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파트라 그런지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노인네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5층에 사는 노인과 2층에 사는 노인댁이 다른집에 비해서 특이하고 대조적이다. 모두 80을 넘은 노인들인데 5층에 사는 노인댁은 영감님과 마나님외에 아들 며느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영감님은 젊은 시절에 사업 수완이 좋아서 월세가 상당히 나오는 상가도 몇 개나 가지고 있고 아들은 의사로 근무하고 있어서 이웃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집안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날부터 영감님이 치매증세가 생기는것 같더니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마나님이 젊었을때 주색잡기로 평생 속을 썩이더니 다 늙어서도 병수발로 고생을 시킨다고 불평을 하면서 딸네집으로 가버렸다. 혼자 남은 영감님은 할수 없이 아들과 며느리와 살게 되었는데 아들 내외는 중국 동포아줌마를 영감님한테 붙여 간병도 하고 집안 살림도 하도록 하였다.

몇 달쯤 지났는데 내 아내가 “사내가 젊었을때 처신을 잘해야 늙어서도 대접을 받지. 쌤통이다”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잘못을 진작에 알고 있었으므로 이제와서 무슨 시비인가 하고 내심 불쾌한 심정이었는데 나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5층 영감님에 대해서 하는 소리였다. 중국동포인 아줌마가 야구르트 아줌마에게 전한 말을 야구르트 아줌마가 동네 부인들에게 전파한 모양이다.

아들 내외가 영감님이 치매증세로 오락 가락 하는 틈에 영감님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을 야금 야금 자기들 앞으로 돌려 놓아 마나님과 딸이 이를 알고 쳐들어와서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다. 또 며느리가 재산을 빼앗을때는 영감님에게 간농을 떨더니 요즘에는 영감님을 심하게 구박한다는 것이다.

아침 9시만 되면 노인정으로 영감님을 내몰고 저녁 5시까지 절대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냄새가 난다고 구박하고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심하면 욕설도 하고 떠밀기도 하고 그런다는 것이다. 특히 영감님이 5시까지 기다리는 것이 너무 무료하여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 오면 그 자리에서 다시 내쫒아 영감님이 동네 놀이터에서 서성 거리며 아이들 노는 모습을 우두커니 쳐다 보며 집에 돌아갈 시간을 채운다는 것이다.

요양원이나 치매 병원으로 모시지 왜 그렇게 불편하게 사는지 물어보니 중국 아줌마는 아들 내외가 재산을 독차지 하려면 영감님이 돌아 가실때까지 집에서 모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형제들에게 재산 차지한 것을 도로 내놓아야 되기 때문에 그럴수 없다는 것이다.

그 영감님은 결국 돌아 가셨는데 영안실에 가보니 마나님도 안보이고 딸도 안보이고 아들 며느리만 몇 명 되지도 않는 문상객들과 담소하고 있어서 씁쓸한 기분으로 되돌아왔다.

2층 노인 부부는 역시 아들 내외와 살고 있는데 두분 모두 약간씩 치매증세가 있으나 전세 사는 집안 형편상 요양원 같은 곳에는 가지 못하고 며느리가 모시고 사는데 이웃 사람들의 평에 의하면 며느리가 그리 잘하지는 못하는것 같다. 그대신 언제나 영감님과 마나님이 꼭 붙어 다닌다, 영감님은 풍끼가 조금 있는것 같고 마나님은 무릎 관절이 많이 좋지 않은것 같다.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 산책할때는 물론 외출을 할때도 손을 꼭 잡고 불편한 몸을 서로 의지하며 다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얼마전에 외출했다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두 노인이 놀이터 앞 벤치에서 서로 몸을 기대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마침 시원한 바람도 불고해서 나도 노인들과는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영감님이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나님의 얼굴을 두손으로 계속 쓰다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머리도 쓸어 내리고 하는 모습이 마치 젊은 연인들을 연상케하는 것이었다.

누가 퍼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말에 의하면 그 노인 부부는 잠을 잘때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 마나님의 친정집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애 결혼을 한 부부인데 영감님이 워낙 배운것도 없고 가진것도 없어 자식들도 변변히 가르치지 못했으나 두 내외의 금슬은 비할데가 없이 좋았고 치매 증세가 있은 다음부터는 부부간에 무슨 약조를 했는지 거의 두손을 놓지 못하고 붙어 산다는 것이다. 아마도 둘중 한분이 정신이 온전할때 또한분을 위해 손을 꼭 잡아서 떨어지지 말자고 한것 같다.

어제 저녁에도 노인 부부가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물론 손은 잡고 있었다. 영감님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꺼내는 것이었다. 삶은 달걀이었는데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깜빡 잊어먹으셨는지 달걀 껍데기가 거의 으스러져 있었다. 영감님은 그 껍데기를 하나 하나 꼼꼼히 벗기더니 조금씩 떼어서 마나님 입속에 넣어드리는 것이다. 마나님은 잘도 받아 잡수신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영감님 손에 있는 달걀을 조금 떼더니 영감님 입속에 넣어 주시는 것이었다. 두분다 표정이 없는 것이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오래 오래 사시라고 빌어 드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