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가면

박 원명화

음식점에도 명품점이 있다.

이름값이 있는 집의 음식이 비싼 것이야 당연하다. 음식 맛도 맛이려니와 내외관상 유명세만큼이나 시설도 으리으리해야 함은 물론이다. 넓게 확 트인 공간에 안락한 방, 거기다 식당이라기보다 근사한 분위기가 철철 넘치게 치장해 놓은 식당들이 경쟁하듯 곳곳에 즐비하다. 나 같은 서민은 그런 집엔 선뜻 들어서기가 쉽지 않다. 거기다 음식 값은 내 주머니로서는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는 명품 값에 속하니 누가 사준다 해도 그 정신적 부담을 감당키 어려워 꺼리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강남 쪽으로 문우들을 만나러 간다. 요즘 내가 자주 드나드는 식당은 강남의 부자 동네라고 일컫기에는 거리가 먼 80년대 풍의 작은 식당이다. 신토불이의 내 입맛과 궁합이 꼭 맞는 이른바 가정식 식당에 속한다. 처음에는 그렁그렁 손님이 있는 가 싶었는데, 점차 입소문이 퍼졌는지 어느 날 부터인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손님이 많아졌다. 반찬이 많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단지 집에서 흔히 먹는 음식이 주종을 이룬다.

보통 사람이 돋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 음식점도 그런 곳이 있다. 아무데서고 먹을 수 있은 음식인데도 그 집만의 매력에 확 끌리는 경우, ‘어머 이런 집에 있었네’ 라며 명함까지 챙겨 나온다.

성격이 다르듯 사람들의 입맛을 골고루 맞출 수 있는 집은 그리 흔치 않다. 때가 되면 밥이야 늘 먹기 마련이므로 식당에 오든 가든 생소해 할 건 없다. 가게 외형은 분식집으로 착각할 만큼 허름하고 소박하다. 음식 맛을 돋을만한 특별한 장식이나 분위기를 연출하해 놓은 것도 아니고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도 없다. 식당 문 앞에서부터 손님을 맞이하는 젊은 사장님의 반가운 인사가 돋보일 뿐.

‘진미식당’엔 여덟 가지의 메뉴가 있다. 갈 때마다 다른 것으로 골라 가며 먹어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한식만의 메뉴는 깔끔하고 양도 적당해서 주는 대로 먹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음식을 먹고 탈날 일은 아예 없다. 거기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나 같은 서민에게는 매력만점이다.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옛날 어머니가 차려주던 밥상처럼 정겨움이 돋는다. 이 식당의 대표적인 메뉴는 북어조림과 된장찌개다. 북어조림의 맛은 은은 하면서도 단백하고 된장찌개는 그 옛날 먹던 텁텁한 된장 맛 그대로다. 밑반찬은 매일 한두 가지가 바뀌지만 반찬마다 간이 적당하다. 내 비위엔 살짝 구운 삼치구이도 구수하고 두툼한 계란말이도 삼삼하고 담백하여 자주 시켜 먹는다. 음식주문은 번호로 받는다. 주인이 젊은 탓인지 주문을 받는 것도 씩씩하고 싹싹하다. 일단 주문을 받았다 하면 그 손길이 자동터빈 같다.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이지만 정성이 녹아들어 있다.

어떤 음식도 허투루 내 놓은 법이 없다. 손님 앞에 정갈하게 갖다놓고 깨끗하게 치워준다. 반찬도 떨어지면 달라 기가 무섭게 알아서 척척 이다.

내가 그 집에 가면 단골로 찾는 메뉴는 북어조림이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질펀한 뚝배기 속을 들여다보면 먹기도 전에 입 안 가득 군침이 돈다. 푹 익은 큼직한 무와 북어 서너 토막이면 따뜻한 밥한 그릇 뚝딱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한다면 순두부찌개도 맛있다. 허연 순두부가 둥실 떠있고 거기에 조갯살, 애호박, 고추, 파 등이 순두부맛과 잘 어울린다.

돈만 내면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여느 식당과는 다르다. 집에서도 하기 쉬운 평범한 음식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은 분명 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사시간에 맞춰 가면 앉을 자리가 없다. 허기져 찾게 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이곳 식당을 찾는 이들 대부분이 주로 근처 사무실 사람들이다. 주인도 젊지만 손님들도 젊은 층이 많다. 꼭 먹어야한다면 조금 일찍 가거나 늦게 가는 게 좋다. 밥을 다 먹고 나면 특별후식으로 씹을수록 고소한 누룽지까지 준다. 물론 나이 드신 어른 대접한다고 우리들에게 주는 것만 봐도 손님을 대하는 젊은 주인의 심성이 곱기만 하다.

식후 커피도 자판기에서 빼주는 게 아니라 주인이 손수 타서 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향긋한 커피를 음미해가며 편안히 오래 앉아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손님이 뜸할 땐 오히려 주인이 편히 쉬다 가시라며 붙잡는다. 내 집 안방처럼 푹 퍼지고 앉아 주머니에 맞는 즐거운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마음에 맞는 이들과 골고루 시켜놓고 나누며 먹는 그 맛 또한 주인의 인정만큼이나 정스럽고 따뜻하다.

날로 늘어나는 외식문화, 굳이 고급스럽고 비싼 음식을 거창하게 먹어야만 명분이 서는 건 아니다. 점심뿐만 아니라 식사는 될수록 간단하게 먹는 게 건강에도 좋다. 어쩌다 특별한 음식을 먹는 날이면 뱃속이 놀랐는지 속이 편치가 않다. 늘 먹던 대로 먹어줘야 위장도 편하고 부담도 덜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음식문화가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 같다. 한식만의 정갈함이나 개운하고 상큼하면서도 담백한 전통 음식의 맛은 사라지고 들척지근하고 느끼한 맛에 길들여가고 있는듯하다. 된장찌개만의 탑탑한 맛이 아닌 그야말로 국적불명의 맛들이 우리의 입맛을 버려놓는 것은 아닐까.

전통 음식문화의 보급을 위해 나라마다 치열한 홍보전쟁을 벌이느라 야단이다. 우리의 전통음식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특히 가족끼리의 외식은 가급적 한식으로 했으면 좋겠다. 조류독감, 싸스, 신종풀루 등에 면역이 강한 것도 발효식품을 기본으로 먹는 우리의 전통 식생활의 영향 때문이라는 주장의 힘을 받아 한국요리가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네 주변에 양식, 중식, 일식 식당들이 늘어만 간다는 게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래 사귄 벗이 편안하듯 음식도 먹어본 음식이 입맛을 당긴다. 서울을 벗어나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한국전통의 ‘시골밥상’들이 인기를 끌고 있음이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친구든, 지인이든, 식사를 해야 할 때 나는 가급적 한식당을 찾는다. 집에서 해먹듯 조촐한 한식당을 자주 찾는 것은 먹어도 먹어도 탈 없고 속을 편하게 해주는 한식만의 특별한 매력이 좋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