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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두드리는 새

최 복 희

  복 더위가 한풀 꺾인 삽상한 아침,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글을 쓰고 있는데 창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아무도 없다. 이 시간에 날 찾아올 사람도 없고, 창밖은 어쩌다 우리 가족만 드나드는 좁은 뒤란이라서 의아했다.
 
 ‘누구일까?’ 커튼 뒤로 몸을 숨기고 창밖을 예의 주시했다. 잠시 후, 몸집이 참새보다도 작고 꼬리가 길며 갈색 빛을 띤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창가에 늘어진 전선줄에 사뿐히 앉았다. 꽁지깃을 남상거리더니 벌새처럼 날아올라 두 발로 창문을 두드리는 게 아닌가. 두어 번 그러더니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잽싸게 개나리 울타리 속으로 쏙 들어가 놀랐다는 듯이 ‘씨씨씨씨’ 소리를 질렀다. 작은 새들은 눈치가 빠르고 민감하다. 조금 전에도 내가 의자에서  일어서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날아갔을 것이다.
 
  처음 보는 새라 호기심이 났다. 새 백과사전을 뒤적여 찾아보니 붉은머리오목눈이다. 관목, 덤불, 갈대밭 등에서 20-30마리 이상씩 무리 지어 날아다니며 ‘씨씨씨씨’ 또는 ‘찍찍찍’ 소리를 내고, 농가의 울타리나 관목림 속에 둥지를 틀며 대개 지상 1미터 안쪽 높이에 짓는다고 한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새가 어찌하여 한 마리만 날아왔으며 창을 두드리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 뒤란으로 돌아가 창문을 올려다봤다. 아! 거기엔 파란 하늘과 숲이  가득 담겨있지 않는가. 창문에서 한 발 정도 떨어진 울타리엔 개나리, 사철나무, 무궁화나무, 은행나무, 산뽕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데 그 나무들이 거울처럼 창에 비친 것이다. 새는 실체의 숲인 줄 알고 날아들려고 했던 모양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새가 찾아와 창문을 두드리는 자체가 재밌고 예사롭지 않았다.
 
  새들은 공해가 없는 조용한 숲에 먹이가 있어야 모여든다. 우리가 30여 년 간 젖소를 기를 때는 10여 종의 새들이 제 집 드나들 듯 했다. 넓은 터전엔 각종 나무가 있고 소들이 먹다 흘린 낟알이 있으며, 농약을 전혀 뿌리지 않으니 새들의 낙원이었지 싶다. 
 
  그러다가 몇 해 전에 그 일을 거둔 뒤로는 새들의 발길이 차차 끊어지고 말았다. 축사를 창고로 임대를 놓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자동차가 자주 드나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봄까지만 해도 지붕 밑에 둥지를 틀던 찌르레기가 금년엔 집 주위를 빙빙 돌아보다가 아무래도 안심찮았는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해가 갈수록 우리 집은 새들이 외면할 만큼 소음이 심하고 자동차 매연으로 오염되어가고 있다.
 
  고된 일이 없어져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늘 허허롭고 삭막했는데 뜻밖에 새가 찾아와 행운의 파랑새로 여겨졌다.
 
  파랑새는 마테롤링크의 시극에서 잡히지 않는 행복의 상징으로 나오며, 우리나라에서는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긴다. 이 보살이 현신(現身)하여 세계 7대 보타락(補陀落) 성지 가운데 하나인 낙산(洛山) 관음굴에 나타났으며, 고려 때 스님 익장(益壯)의 ‘낙산사기’에 보면 관음굴에서 성심껏 기도하면 파랑새가 나타난다고 했다.
 
  간절한 소망과 꿈을 안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 집 앞마당은 소음이 심하지만 뒷동산으로 이어지는 후정은 비교적 조용하고 각종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나는 뒤꼍으로 난 창문을 열 때마다 공중으로 날아가는 새를 불러 쉬어가게 하고 싶었고, 뒷동산에서 지저귀는 새들이 놀러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데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어찌 내 마음을 알고 왔을까.
 
  새들에게도 리더가 있고 저들만이 통하는 대화가 있는가보다. 며칠간 한 마리가 와서 탐사를 하듯 바삐 둘러보더니 동료들에게 살만한 곳이라고 전했는지, 요즘은 매일 한 두 차례씩 떼로 몰려와 참새들보다 고운 성음으로 재잘대다 간다. 어느 날은 박새 한 쌍도 묻어와 “쯔삐! 쯔삐! 쯔쯔삐!” 목청을 높인다. 새들의 합창인 것이다. 다음엔 또 어떤 새가 따라올까.
 
  새가 창을 두드리는 날은 우리 집의 경사스러운 날이다. 집에 있던 가족은 모두 창가로 모여 숨죽이며 새들의 합창을 듣는다.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텔레비전 방송국에 빨리 알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게 하자고 한다.
 
  창문을 두드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분명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다준 파랑새가 아닌가.

(2009년 아름다운 가정 9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