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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09-12-04 12:54
조회 : 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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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탓일까. 지나간 것들에 대해 막연히 그리움을 느끼는 때가 있다. 텔레비젼을 보다가도 `역사속의 오늘`과 같이 과거 우리네의 어려웠던 생활상을 기록한 영상물을 만나면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하듯 반갑고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흔들리는 흑백 화면 속에 천천히 움직이는 전차, 다리 밑 냇가에 앉아 힘차게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는 아낙네들. 하얀 DDT약을 뒤집어쓰고도 연신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분명 전쟁이 끝난 후의 풍경이리라. 뿐만이 아니다. 쥐잡기 운동을 벌린다며 잡은 쥐의 꼬리를 잘라오게하고 산에 올라가 꿈틀거리는 송충이를 나무젓가락으로 병속에 담던 기억도 이런 화면이 아니면 떠올릴 수 없다. 그 중 잊히지 않는 하나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대한 기억이다.
생각하면 그 때는 눈이 참 많이 내리기도 했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전날에는 어김없이 내렸다. 지금처럼 방송국이나 핸드폰을 통해 미리 알아보는 호사스러움이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 때면 으레 눈이 오는 줄로 알았다. 어렵고 힘들게 살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지구의 온난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추위도 혹독했다. 또 내린 눈도 더 희고 깨끗했다. `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각 교회에서 `새벽 송`을 돌았는데 어머니는 이때만 되면 성가대원들에게 나눠줄 선물로 인해 초저녁부터 안절부절 했다.
`새벽송`은 한 집마다 두 곡을 불렀는데 많이 불리는 곡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과 `기쁘다 구주 오셨네`였다. `고요한 밤`이 은은하면서도 밤의 적막을 깨지 않아야한다면 `기쁘다`는 밝고 힘차게 불러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가사 ` 다 찬양 하여라, 다 찬양 하여라, 다 아 차안양 차안양 하여라`가 끝남과 함께 어머니는 정확하게 성가대원들 앞에 서야 했고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성가대원들로부터 들음과 동시에 준비한 선물을 건네야했는데 매번 이것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던 집의 형태는 지금으로 보면 연립주택의 형식이었으나 사실은 수용소였다. 6,25동란 때 내려온 피난민들을 위해 시(市)에서 땅을 제공하고 입소문에 따라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 `성남동 산2번지`에 정착하여 공동으로 마련한 토담집인 것이었다.
집과 집 사이래야 진흙에 지푸라기를 섞어 만든 흙덩어리를 얼기설기 엮은 나뭇가지 위에 얹어 벽을 만들어 길게 연결한데다 앞,뒷집 또한 사람 하나 겨우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뿐이어서 어느 집에서고 사방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렸다.
따라서 자정을 넘기면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새벽송`은 어느 교회가 누구네 집 앞에서 부르는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는 찬송가 소리만 들렸다 하면 준비한 간식 뭉치를 들고 황급히 뛰어나갔다가는 허탕을 치고 들어오기를 밤새도록 반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머니가 준비한 선물이래야 지금 생각하면 매우 조악한 것들로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 `셈베이`를 비롯해 진한 물감으로 물들인 빨강,노랑색의 사탕과 흰 가래떡이 전부였지만 이것들을 전달하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겨운 것이었다고 밖엔 표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머니가 문을 여닫을 때마다 황소 같은 바람이 몰아쳐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식구들도 고통이었다 . 한두 번은 그런대로 잘 참아내던 아버지가 마침내 불같은 역정을 쏟아내도 이 때 만큼은 담이 약한 어머니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성가대원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야 비로소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한 얼굴로 잠자리에 드시곤 하셨다.
`크리스마스이브`와 함께 떠오르는 기억은 `야간통행금지 `이야기다.
지금이야 많이 시들해졌지만 그 당시 `크리스마스이브`가 흥분과 축제의 장이 될수 있었던 것은 함께 찾아오는 `야간통행금지 해제`라는 선물이 있었던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밤 11시 반이면 `예비 싸이렌`이 울려 퍼지고 그와 함께 여기저기 발걸음을 재촉하는 소리들. 곧 이어 쇳소리를 내며 불어제치는 방범대원들의 기세등등한 호루라기 소리는 고요한 밤거리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몰아넣곤 했다.
자정을 넘겨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역무원이 손목에 찍어준 파란색 확인 도장을 증거로 내밀어야 했는데 아침에 파출소 앞을 지나다보면 지난 밤에 통행금지 위반으로 붙잡혀 온 사람들이 재판을 받으러 경찰차에 실려가는 모습을 종종 볼수 있곤 했었다.
이렇듯 밤이면 마음 한 구석을 압박하던 `야간 통행금지`라는 족쇄가 크리스마스 전날이면 신기하게도 해제되곤 했으니 사람들의 기쁨이 일제 36년 끝에 찾아온 해방의 감격과 견주어 어찌 부족했을까.
그래서인지 이 날이면 모든 사람들이 무작정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 초저녁부터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모처럼 찾아온 자유를 어디론가 달려가 풀어야겠는데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기껏해야 `중앙극장`옆 `왕생백화점`에서 `목척다리`까지 사람들의 물결속에 휩쓸려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허전하고 쓸쓸했다.
기대와 허탈감이 반복되던 나의 `크리스마스 이브`도 결혼과 함께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바로 한 가정의 구성이 가져온 선물이었다.
세 살과 두 살짜리 연년생 남매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장남감 백화점`을 돌아 부부가 마주앉아 나누는 맥주 한 컵은 지금까지 내가 그려오던 작은 행복이었다.
좀더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대구 피난 시절, 동네 누나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찾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루하루 생존자체가 힘에 부치고 각박했던 시절에 그래도 교회는 무슨 여유가 있었던지 크리스마스 잔치를 해 주었다.
그 때 그 누나는 몇 명의 같은 또래들과 함께 무용을 했다. 별다른 무대 장식 없이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누나가 애절한 몸놀림으로 찬송가에 맞춰 춤을 췄는데 아홉 살 철부지에게는 천사 그 자체였다.
더구나 조숙했던 탓일까.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이들을 제치고 누나의 관심을 독차지하겠다고 심술을 부렸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못됐다.
크리스마스 이브
금년에도 12월이면 크리스마스 캐럴은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러나 저 깊고 깊은 산 속 흰 눈 쌓인 오막살이에 찾아오는 하얀 크리스마스의 이브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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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09-12-04 2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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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즐기시는 강선생님의 크리스마스 이브 글을 읽다보니 저 역시 지난 추억이 되살아 나는 듯합니다. 늘 멋진 글 쓰시면서 열정을 다하시는 모습에서 작가의 진실을 보게 되네요.
올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멋진 추억 만드시고 가족과 함께 즐겁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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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2-04 2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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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사랑방 들렸다가 멋진 그림과 글, 그리고 음악에 한참 취했습니다. 온천에서 따님과 함께한 여행, 그 훈기만큼이나 가슴 따뜻했습니다. 항상 좋은 날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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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09-12-05 0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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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은 tv가 없던 시절이라 라디오에서 한국남 의사가 한 풍월놀이가 기억납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고요한밤/ 한잔 두잔 마시면서 고요한 밤/ 밤이 욕을 니밤- 고요한 밤" 크리스마스가 가까와 옵니다. 우리 한국시조작가회 가정에도 크리스마스 같은 나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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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2-05 2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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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박사 말씀하시니 `재치문답`이라는 라디오 프로가 생각납니다. 만화가 안의섭씨, 문제안씨 등,당시 쟁쟁한 인사들이 출연하여 일요일 저녁 온 국민의 귀를 즐겁게 했던 프로이지요.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희미한 그림이지만 이따금 꺼내보는 느낌또한 유별나답니다. 늘 건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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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12-06 2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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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때 다니던 교회는 초가교회였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개척하신 교회죠. 교인들이 거의 다 농사꾼들이여서 집집마다 집을 거두어다가 마람을 엮고 이엉을 새로 한 후 맞이 하는 성탄절 동백나무에 크리스 마스 트리를 만들고 오색테프로 장식을 하던 고향교회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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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2-07 2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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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대형교회에 비해 시골의 초가교회, 생각만해도 정이 묻어납니다.많지않은 교인들과 함께 오손도손 예배드리셨을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리시겠습니다. 성탄절 전날이면 왜 그리도 마음이 설레이던지요. 임선생님도 그러셨겠지요. 성탄절 인사 미리 드립니다. 메리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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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2-07 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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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옛 날 필름을 되돌겨 보는듯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얼치기로 교회를 다니던 시절,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교회에 모여, 먼저 선물를 나눠갖은 다음 성탄 메시지를 알리려고 찬송하며 돌아다녔지요.
'재치문답' 하니 또 몇사람이 떠오릅니다.
앞이마 면적이 넓은 엄익채 선생, 아동문학가 강소천 선생, 박영숙선생등등 . 추억어린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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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2-07 2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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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엄익채,강소천, 박영숙 선생님들~ 어쩌면 그리도 재치와 함께 순발력도 뛰어나셨던지, 모두들 개성이 다르신 분들이어서 더욱 재미있었지요. 그후 동아방송의 `유쾌한 응접실`이란 프로도 기억나는군요.전영우 아나운서가 진행했고, 제 기억으로는 `양주동`박사님도 나오셨던걸로 아는데 자칭` 국보`박사님이셨지요~ 늘 건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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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12-10 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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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척다리>. 대전이신가 보군요. 아내와 만난 곳이 목척교 근처의 <원두막> 이라는 다방이었지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독일에서 돌아와 친정인 충북 영동에서 머물고 있을 때 서울과 영동의 사이에 있는 대전에서 만나기로 하여 정한 장소였습니다. 주말 아침에 고속버스로 내려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곤 했었습니다. 중앙극장, 왕생백화점도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지난 날들이 떠오르게 하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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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2-11 2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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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과는 잊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계시는군요. 목척교는 대전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는데 그 곳을 복개하여 상가를 짓는 바람에 경관을 해치고 말았지요. 하지만 금년,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를 철거하여 서울 청계천과 같은 실개천이 흐르는 자연환경으로 돌려놓기 위해 지금 한참 공사가 진행중이랍니다. 옛추억도 더듬으실겸 한 번 다녀가셔도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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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12-11 2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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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가때면 기대에 부풀어 뛰쳐나가 거리를 방황하다가
돌아고곤한 쓸쓸한 크리스마스 이브였었는데
가족들과 오붓하게 즐길수 있는 기쁜날이 되신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성공이신것 같습니다. 이제는
손자 손녀들과 함께 깊은 산속 오막살이에 산타크로스
찾아오는 이야기 하시면서 즐겁게 지내셔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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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2-11 2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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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참 빠르지요. 정선생님 말씀처럼 총각으로 맞이하던 크리스마스가 엊그제 같은데 어는 덧 손자,손녀 이야기를 듣게되었으니 말입니다. 금년 크리스마스 이브땐 옛날 생각 더듬으며 조그마한 시골교회라도 다녀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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