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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방주 |
날짜 : 11-05-08 16:52
조회 :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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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학급 담임을 맡았다. 학급에 들어가니 외출했다 오랜만에 돌아와 서재에 들어간 것처럼 신비스럽다. 여고 2학년 큰아기들이 볼수록 예쁘다.
무엇을 할까? 고민이 생겼다. 이렇게 예쁘고 여린 아가들에게 활기찬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아,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스승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학문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같은 피가 아니더라도 인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인간 중심 사고는 아니더라도 모든 생명과 함께하는 동지인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같은 생명은 아니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한 송이 꽃에서 자신의 날숨을 발견하고, 우리의 숨결에서 나무의 들숨을 발견하는 것이다. 빗방울에서 사람의 눈물을 발견하고, 떨어져 흩날리는 낙엽에서 조상의 영혼을 발견하는 것이다.
생명은 없다지만 학문을,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타 민족에게서 나의 피를 발견하고, 세상 모든 생물에 흐르는 나의 영혼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랑받은 학문에서 생명력을 찾아내고, 일에서 역동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삶의 세계에서 나의 영혼을 찾아내는 것이다. 나 아닌 세계에 존재하는 나의 영혼을 찾아내는 것이 배움의 완성이다.
아, 이 아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나? 그렇다.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학문이고 인성 교육이고 교육의 끝이다. 사랑을 깨우쳐 알면 세상에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을 가르치자. 글보다 더 소중한 사랑. 맞아, 사랑을 가르치는 거야. 남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로 생명력이 샘솟는 법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아가들의 마음에 이끼가 끼지 않는 하루를 기대해 본다.
무엇으로 사랑을 가르치나? 그래 맞아. 散花功德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꽃을 뿌려 공덕을 쌓는 것이다. 꽃 같은 아가들에게 꽃을 기르는 것만큼 사랑을 배우는 첩경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에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 꽃이 아닌가? 사랑을 베풀기 가장 쉬운 것이 꽃이 아닐까? 꽃을 사랑하여 시들지 않으면 그것은 곧 하나의 생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지나침도 결핍도 없는 사랑은 꽃잎을 멍들게 하지 않는다. 사랑뿐만 아니라 정도(正道)를 배우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사랑법을 배우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슬쩍 제안을 해보았다.
“작은 화분 하나씩 가져다 자기 꽃을 길러보면 어떨까? 물을 주어 꽃을 피우면 교실도 예뻐지고……. 그렇게 한 번 사랑을 배워보면 좋을 텐데…….”
아주 조심스럽게 운만 떼어 보았다.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들은 척 만 척이다. 공연히 말을 꺼냈다. 그런데 너무 아쉽다. 참 좋을 것 같은데…….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 포기하지 못하고 미련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누군가 두 사람이 화분을 가져 왔다. 아주 작고 앙증맞은 것이 유리창 난간에 올라 앉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했다. 나도 퇴근해서 부랴부랴 꼭 고만한 화분을 만들었다. 이튿날 두 아가의 화분 옆에 어린 아가 친구를 누이듯이 나도 아주 작은 화분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날마다 하나씩 둘씩 한 2주 쯤 늘어나더니 서른다섯을 넘었다. 꽃 천지이다. 하나같이 작은 화분이다. 꼭 우리 반 아가들 닮았다. 교실이 예뻐졌다. 나는 아이디어만 제공했지 모두가 아가들이 스스로 마련한 것이다.
사랑하는 법을 배워 그런지 다툼도 없다. 누구 꽃이 예쁜지 점수를 꼲지 않으니 견줄 일도 없다. 이 꽃은 이 꽃이라 예쁘고 저 꽃은 저 꽃이라 예쁘다. 가시 있는 선인장도 있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제라늄 있고, 잎이 소담한 것도 있고 물만 마시고 사는 행운목도 있다. 공기를 맑게 하는 페페로미아도 있다. 꽃보다 화분이 더 예쁜 것도 있다. 각자 이름을 지어 새로 지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물주는 법을 일러주고, 몇 개의 화분은 분갈이도 해주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겨우 고거다.
아가들은 꽃을 안고 산다. 물을 때맞추어 주고 볕을 쬐어 주고, 창밖에 바람을 쐬어 주기도 한다. 그런 아가들의 모습이 예쁘다. 비 내리는 날 내 화분을 밖에 내놓아 이슬비를 맞혔더니 너도나도 따라한다. 아가들은 꽃을 사랑하며 사랑을 배운다. 꽃을 사랑하다 보니 친구를 사랑하게 되고 학급을 사랑하게 되고 공부를 사랑하게 된다.
서른아홉의 꽃송이들은 모두 모여 하나의 꽃밭이 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꽃을 가꾸는 2학년 여고생 아가들의 마음이 꽃보다 더 예쁘다. 사랑을 주며 사랑을 배우는 큰아기들이 아름다운 미래가 다가오는 듯하다.
이 아가들아 살아야할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 때도 정보와 기술이 지배하거나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로 머물러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이제 먹을 만큼 살게 되었으니 아가들의 미래는 생명 사랑 문화 사랑의 시대적 과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곧 和而不同의 시대란 말이다. '和'란 온 세상이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너를 통해 나를 이루고 나를 통해 네가 되는 것을 서로 행복하게 생각하는 시대일 것이다. 이웃을 통해 우리가 있고 우리를 통해 이웃이 성장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증오와 질투, 오기와 승부욕을 바탕으로 빨리빨리 소리를 지르며 서둘러 자갈길을 뛰어 정상에 오르는 성장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상생으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말한다. 곧 생명 사랑이라는 것이지.
不同' 이란 서로 다른 개성을 말하는 것이다. 독창적인 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세계 문화가 우리를 뒤덮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가 세계 인류의 가슴에 스며드는 것을 말한다. 나만의 문화, 우리 학급의 문화, 우리 학교의 문화, 우리 집의 문화, 우리 민족의 문화로 세계의 문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곧 문화에 대한 사랑이다.
나는 오늘도 꽃을 보러 교실에 간다. 꽃밭 만들기로 사랑을 가르치려는 시도는 정말 잘한 일이다. 나는 가끔 내가 선택한 일에 감동한다.
(2010. 10. .)
****이 글은 작년에 쓴 글입니다. 지금은 남학생만 있는 충북고등학교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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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05-08 1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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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참으로 귀한 말을 듣습니다. 꽃을 널리 뿌려 공덕을 쌓아 자아를 보고, 그것으로 사랑을 베푼다. 스승의 달을 맞아, 참된 스승의 도를 보는 것같습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그윽함을 거듭보게 됩니다. 건강,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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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1-05-09 1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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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하니다. 공감까지 해 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들여다 볼수록 신비스럽고 순수합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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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1-05-08 1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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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제마다 하나씩 자기꽃을 키운다면 학습 분위기가 확 달라질것 같습니다.
이번 문학기행 오시는지요.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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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1-05-09 1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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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저도 문학 기행날 선배님들을 뵙고 싶습니다.
가사 박물관과 소쇄원에 이르는 문학의 길을 걸으며 배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근무하는 날입니다. 섭섭합니다.
작은 화분을 모아 놓으니 가지각색의 꽃을 가꾼 꽃밭 같았습니다.
마치 아이들같이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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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1-05-08 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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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요즈음 여학생들에게 정말 가치있는 그 무엇을 가르친 것 같습니다. 그 아이들 중 누군가는 틀림없이 살아가면서 그 시절을 생각하며 꽃을 가꿀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사랑을 키워 갈 것입니다. 이제 남자학교에 가셨으니 남학생들을 순화 시킬 뭔가를 연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때는 중고등학교에 재직한 적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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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1-05-09 1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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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남학생들은 더 순박합니다. 생명력이 넘칩니다. 그들의 욕구를 그리고 그들의 힘을 발산시킬 거리를 만들어 주어야겠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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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1-05-08 2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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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키우며 사랑을 배우게 하는
이방주 선생님의 마음이 꽃보다 아름답군요.ㅎ
보지 않아도 본 듯 아가자기한 꽃들 앞에
재잘대는 학생들 모습이 그려지네요.
그윽히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모습도요.
독자의 마음도 사랑으로 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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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1-05-09 1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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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사실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이면 모든게 해결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조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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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11-05-09 0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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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학생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것은 좋은 稟性을 기르는 일입니다.
공부도 좋지만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인성교육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꽃을 통해 학생들에게 사랑을 심는 선생님의
슬기가 기분좋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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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1-05-09 1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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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행원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성교육이 잘 되면 공부는 제가 알아서 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15년간 학급담임을 맡지 않았던게 후회스럽습니다. 꽃을 생각해 낸 것은 제가 생각해도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었어요. 힘도 크게 들지 않고, 돈도 많이 들지 않고, 아이들이 좋아하고, 모두가 예뻐하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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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1-05-09 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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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소중한 것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사랑'을 가르치시기 위해 여학생들로 저마다 꽃을 가꾸도록 자연스럽게
이끄신 선생님의 제자사랑에 감탄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한테서는 절로 생명력이 샘솟는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사랑이 곧 생명이니 불현듯
사랑이 영원하면 생명도 영원하리라는 깨달음에 화들짝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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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1-05-09 1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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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께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꽃을 사랑하는 것은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게다가 꽃은 원래 사랑스러우니까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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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5-09 2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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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선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글입니다. 선생님 같이 좋은 분을 담임선생님으로 맞는 학생들은 복을 받은게지요. 교사란 직업은 아이들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사명감을 지닌 직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꽃과 아이들의 비유가 넘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의 좋은 이야기거리들이 아름다운 수필로 많이 탄생 될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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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1-05-11 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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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화님
안녕하세요?
사실은 교단의 얘기를 수필로 쓰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칫 제 자랑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글도 그런 류의 글이라 여기 올리기가 죄송스러웠습니다. 이해하시고 좋은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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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인 |
11-05-11 1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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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서른 아홉송이의 꽃송이가 눈에 선합니다.
꽃을 통해 참사랑을 실천하고 계시네요.
꽃다운 나이에 선생님을 만난 여학생들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오늘도 꽃을 보러 교실에 간다. 꽃밭 만들기로 사랑을 가르치려는 시도는 정말 잘한 일이다. 나는 가끔 내가 선택한 일에 감동한다.'
이방주 선생님, 참 훌륭한 선생님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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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1-05-11 2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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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를 만난 여고생들은 행운이라고요? 전혀 아닙니다. 여고생들은 젊은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저 같은 큰아빠도 더 되는 선생은 아주 싫어 합니다. 제자들 중에는 이제 제자의 아들딸도 있는걸요. 그래도 "나이 든 선생도 너희를 가르칠 수 있다"고 발버둥쳐 본 것이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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