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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한동희 |
날짜 : 10-08-14 05:01
조회 : 2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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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엔 페스통 성당(마리엔베르크 요새)>
‘마리엔 페스통’ 성당은 900년 전 뷔르츠부르크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세워진 요새(要塞)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시각은 흐린 날의 어두워질 무렵으로, 인적 없는 성안은 우중충한 날씨처럼 스산한 분위기였다. 성벽에 둘러싸인 건물의 길이와 높이가 만만치 않다. 둥근 원형의 성당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마인강을 지나는 배들을 관망 할 수가 있다. 망루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기도 하고, 보물이나 곡물 등 값진 물건을 싣고 지나가는 배들을 마인강과 연결된 성당의 지하통로로 유인하여 강탈했다고 하니 그 당시 주교들의 횡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중세 카톨릭에서는 하나님과의 교류는 사제를 통해서만 할 수 있고,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어서 사제의 권한이 절대적 이었다. 14세기에 시작되어 한때 유럽 인구의 반을 없애버린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도 신의 심판이라 하여 기도에 매달렸다. 유럽 전체가 수도원으로 바뀐 이 시기를 중세 암흑기라고 한다. 고대로부터 알려져 온 지동설은 이단으로 취급 받고, 과학의 발전도 중단 되었다. 과학도 성경과 종교적인 율법에 의해 배척당했고, 문학도 종교적인 내용이 아니면 배척을 당했던 시기였다.
15세기에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로 인하여 구텐베르크 성경을 인쇄해 보급하게 되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비판이 일어난다. 이것이 당시 교회의 부패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다.
중세 암흑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마지막 십자군을 기점으로, 십자군으로 빠져나간 영주들의 자리에 왕들과 교육받은 관료들이 들어와 중앙집권이 강화됨과 동시에 십자군에 실패한 교황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부터였다.
14세기에 선출된 프랑스 출신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t V)가 아비뇽으로 거처를 옮겨 거의 1세기동안 아비뇽 유수가 발생하여 교황권이 기울고, 계속하여 교회의 경제적 능력이 약화되면서 면제부의 판매 등으로 부패는 늘어나고 교회의 신성한 권위가 떨어지게 되었다. 이에 15세기 초 후스(Jan Hus)와 같은 개혁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유럽의 왕과 주교들이 살던 성(城)과 박물관, 성당, 시청이나 은행 등, 이 모든 건물들이 돌로 건축되어 동양의 건축 문화는 나무이고 서양은 돌의 문화라는 것이 실감난다. 독일의 건축 미술은 주로 11~12세기에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발달한 ‘로마네스크’양식인데 주로 교회 건축에 사용되었고, 반원기둥의 아치나 삼랑식 이중 내전으로 중후한 인상을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새 거리에는 어둠이 내리고 여전히 실비가 오락가락한다. 고성의 언덕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는 중세의 건물들로 위엄을 내비치고, 고성 아래 작은 폭의 다리 사이로 ‘페그니치강’은 흐르고 있다.
잠시 볼프강의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 저녁 초대를 받은 박윤정씨 집으로 간다. 볼프강의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박윤정씨가 홀로 사는 아담한 이층집에 들어서니, 어느 사이 ‘칼스루에’서 기차를 타고 뒤따라 온 박명금씨도 합세해 저녁상을 차린다. 오늘의 저녁메뉴는 스테이크와 나물, 두부 된장국이다. 어제 밤부터 세끼를 꼬박 독일식으로 때운 나는 스테이크가 곁들인 한식 메뉴에 빠져 포식을 한다. (11.2)
<레트겐 거리>
오늘 오후에는 ‘아우크스부르크’에 사는 이점순씨 집으로 가기로 되어있어 전 날보다 이르게 시내 관광에 나섰다.
박윤정씨는 방사선의 선구자 ‘레트겐’ 연구실의 기념관 앞에 일행을 내려놓고 얼른 기념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기념관은 자동차가 다니고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큰길가에 있어서 오래 지체할 수가 없다. - 이 거리를 레트겐의 거리라고 한다.- 기념관 벽에 레트겐에 관한 간단한 비문이 새겨져 있어서 카메라 셔터를 들이대고 한방 찰칵. 레트겐은 이미 1895년에 X선을 발견하여 의학계의 진료와 진단에 혁신적인 역할을 했다. 과학 분야와 산업분야에서 중요한 분석도구가 된 X선 발견의 공로로 190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방사선 연구에 골몰했던 연구실 앞에 그의 거리를 만들어 후세에까지 레트겐의 앞선 연구정신을 이어가도록 하는 현장을 보며 독일인의 역사의식을 느낀다.
-뉘른베르크-
<뒤러의 집>
다시 차에 올라 14세기의 목판화가 ‘알프레히트 뒤러(1471-1528)의 집’으로 향한다.
그의 집은 ‘카이저부르크성’ 바로 앞에 위치해 있으며, 흰색 벽의 아름다운 목조주택이다. 그는 금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나 그 자신도 직인의 길을 가지만 그림에 대한 정열을 버리지 못하고 화가로 변신하여 독일이 낳은 최대의 화가 중 한사람이 된다. 그의 그림은 당시 시민들의 생활상을 주로 그렸으며, 그의 작품은 독일 지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는 잠시 ‘베네치아’에 유학 다녀온 것 이외에는 죽을 때까지 뉘른베르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그의 그림 복제품의 일부와 천연색소 등, 주방과 거실, 그의 제자들과 그림을 그리던 작업실을 당시 그대로 재현해 놓아 르네상스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뒤러는 19세에서 죽기 전 57세까지 38년간을 이 집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짧은 생애를 살다갔지만 시민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지금은 박물관이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뒤러의 집에서 나와 점심은 간단한 독일식으로 한다. 박윤정씨가 빵이 곁들인 손가락만한 구운 소시지와, 양배추 채 썬 것을 소금에 절여서 발효시킨 ‘자우워크라우트’을 맛보라며 주문했다. 소시지는 독일이 제일이고, 뉘른부르크의 소시지 맛도 일품이라니 한 번 맛봐야겠다. 구운 소시지에서 약간의 향료 냄새가 나고, 양배추 발효시킨 것도 찝질한 맛이다. 향료내음이 역겨워 음료로 콜라를 시켜 마시고, 옆 사람이 시킨 검은 독일 맥주를 한 모금 맛본다. 시원한 맥주가 목젖을 타고 흐른다. 여행지에서는 그 나라의 음식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기본수칙이지만 오늘의 점심 메뉴는 적응이 잘 안 된다. 그래도 음식의 절반 이상을 비워 주문해준 사람의 마음은 흡족했을 것 같다.
볼프강 집에서 지낸 2박3일간, 그가 베풀어준 마음 씀씀이를 잊을 수 없다. 아침마다 볼프강이 마련해준 독일식 식단은 그의 정성이 잔뜩 들어 있다. 한 바구니 가득한 여러 종류의 빵과 소시지, 버터와 꿀과 잼, 삶은 계란, 후식으로 나오는 부드러운 차와 과일 등.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새로운 식단에 흥미를 갖고, 맛의 진미를 혀가 아닌 마음으로 느낀다.
1895년 조선에 온 27세 선교사 유진 벨이 미국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글이 생각난다. ‘밥은 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음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되려면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진 벨이 지금의 내 심정 같았나보다.
나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딱딱하고 질긴 독일 빵 브로젠(Broetchen)을 자근자근 씹어 먹었다. 박윤정씨와 볼프강의 친구가 되려면 그러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중에도 아침 일찍, 볼프강과 박윤정씨가 오기 전에 얼른 컵라면을 먹던 일은 재미있는 추억의 한토막이다.
박윤정씨와 독일인 남자 친구 볼프강의 안내를 받으며 보낸 2박3일간의 뷔르츠부르크와 뉘른베르크 관광을 끝내고, ‘아우크스부르크’행 기차를 타기위해 기차역으로 간다. 기차역에서 처음으로 공중 화장실을 갔는데 한화로 일인당 1000원정도 받는다. 유럽에서는 화장실이 유료라는 것을 알았고, 비교적 화장실 출입이 잦은 나는 걱정이 된다. 우리나라의 공동 화장실은 무료이고, 독일 화장실 못지않게 깨끗하다는 것에 자부심이 든다. 화장실을 지키고 있는 독일 아줌마에게 두 사람 값으로 세 사람이 들어가자고 깎아 보지만 거절한다. 독일 사람들이 잘사는 이유는 근검, 절약, 인내라는데 거기에 원리원칙을 추가해야겠다. 화장실 사용료도 원리원칙대로 다 받는 독일 뚱보 아줌마. 그렇지만 화장실 바닥에 휴지가 흐트러져 있지 않아 청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음식 값도 무척 비싸다.
이제 이곳에서 일행 중 업무 차 먼저 귀국해야하는 J선생과는 헤어져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낯선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고, 그동안 정든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도 아쉽다.
우리 두 사람(나와 이선우)은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창밖을 내다본다. 창 밖에서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박윤정씨가 애교어린 몸짓을 쉬지 않고 보내온다. 작별의 키스를 손바닥에 얹어 불어 보내주고, 방방 뛰며 두 손을 흔들기도 한다. 근엄하게만 보이던 박윤정씨 어디에서 저런 애교의 샘물이 솟아나는지, 사랑을 하면 엔돌핀이 돌아 명랑해지는가 보다. 여자는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얼굴 표정이 달라진다. 박윤정씨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국 남자 볼프강에게 한없는 감사를 보낸다.
인자한 볼프강도, 말 수 적은 J선생도 진정서운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작별 인사를 한다. 그들을 뒤로하고 기차는 플렛홈을 빠져나왔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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