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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동호 |
날짜 : 10-08-27 12:14
조회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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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정동호
청령포에서 역사를 본다. 어린 임금의 애가를 듣는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남한강 상류, 육지 속의 작은 섬 청령포를 바라보며 나룻배를 탄다.
사랑하는 중전과 생이별 하고 피눈물을 곱씹으며 털거덕 거리는 어가에 몸을 실었다. 궁궐을 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마지막 길을 끌려서 간다. 말 못하는 황소는 터벅터벅 달구지를 끄는데 길가에 늘어선 백성들은 붉은 눈시울로 어린 임금을 원통해 한다. 궁궐을 떠나 온지 이레 만에 이 강을 건넜다.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것도 모자라 귀양을 살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 열일곱 살 폐왕이 강을 건너면서 흘린 통한의 눈물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아버지 문종이 승하한 뒤, 열두 살 어린나이로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시시로 밀려드는 검은 그림자와 수양 숙부의 눈치는 그가 감내하기에 너무 힘겨운 일이었다. 불안과 공포 속에 지켜낸 3년간의 긴 세월, 차라리 임금의 자리를 내어놓는 게 편했을 만도 하지만 상왕으로도 대군으로도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는 신세를 어쩌랴.
성삼문을 비롯한 여섯 신하들의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가고, 청령포에 유배되는 몸이된다. 아버지 문종이 승하한 지 5년, 임금에서 상왕으로, 대군에서 서인으로 결국에는 귀양까지 가게 될 줄이야.
청령포는 청청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 싸여있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나무다.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서도, 깎아지른 절벽에서도 잘 자란다. 여름날의 폭풍우와 한 겨울의 모진 추위에도 늘 푸르름을 지켜온 기개 높은 나무다. 수많은 외침과 포악한 관리들의 폭정에도 굳건히 버텨온 우리 민족의 혼을 닮았기 때문이리라.
소나무 껍질은 서민들의 굶주림을 면케 해주었고, 삭정이와 솔가리는 추위를 녹여주던 땔감으로 쓰여 왔다. 솔 향은 양반들의 노래가 되었고 낙락장송은 동양화와 자수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소나무는 사람들의 사랑을 널리 받아 왔기에 죽은 뒤에는 도래솔이 되어 무덤도 지켜준다.
그래서일까 이곳 소나무들은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듯, 어느 것 하나 없이 모두다 한양을 향해 비스듬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우연한 현상이나 이곳 지형 때문만으로 이해하기는 부족할 것 같다. 날마다 한양을 향해 목 놓아 절규하던 어린 임금을 따라 함께 슬퍼했을 성싶다. 아니면 사약을 받고 피 토해 죽은 시신을 수습치 못해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안타까워했던 때문이리라.
단종이 기거했다는 어소를 기웃해 본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줄을 잇지만 당시에는 어느 한 사람 얼씬거리기나 했던가. 엄한 국법으로 철저히 통제된 공간에서 손에 잡히는 일이 있었겠는가. 고독과 외로움, 숙부에 대한 원한과 중전에 대한 사무침을 이겨 내려고 발버둥도 쳤겠지.
소나무 숲 가운데 군계일학처럼 특별히 눈에 띄는 소나무 한 그루. 하늘을 향해 큰 줄기가 양립하여 우뚝 솟은 키 큰 나무 앞에 관음송이란 푯말이 있다. 단종이 그 나무 위에 자주 오르내렸다하니 수령이 600년 쯤 되리라.
관음송! 어린 임금이 청령포에 첫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마지막 사약을 받기까지 비통하고 처절해 하던 모습을 그는 지켜보았다. 날마다 서러움에 북받쳐 울부짖는 소리도 그는 다 들었다. 그래서 관음송은 단종의 역사요 청령포의 지킴이다.
높은 곳에 서면 한양이 보일까, 섬 안에서 제일 높은 곳 육육봉을 매일같이 꼭꼭 올랐다. 꼭대기에 올라 궁궐 쪽을 바라보며 한숨 쉬고 눈물도 삼켰을 테지. 수십 길 절벽 아래 돌아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도 달래려고 했을 성싶다.
육육봉 언덕 빼기에 작은 돌탑 하나 있다. 단종의 흔적 망향탑이다. 어린 임금님은 무슨 마음으로 탑을 쌓았을까.
외진 산길의 돌탑들은 대개 길손들이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빌며, 자녀들의 축복을 기리며,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바라는 등 나름대로의 소원을 담아 쌓았다.
단종은 언덕 빼기를 오를 때마다 여기저기 막돌을 주워서, 돌 하나하나에 시름을 얹어 탑을 쌓았다. 세종의 돌도 문종의 돌도, 중전의 돌과 사육신의 돌들도 함께 쌓았겠지만, 그 세월도 일백 십여 일 뿐이었으니 어쩌랴. 미완성의 작은 돌탑.
어린 임금은 탑을 쌓아가다 넉 달도 못다 잇고 사약을 받았다. 세조의 명을 받은 금부도사 왕방연인들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는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가에서 청령포를 바라보며 시조 한 수만 남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며 발길 예 놋다“
강을 건너 발길을 옮기자 자꾸만 뒤가 돌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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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08-28 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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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의 비극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남긴 시조한 수가 가슴을 울립니다. 언젠가는 청령포를 찾으리라 다짐도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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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10-08-29 0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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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무더운 여름 지내시느라 힘드셨지요.
지난 8월 6일 청령포를 다녀와서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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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10-08-29 1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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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호 선생님, 좋은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이곳에 자주 글을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단종에 대한 사랑과 의분강개가 절절하게 다가 옵니다. 정 선생님이 그때 태어나셨더라면
사육신이나 생육신에 들뻔 했습니다.
진주남아의 그 기개가 어디가겠습니까...하하..농담삼아 진담을 해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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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10-08-29 2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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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행원 선생님! 안녕하세요.
윤선생님이 그 때 사셨다면 영락없는 사육신이었을 것 같습니다만,
무더위가 가시면 좋은 계절이 오겠지요.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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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희 |
10-09-02 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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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호 선생님, 다시금 단종에 대한 애환을 되새겨봅니다.
그때의 정황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합니다. 자주 좋은 글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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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10-09-03 0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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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희선생님!
고맙습니다. 격려로 알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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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0-09-03 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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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임금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이슬처럼 사라져간 사육신의 처자권속 가운데 남자들은 젖먹이까지 죽임을 당하고 그들 단종 복위세력의 처와 딸들 수백 인이
한명회를 비롯한 정인지, 김질, 신숙주 등 세조 공신들의 노비로 하사된 기록을 대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의분이 들끓어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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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10-09-03 2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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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여수 쪽에 태풍피해는 없었는지요.
격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령포에 여행 갔다가 느낌을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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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0-09-06 1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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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닲은 역사를 읽기 쉽게 풀어놓으셨네요.
정선생님의 필력을 여실히 들어낸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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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10-09-11 1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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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선생님! 오랜만입니다.
과찬의 말씀 고맙습니다.
중국 황산을 다녀와서 이제사 답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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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0-09-13 2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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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비극을 다시 한 번 떠 올려 보게 되네요. 누가 충신이고 누가 역적인 것인지.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굴러 가고, 그 세월 속에서 진실은 보이게 되니, 어린 단종의 슬픔을 후세에 이르러 공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권력이란 게 욕심에서 부터 시작되는.....정동호 선생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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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10-09-14 0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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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명화 선생님! 안년하세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9월 17일 원주에 가면 만나뵐 수 있을지요.
청령포를 한 번 더 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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