 같이 먹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집에 오니 아까 먹었던, 따뜻하여 부드럽고 촉촉했던 절편이 생각난다. 어려서 부터 가끔 어쩌다 먹은 것도, 인이 박 인 것 같다.
아내는 여자들 나이또래 모임이 있어 참가하고 나보다 두 시간 후에 집에 왔다. 모임에서 선물을 주었다고 현관에 도착하자마자 선물을 까 벌리며 싱글 벙글 이다. 선물은 즐거움을 준다. 인간관계에서는 요긴한 것이다. 선물은 때로 낚시 밥이다. 언젠가 아는 사람으로 부터 선물을 받고 할 수 없이 보험을 든 적이 있다. 그 후 아내가 해지 하라고 닦달하여 원금도 못 받고 해지했다.
포장지를 뜯으니 유리그릇이다. 아내는 퍽 기분 좋은 낯에 “아들 갔다 주워야지!” 아들을 챙긴다. 비닐봉지에 담은 절편도 가져왔다. 나는 맨 절편을 받아 그 자리에서 먹어야 했는데, 여자들은 비닐에 담아주었다. ‘아는 분이 두 개를 주었다’고 자랑한다. 나는 ‘유리그릇’ 선물보다는 절편에 눈이 갔다. 절편이 탐이 나고 먹고 싶었다.
겨우 한 개 먹은 것이 삼삼하다. 아예 안 먹었다면 생각이 나지 안했을 것이다. 탁상위에 올려놓았다. 반가워서 먹을 생각으로 웃으며 절편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아내는 독수리 먹이 채가듯 행행연(悻悻然)하게 빼앗아 간다. 무안하다. 나에게 참으로 가각(茄刻)하다. 함께 오래 사는 형편에 이럴 줄 몰랐다.
“이것은 내 것 이야!”하며,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손도 대지 못하게 독차지 해 버린다. 대 여섯 살 먹은 꼬마가 자기가 애지중지한 장난감을 또래가 만지니, 못 만지게 ‘확 도로 빼앗아 가는 형국’이다. 데퉁스러운 행동이 말살(抹殺)스럽다.
식탐이 내 자신 나락에 빠졌다. 창피하고 겸연쩍다. 부끄러움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갈가위가 야속하다. 자녀들도 장성하여 뿔뿔이 살고, 정년퇴직 후 둘만 사는 집에 ‘달라고 사정해도’ 부끄러워할 사람이 없지만, 면구하고 쑥스러워 휑하니 내 방으로 왔다.
어려서 어머니께서는 먹을 것이 생기면 아버지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챙겨 주는 것을 보았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는 아버지 때문에 편하게 살아서 챙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같이 사니 섬기고 받들었다. 새로운 것은 아버지를 챙긴다. 시골에 살면서 농사로 늘 힘들게 사셨다. 여느 여인들이라면 불평하고 짜증내겠지만 그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어머니와 아내는 25년 간격 인데 이렇게 다르니 나의 운명이다. 서글픈 생각이 든다.
아내는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쓰는 일만 했다. 돈을 벌어 본적이 없다. 그녀는 오히려 ‘남편 혼자 벌어, 삼남매 가르치고 키우느라 고생했다’고 자기 공을 내 세운다.
어머니는 양파 나 채소가 나오는 철에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난다.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4~5㎞ 읍내에 가서 판다. 요즘 시세로 기 만원 안팎 이지만, 그렇게 돈을 벌어 아버지께 드렸다.
「창세기」에, ‘에서’가 어느 날 사냥도 못하고 빈털터리로 고픈 때, 집에 왔다. 팥죽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형의 배고픔을 알고 동생 ‘야곱’이 제의를 한다.
“형! 팥죽을 줄 터이니 장자 권한을 나에게 줄 수 있소.” 배가 고픈 때에 불의하게 장자권이 동생에게 갔다. 나중에는 형의 노여움으로, 동생을 죽이려 하니 그는 고향을 떠나 외삼촌 집에서 20년 동안 고생을 해야 했다. ‘사흘 굶으면 남의 담장 넘지 않을 양반이 없다’고 한다. 자고로 식탐은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위아래, 물불,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 것만 같다.
아내의 식탐이나 나의 식탐이나 오십 보 백 보다. 아내의 허물처럼 느껴지지만 나의 식탐이 문제였다.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성급하게 식탐을 부린 것이 잘못이다. 그간 조급한 성미 때문에 많이 실수했다. 나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허우룩하여 내 방문을 잠그고 잠적했다. 처처하다. 얼마 후에 아내가 문을 열어 달라고 한다.
아내는 “방에 꼭 들어 갈 일이 있다”고 한다. 나는 “들어 올 수 없다.”고 문을 꽉 잠갔다. 아마 ‘늦게 깨닫고 절편을 혼자 먹을 수 없어 가져 온 것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나는 속없이 곧 빙그레 한다. 사나이 체면에 화를 내고 방에 들어 왔는데, 군시럽게 느껴져 열어주지 안했다. 가살을 부리는 언행으로 여겼다. 아내의 정체가 서운하여 감치다.
문이 잠긴 방에서, 나 혼자 마음을 돌려 먹어 본다. 그래도 그간 힘겨운 삶의 역경 때 마다 반려자가 아니었던가.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도,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가만히 고개 끄덕여주는 그가 아닌가! 그간 내가 받은 것, 나와 살면서 고생한 것을 떠오르니, 미워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젠 산 날 보다 살날이 적은 때가 아닌가!
순하여, 젊었을 땐 억울한 일이 있으면, 호수처럼 맑고 촉촉한 물기로 젖어 있던 사람. 한 때는 눈빛만 보아도 마음과 마음이 교류되어 가슴을 뜨겁게 한 사람. 내가 이 세상 떠나면 그래도 가장 많이 슬퍼할 사람. 후회하고 다시 후회하여도 이제는 내 마음을 돌려야 할 때다.
지금 까지 직선으로 살아온 인생이었다면, 그래도 이제 부터는 아내와 x·y 축이 만나는 절편(截片)과 같은 삶이 되어야 할까 본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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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월 |
12-12-06 2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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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관계도 자칫하면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 아닐까 합니다.
사소한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건 사는 재미일 수도 있네요.
창세기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의 얘기도 결국 식탐이었다니
새로운 발견인 듯 싶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 관계가 어려워지는 가운데
연민의 정으로 서로 살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재미있는 수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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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2-12-07 0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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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월 부회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참으로 부지런 하십니다.
밤 늦게 저의 댓글 맨 처음 찾아 오셨으니 말입니다.
부부관계는 정말로 유리그릇처럼 다루기 조심스럽고 주의해야할 평생 숙제일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연민의 정으로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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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2-12-06 2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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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오늘 팥죽을 먹으며 장자의 명분을 팔지 않고 장자의 명분을 지키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먹었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장자이기 때문이죠. 팥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 생각이 나서였습니다. 아내가 쑨 팥죽이 그렇게 맛이 있었거든요. 아무튼 이제 삼십년 넘게 함께한 아내와 더러 티격태격 할 때도 있지만, 저도 둘만 남아 걍 오손도손 지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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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2-12-07 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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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지난번 출판기념회 때 그냥 얼굴만 스치고 지나 서운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카페에서 늘 뵐 때마다 반갑고 행복했는데 말입니다.
팥죽은 왠지 입맛이 땅기는 음식중의 하나 인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뿐 아니라 중동에서도 팥죽은 일찌기 인기가 있는 음식이었던 모양입니다 요.
나이들어 자녀들도 제 갈길을 갔으니 내외가 다정하게 살아야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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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2-12-07 0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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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형편을 좌고우면함이 없이 진솔하게 쓰는 것은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김선생님은 수필가의 자질을 타고 나셨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며 아내를 아슬아슬하게 몰아붙이는 대목에서는 조마조마했는데 말미에서 자기를 반성하고 애정을 드러낸 것이 야박스러움을 감추어 주었습니다.
김선생님의 천진무구함은 제가 엑스포 행사시 두달 이상을 동행하며 충분히 파악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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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2-12-07 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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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고 사랑하는 임회장님! 과분한 말씀입니다. 성격이 단순하고 성미가 급하여 흠덩어리 입니다.아직 철이 덜 든 것 같고 늘 부족함을 느낌니다. 임회장님께서 칭찬해주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40여년을 함께 살아오고 늙어가니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야겠지요.
아직 인생 수련이 덜 된 저 무단히 노력하며 살아야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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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2-12-07 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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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날입니다 , 댓글이나 지어 올리지요 ㅎㅎㅎ
우선 김선생님이 잡수신 절편이 정말 맛 있어 보입니다.
저도 어제 아침에 아침 운동을 하고 걸어 오다가 풍년떡집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갓 나온 절편을 보자 다짜고짜로 달려들어 순식간에
5조각을 먹어 치웠답니다, 주인 아주머니하고 잘아는 처지라
웃기만 했지 낯선곳이었다면 미친사람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식탐으로말할것 같으면 저보다 더한 사람이 별로 없을줄 알았는대
김선생님이 호적수가 될것 같네요. 다만 아내는 식탐이 전혀 없어서
그동안 맛있는 것은 저하고 아이들 차지였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언제인가부터 비만을 이유로 음식이 보이는대로 감추는 바람에
한사람은 감추고 한사람은 찾아내야 하는 처절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안타까운 형편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전투가 계속되어야 할지, 특히
한밤중에 잠은 안오고 무엇이든지 입에 넣어야 되는데 죽을 지경인것입니다
요즈음은 어떻게 된것이 입장이 바뀌어 싸우는 용기도 점점 쇠퇴하여
불쌍한 표정으로 동정을 구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슬플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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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2-12-07 1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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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정선생님! 어쩌면 그렇게도 누에고추에서 실이 졸졸 나오듯이
그렇게도 맛깔쓰런 말씀을 하십니까. 탄복이 남니다.
저의 식탐은 태어난 해가 돼지 뛰라서 그런지, 천성이 식탐이 많게 태어나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20대 후로는 키는 174센티에 몸무게 70키로 위아래이니 살이 찔 줄을 모릅니다.
눈오는 날 군고구마가 생각나지만, 오늘은 이제 집에서 고구마나 삶아 먹을까합니다.
좋은 답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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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2-12-07 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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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나이 들면 애 된다는데 김선생님의 천진한 모습은 아내로부터 사랑받기에 충분해보이십니다. 마지막 결론, x·y 축이 만나는 절편(截片)과 같은 삶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이 절묘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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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2-12-07 1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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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강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늘 인자하신 모습 선하며 아름다운 목소리가 저만치 들림니다.
저나 아내나 야물지 못해 지금까지 큰 소리 없이 그럭저럭 살아 온 것 같습니다.
격려 말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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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12-13 0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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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담백하신 내용에 잔잔한 감동을 받습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행행연하다, 가각, 가살, 감치다 등등 국어공부가 별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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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2-12-13 1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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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가님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우리의 글을 찾으려고 해 봤습니다.
격려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강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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