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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진철 |
날짜 : 14-01-10 22:06
조회 : 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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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있는 미도파 백화점이 여성들의 쇼핑장소로 북새통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곳을 본거지로 하여 소매치기를 하던 여인이 있었다. 요즘처럼 CCTV가 활성화 되었었다면 처음 몇 번 신고가 들어왔을 때 쉽게 검거할 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피해자들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소매치기들은 대체로 범행하는 배회 구역이 나누어져 있기 마련이다. 전과자 중에서 협력자를 야당이라고 하는데 야당 중에서도 동서남북으로 모두 통하는 마당발에게 매달려 보았으나 도무지 누구인지 단서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혼자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며 소매치기를 하는 독고다이인 것 같았다. 이럴 경우가 제일 골치인데 검거 수단은 잠복하여 현장을 덮치는 수밖에 없다. 여형사까지 포함하여 형사 세 명이 일주일간 잠복한 끝에 검거하게 되었다.
여자 소매치기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여인도 상당한 미모였다. 범행 현장을 덮쳤기 때문에 피해자와 물증은 확보할 수가 있어서 구속영장이 발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여인의 수법은 가장 전통적인 빽따기 수법이었다. 사람들이 혼잡한 틈을 이용하여 여성들이 들고 다니는 빽의 단추를 감쪽같이 열어 금품을 훔쳐내는 수법이다. 요즘은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여 전산조회 실에 이름과 주민번호만 불러주면 신상관계나 범죄경력을 즉시 알 수 있지만 그때는 아날로그 시대라 그런 편리함이 없었다.
우선 신원을 확인하려고 하자 아무런 신분증이 없는 것이다. 범행을 하는 사람이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것은 상식적인 것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여인이 불러주는 대로 일단 수배자나 범죄경력조회를 해 보았으나 깨끗했다. 수법과 피해 규모 등으로 보아서는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전과가 없다는 것은 수상했지만 당장에 알아낼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형사 실에 데려다 놓고 손가락에서 지문을 채취해서 조회의뢰 하였다. 정확한 신원과 범죄경력을 알아내기 위해서이다. 다른 때는 지문 번호를 63821...이런 식으로 불러주고 회답을 얻기도 했으나 이 것 또한 아날로그 방식이고 이곳저곳에서 조회의뢰가 많아서 쉽지가 않아 하루 정도 기다리기로 했다.
여인이 불러주는 대로 인적사항을 적고 기초적인 신문조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코트를 벗겨 보니 임산부였다. 배는 크게 부르지는 않았는데 임신 8개월이라고 했다. 더욱이 생리중이라고 한다. 여형사를 시켜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았더니 여인의 진술과 같았다. “임산부에 생리라” 범행동기에 정상 참작사유가 된다. 순간적으로 수사관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동정심이 발동했다. 여인의 말대로라면 아무런 전과도 없는 사람이 임신과 생리작용으로 심리상태에 이상이 생겨서 절도행각을 벌인 것이다. 아내를 둔 남편의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성을 잠시 잃고 감성에 빠져든 것이다. 솔직히 여인의 미모도 한 몫 거들었다.
예쁘고 착하게 생긴 임산부를 굳이 차디찬 유치장 속에 가둬 둘 필요가 있을까. 내일이면 조회 결과가 나오는데, 일차 간이 조회한대로 초범이라면 구속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형사 실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놔뒀다. 임산부가 도망가 보았자 어딜 가겠는가 하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다. 형사 실은 밤 열 시경 쯤 되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 여인은 초저녁부터 들어와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여러 형사들과 마주치고 간혹 사소한 심부름도 해주는 등 어느새 친밀한 사이처럼 되어 있었다. 갑자기 형사 실에 폭력배 몇 명이 잡혀 들어와서 소란스러웠고 잠시 이들을 정리하는 와중에 여인이 슬그머니 도주해 버린 것이다.
사실 여인에 대해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어서 언제 도주한지도 몰랐는데 누군가 “ 앗, 여자 어디갔지, 여자 여자” 하고 외치는 바람에 도주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더욱이 다음날 조회 결과를 통보받고 보니 이름이나 나이 주소 모두가 가짜였고 소매치기 전과 9범이나 되는 악녀였던 것이다. 순진하고 애잔한 모습으로 어쩌면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놀랐다. 사람을 믿지 말고 더욱이 여자와 미모를 믿지 말라는 수사관의 기초적인 불문율을 지키지 못한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특히 범인보다 피해자를 먼저 생각하라고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수사관이라고 해도 인간적인 갈등으로 이런 불문율을 지키지 못한 과실이 큰 것인지 그런 약점을 노리고 남자로 하여금 동정심을 이르켜서 골탕을 먹이는 달기같은 악녀의 화신이 더 나쁜 것인지 아직도 아리송하다. 더군다나 여인의 배속에 있던 천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여인은 뒤늦게 정신 차린 온달장군이 지문 조회했던 근거를 밟아 한달여 만에 검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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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4-01-10 2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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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해서 다행입니다. 더 시간을 주었더라면 또 다시 범죄하고, 시민이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춘천교도소 당직시절에 문서 착오로 벌금형이 있는 사람을 잘못 출소 시켜 강원도 속초까지 부하직원 두사람을 동행하고 가서 탐문 수사를 벌인 끝에 해질녘에야 검거 할 수 있었습니다. 가지고 간 수갑을 채우려고 하자, 벌금을 내어 놓아 홀가분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일때문에 경찰관들이 고생고생하는 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진철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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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01-11 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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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날씨도 춥고 사무실안에만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년초라 일도 바쁘지 않고 한가한 시간이 많은데 특별한 취미도 없고 글만 마구 쓰고 있습니다.ㅎㅎ 글쎄 제친구는 신학대학에 입학한다는데 저도 3월학기에 정식으로 대학원에 입학해서 철학공부나 해볼까도 생각하고 있네요~학위나 받아볼까해서요~ㅎㅎ
그런데 임선생님 법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들이고 가둬놓고 하는 것이 좀 애매한 생각이 드네요. 사람이 질서를 지킨다는 이유로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 맞는건지요, 적어도 자연인이라면 산속에서 짐승들이 질서없이 아무곳이나 넘나들고 약육강식하는 모습을 그냥 두고 봐야 하는것처럼 살아야 하는것 아닌가요.
규범은 사람이 만든거고 욕심이나 훔치고 싶은 본능은 하느님이 만든 섭리일텐데 말입니다 . 앗, 그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과일을 따먹게한 사탄의 유혹인가보네요. ~~ㅎㅎㅎ 그러면 감시자들은 하느님의 파수꾼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임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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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4-01-11 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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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철선생님 글은 이 아침에 한편의 탐정 소설을 읽는것처럼 흥미롭습니다.
사실이데도 소설같이 흥미진진하니 말입니다. 새 학기 부터 철학공부를 하시면 더 노련하고 재밋는 읽을 거리가 샘솟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기대됩니다. '못된 년이 달밤에 삿갓 쓰고 나선다' 라는 말이 있는데, 미녀가 선량한 수사진들을 물 먹였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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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01-11 1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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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는 표현이고 가슴에 팍 와 닿는 비유입니다"못된 년이 달밤에 삿가쓰고 다닌다" ㅎㅎㅎ 그런데 어쩌지요~ 예쁜년이 그랬는데~~ 하기야 얼굴만 그렇지요, 그때 제가 미인에 무척 약했었나 봅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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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01-11 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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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쓰리꾼을 잡아놓고 범행수법을 재현시켜본 적이 있습니다. 손안에서 도로코면도칼이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더군요. 주로 안주머니를 갈라서 지갑을 꺼내는 수법인데 놀라왔습니다. 인정을 배풀다가 범인을 놓치고 곤욕을 치르던 동료의 생각이 많이 납니다. 현장에서 글감을 구하여 쓴 글이라 생동감이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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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01-11 1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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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문학미디어에 수사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데 어느새 20회가 되었더라구요. 조금 다듬으면 재밌는 책 한권 될것도 같습니다~ㅎㅎ 신년초라 그런지 년말에 비해 무척 한가하네요.
오늘도 토요일 동대문 시장에 나갔다가 지인을 만나 함흥냉면 한그릇하고 방금 들어와서 사무실에 앉았습니다. 너무 많이 쓰면 가벼워질것 같아서 엑기스를 아끼고 책이나 읽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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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4-01-12 0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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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타레처럼 한없이 풀려 나오는 이야기가 문학적으로 구성되어 구수합니다. 다음은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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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01-12 2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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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 , 죄송합니다. 며칠후 외국에 출장좀 다녀 올 계획입니다.
마침 한가해서 사무실에 앉아 마구 써 대고 있습니다. ㅎㅎㅎㅎ
오늘도 한 편 썼습니다. 읽어 주세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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