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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진화 |
날짜 : 12-05-07 03:12
조회 :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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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 떼는 날
이진화
봄이지만 새초롬한 날씨가 빗방울을 흩뿌리는 날, 정든 친구가 찾아온다고 했다. 모처럼 쉬는 주말인데도 벗과 이야기하고 반죽을 하며 속풀이 수제비 한 그릇 해먹는 재미가 어찌 그리 흔한 일인가.
내가 초벌 반죽한 양푼을 건네면 친구는 익숙한 솜씨로 반죽을 치댄다. 요리의 달인답게 그녀는 반죽의 점도와 질감, 냄새와 색깔을 보고 ‘우리밀이구나, 콩가루와 녹차가루도 넣었네. 손에 안 붙는 걸 보니 기름도 좀 들어갔고…’ 하며 손을 놀린다. 그러나 나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주는 비장의 재료가 들어가 있다는 걸 슬쩍 숨기고 있다. 미식가인 그녀가 과연 그걸 알아차릴까. 내심 기대가 되고 긴장감이 들어 혼자 웃음이 나온다.
빗방울이 굵어지며 천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의 리듬이 경쾌해질 무렵, 구수한 국물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진다. 달고 시원한 국물 맛을 내는 죽방멸치와 기장 다시마에 무와 마른 버섯, 양파, 대파 흰 뿌리를 삼베 주머니에 넣고 펄펄 끓이는 중이다. 감자, 애호박을 썰고 양념장을 준비하면서도 절로 침이 넘어간다.
노련한 손놀림과 웃음 깃든 이야기를 들으며 숙성된 밀가루 반죽은 건강한 중년 여성의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탄력이 있다. 이제 됐다 싶으면 둘이 가스레인지 앞에 나란히 비켜서서 찬물에 손을 적셔가며 반죽을 얇게 늘려서 펄펄 끓는 다시국물에 담방담방 떼어 넣는다. 넣자마자 떠올라 나풀대며 춤추는 녹차 수제비를 보면 외할머니의 펄럭이는 유똥 치마가 연상되고, 자신만만한 손놀림으로 연못 수면에 물수제비를 띄우던 동네 사내아이의 웃음 띤 표정도 떠오른다. 그러나 마냥 미적대면 안 된다. 손을 민첩하게 놀려야 한다. 불어버리면 맛이 없어지니 서두르자고 친구와 눈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평소에 먹던 대접 대신 큼직한 국수 그릇을 꺼내서 수제비를 푸짐하게 퍼 담는다.
마침 얼갈이와 열무를 넣어 국물을 자작하게 담은 햇김치가 알맞게 익었다. 수제비에는 별다른 찬이 필요 없고 그저 열무김치나 깍두기 한 가지를 놓아도 밥상이 넉넉하다. 찬밥 한 공기를 곁들여서 먹어야 좋은 이유는 어릴 적부터 뜨거운 수제비에 그렇게 찬밥을 말아 먹던 추억 때문이 아닐까.
수제비를 먹으면서도 이야기보따리를 끝없이 풀어내던 친구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더니 ‘가만, 이거 반죽에 뭐가 들어갔기에 이렇게 매끈하고 야들야들하지?’하고 나의 비밀을 알아차려 버린다. ‘달걀? 우유?’, ‘아니. 맞춰 봐’, '그럼 동물성이야, 식물성이야? ‘ 수제비를 먹다 말고 느닷없이 스무 고개가 벌어졌다. 말하기 좋아하는 친구의 수제비 그릇은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고, ‘응, 아니.’ 입 다물고 대답하며 수저질에 열중하는 내 이마에는 촉촉이 땀방울이 맺힌다. ‘삶은 감자 으깬 것 맞지?’ 역시 프로 주부답게 그녀는 열 고개 안에 답을 맞혔다.
사실 삶은 감자를 넣은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밀가루가 모자란듯한데 마침 삶아놓은 감자가 있기에 으깨서 넣어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반죽을 할수록 찰지고 부드러운 것이 구수하기 하여 평소에 하지 않던 방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게 어디 어디 음식에만 국한 된 일일까. 나는 음식에 대한 기사나 영상물이 나오면 유심히 보는 편인데 새로운 배합이나 간단하지만 요긴한 비법을 한 가지씩 알게 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특히 만들기 쉽고 먹기 좋고 맛있는 음식은 일상생활에 쏠쏠한 기쁨과 활기를 준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늘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일을 소재로 해서 배합하고, 숙성시키고, 익히고, 담아내어 자기만의 맛과 향기를 창조하는 것은 흥미진진하고 신비로운 과정이다.
다음에는 수제비 반죽에 무엇을 새롭게 넣어볼까. 혹시 잣을 믹서에 갈아서 넣어보는 건 어떨까. 아니다, 실은 수제비 한 그릇 같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따스하고 속 편하며 힘이 나는 그런 수필 한 편을 써보는 게 꿈일 따름이다. 비오는 날엔 쫄깃한 수제비 반죽을 떼 넣으며 오래된 친구를 기다려 보자. 수필은 그런 후에나 천천히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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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2-05-07 0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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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 이제 바로 여름입니다. 사람들 모두가 입을 모아 올해는 봄이 실종되어 봄옷을 못입었다고 한답니다. 여름이 오면 장대같은 빗줄기가 생각납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 바라보며 저도 수제비 해서 먹으며 옛추억 건져봐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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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2-05-10 0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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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올 여름 더위도 여간 아닐 것 같습니다.
입맛 없을 때 수제비랑 국수 해드시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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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2-05-09 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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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바쁘실터인데 이렇게 좋은 글을 써셨습니다. 저도 수제비를 무척 좋아합니다. 이선생님은 수제비에 일가견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언제 맛 한번 보여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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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2-05-10 0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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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선생님, 가평 잣국수를 먹으며 칼국수나 수제비에도 잣물을 갈아 넣어볼까 생각도 했답니다.
혹시 동인들이 수련회라도 한다면 수제비 끓여먹기도 가능하겠지요.
특히 반죽은 남자분들께 맡기면 제격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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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 |
12-05-09 1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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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맛있는 수제비 비법을 배웠습니다. 조용조용 친한 친구과 속삭이듯 대화하시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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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2-05-10 0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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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한동안 못 뵈어서 궁금했습니다.
요리의 달인이시니 여전히 맛있는 요리로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시겠죠.
건강하고 상쾌한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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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2-05-13 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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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를 수필과 연계시켜 써낸 솜씨가 맛있는 수제비와 함께 가히 일품입니다.
수제비 자장면, 만두는 저의 단골 메뉴였는데.
지금은 밀가루 반죽 그것이 힘들어졌지요.
수제비 이야기 침이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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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2-05-25 0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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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수제비,자장면, 만두, 칼국수는 참 친숙한 음식들인데
외식을 해도 십중팔구 그 중의 하나를 고르게 되더군요.
밖에서 먹는 수제비는 손맛이 모자라 반죽이 거의 딱딱하고 찐득거려 아쉽습니다.
여름철에 입맛 잃지 말고 맛난 음식 찾아 드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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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2-05-13 1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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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 치러내신 선생님, 두루두루 편안하시기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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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2-05-25 0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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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문 선생님, 감사합니다.
신행 왔다 가고 이제서야 잔치가 겨우 끝났습니다.
문학기행 때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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