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오늘 방문자수 |
    |
| 어제 방문자수 |
 |
| 최고 방문자수 |
  |
| 방문자수 누계 |
|
|
|
|
|
|
|
|
|
|
|
|
|
|
| 글쓴이 : 김용순 |
날짜 : 11-05-05 20:23
조회 : 1979
|
|
|
|
아름다운 죽음
아침부터 붉게 떠오르는 해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아버지가 가시던 15년 전 그해에도 일찍부터 더웠고 장마 비가 질벅거렸다. 장례식 당일에는 엷은 구름 뒤에 숨은 햇빛이 불쾌지수를 높이기는 하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아버지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지도 음식을 준비하지도 않는다. 형제들이 산소에 모여 추도예배만 드린다. 아버지는 가신 후에도 자식들에게 털끝만큼의 작은 짐도 지우지 않으셨다.
그날,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황급히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혼수 상태였다. 급히 병원으로 모셔, 응급처치를 받으셨다. 얼마 후 아버지의 의식은 너무나 뚜렷하게 마치 정상인처럼 돌아오셨다. 의식을 되찾으시고는 ‘왜 병원에 데려 왔느냐’며 치료를 거부하신다. 의사가 ‘병원에 뭣 하러 오셨느냐’며 화를 내자, ‘죽으러 왔다’며 말다툼까지 하신다. 화장실에 가시겠다며 부축해 달라고도 하셨다. 병원에서도 검사결과 아직은 큰 이상이 없으며 식도에 천공이 생길 때까지 당분간 돌아가시지 않을 것 같다고 하였다.
삶이란 언젠가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어길 수 없는 우주의 질서이다. 아버지는 이 질서에 순응하시고 자신의 죽음을 하느님에게 맡기신 것이다. 그리고는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고자 쓸데없는 치료를 거부하시는 것이다.
마음을 놓고 병원을 나선지 채 한 시간도 못된, 집에 도착 할 때 쯤 ‘아버지가 다시 이상해 지셨다’는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급히 차머리를 돌렸다. 아버지는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다. 예사 잠이 아니라고 하였다. 의사는 임종을 준비하라며 다른 식구들에게도 연락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꺼지기 직전의 촛불은 마지막 초물을 전부 태워 불꽃을 만든다. 한 달 가까이 한 숟갈의 미음도 넘기지 않으시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아버지가 얼마동안이라도 정상적인 의식을 되찾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생명을 거두어 가기 직전 잠시 작별 인사라도 나누라는 신(神)의 배려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식구들을 보고 떠나시려고 실낱같던 기력을 전부 쏟아 잠시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먼 곳에 있던 동생들과 목사님도 도착하였다. 아버지는 우리가 다그쳐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깨신듯하였으나 눈뜰 기력조차도 없었던지 끝내 뜨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찬송가 소리를 들으시며 그날, 하늘나라로 가셨다. 당년 77세이셨다.
당시 나는 사업체가 중국에 있어 두어 달씩 중국에 머물다 귀국하곤 하였다. 그날도 공항에서 바로 아버님 댁에 들어서자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식도암에 걸리셨다’며 울먹이신다.
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목안에 뭔가 걸리는 것 같고 음식 삼키기가 불편하여 동네 병원에 갔더니 식도암 같다고 하였다’ 하신다. 동생들에게 아버지의 발병을 알리고 종합병원에 입원시켜 정밀검사를 받으시도록 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식도암 판정을 받으셨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받으면 2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수술을 단호히 거부하셨다. 고통스러운 1-2년의 생명 연장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하셨다.
자식들에게 경제적인 부담도 지우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검사를 마치고 퇴원하셨지만 수술을 하지 않아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었고, 동생들이 기적적으로 암을 완치시킨다는 약을 사다 드리며 드시게 하는 정도였다.
아버지의 일상은 이전과 별 다르지 않았다. 일요일이면 교회도 나가시고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산책을 하셨다. 그즈음 하여, 아버지는 순탄치 못하였던 자신의 지난 삶과 다가올 죽음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고뇌를 하셨던 것 같았다. 그리고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스케줄 표를 작성하신 모양이었다.
부산사학계의 원로이셨던 아버지는 평생의 교직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셨다. 사립학교를 경영하시면서, 학교 신축이전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사고 및 붕괴사고 등으로 자금난을 겪으면서 끝내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 후, 낮선 서울로 황망히 떠나와 은거하시며 사셨다.
학교 신축이전에 관한 일을 내가 주관하였기에 부도는 나의 책임이 컸다. 명예를 잃으신, 말년의 아버지 삶을 지켜보면서 자책감으로 가슴 아파하였다.
다시 중국에 들어가 한 달쯤 머물다 귀국하였을 때 아버지의 상태는 한결 나빠져 있었다. 많이 야위셨고 앉아서 엉덩이를 밀며 화장실 가시는 것 외는 기동도 못하셨다.
베이컨은 “나는 살고 있을 때 죽음 외에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지만 아버지는 살아서 죽음 준비를 하고 계셨다. 평소에 쓰시던 사소한 소지품부터 자신이 가시고 나면 필요 없을 물건들도 직접 정리하셨다. 장례식 사회는 누구에게 시킬 것인지, 식장에서 낭독될 자신의 약력을 적어 놓는 등, 묘지와 장례절차에 대하여도 꼼꼼히 챙기셨다. 홀로 남게 될 어머니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라며 자세히 일러 주기도 하셨다. 칩거 후 만나지 못하였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하여 며칠 동안 부산을 다녀오시기도 하셨다고 한다.
살아가는 일도 어렵지만 죽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고통에 시달리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힘들어진다.
아버지는 이미 예정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죽음에 다가가기로 하신 것 같았다. 더 이상의 삶은 고통의 연장과 식구들의 부담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신변정리를 끝내신 아버지는 음식이라면 그 무엇도, 미음까지도 거부하셨다. 병원은 물론 링거주사도 일체 거부하신다. 어머니와 우리가 아무리 사정하여도 완강하셨다. 냉수로 타들어가는 목만 조금씩 추길 뿐이었다. 아버지는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자신이 언제쯤 가게 될지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음식을 거부하신지 두어 주일 후부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하였다. 혼미한 상태에서도 영양제는 물론 식염수 링거도 계속 거부 하셨다. 그렇게 20일 쯤 지나 혼수상태에 빠지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 단 하루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스케줄대로 서둘러 가셨다.
산소에는 부산 동생도 분당 여동생 부부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물 머금은 초록잔디와 빗물에 씻긴 까만 비석이 예쁘게 어우러져 있다. 비석에는 아버지가 생전 즐겨 부르시던 찬송가 460장(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이 선명하다. 공자(孔子)는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죽음의 교훈은 삶도, 죽음도 모르는 나에게 깊은 고뇌를 하게 한다.
|
|
| 강승택 |
11-05-05 21:31 |
 |
|
자신의 마지막 가는 여정까지도 스스로 통제하실 수 있었던 아버님의 삶이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훌륭하신 아버님을 모신 김용순선생님의 삶또한 남기실 이야기가 많을 것같습니다.
|
|
|
| |
| 김용순 |
11-05-06 07:46 |
|
|
강승택 선생님, 요즈음 저의 주위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 보면서, 아버지의 죽음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
|
|
| 이진화 |
11-05-06 00:54 |
|
아~,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
스스로 곡기를 끊고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시다니 누가 감히 그런 결단을 하고
실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필 3년 간의 투병 생활 중에 장편소설을 써낸 소설가 최인호 선생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생로병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69세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나네요. (-_-;;
|
|
|
|
| 김용순 |
11-05-06 07:51 |
|
|
이진화 선생님, 근래 수명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그것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 깊은 깊은 고뇌를 하게 됩니다.
|
|
|
|
| 임병문 |
11-05-06 14:13 |
|
김용순 선생님,
그래서 죽음이란 삶의 완성이라 일컫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자가 말에서 내려 죽은 자에게 몸을 낮추는 것 또한 그만큼
삶이란 그 의미가 컸던 것이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
|
|
|
| 김용순 |
11-05-06 17:08 |
|
|
임선생님, 삶이란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삶을 내려 놓기가 얼마나 힘 들겠습니까. 평소에도 아버지를 좋아하고 존경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자식들에게 좋은 교훈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
|
|
|
| 박원명화 |
11-05-06 22:38 |
|
|
정말 좋으신 아버님을 두신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면 모두가 아름다운 것뿐, 그래서 더 그립고 애잔한 것이 아닐런지요. 사는 것이 중한 게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게 더 중한 것이라던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열정을 가지고 작가의 길을 열심히 걷는 선생님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
|
|
| |
| 김용순 |
11-05-07 09:25 |
|
|
사무국장님 항상 격려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당시에 미처 느끼지 못하였던 점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말 휼륭한 죽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자식 키우는 일과 경제적인 활동까지 접고나니, 내가 살아있다는 증명을 무엇으로 해야 할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
|
|
| 최복희 |
11-05-07 08:46 |
|
김용순 선생님, 참 훌륭하신 아버님이시군요.
'사랑과 그리고 마무리'(헬렌 니어링 지음)에 나오는
'스코트'의 죽음과 흡사합니다.
24세 연하의 아내(이 책을 지은 작가)와 53년 동안 함께 살고
만 100세가 된 지 3주일 뒤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지요.
그는 오랫동안 최선을 다해 살았고 아프지도 않은데 일부러
음식을 끊음으로써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삶을 마쳤습니다.
지은이의 말
'나는 느슨하게 그이 손에 마지막까지 쥐어져 있던 고삐를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선생님의 좋은 글을 읽으며 삶과 마무리를 새삼 생각케하고
숙연해 집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
|
|
|
| 김용순 |
11-05-07 09:34 |
|
|
최선생님, 저도 금년 여름이면 공짜 전철표를 받게 됩니다. 세상일에도 손을 놓았으니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과 가족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한마디로 "아름답다"고 정의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임병식 |
11-05-07 10:32 |
|
|
선친께서 별세하신 사연이 눈물겹습니다. 다 그렇게 하신것도 당신의 고톨을 참아내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부정이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불효부모 사후회라고 누구나 돌아가신 후에는 회한이 가득해 지나 봅니다.
|
|
|
| |
| 김용순 |
11-05-07 13:34 |
|
|
임병식 선생님, 아버지의 명예를 잃게 만든, 나의 부족한 능력을 많이 탓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생전에도 사려 깊은 분이였습니다. 아버지를 널리 자랑하고 싶어 이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자식이 아닌, 부모를 자랑하는 것은 괜찮겠지요. 감사합니다.
|
|
|
|
| 윤행원 |
11-05-07 10:45 |
|
김용순 선생님, 대단하신 아버지를 두셨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초연함을 보게 됩니다.
well being 과 wel dying 의 엄숙함을 보았습니다.
|
|
|
| |
| 김용순 |
11-05-07 13:39 |
|
|
윤행원 선생님, 이제 내 나이면 well being은 대충 끝나가고, well dying에 대하여 고민 해 보아야 될 때라고 생각 됩니다. 내가 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선배님들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
|
|
| 이방주 |
11-05-07 10:50 |
|
감동입니다.
삶이 훌륭하신 분들은
죽음도 훌륭하신가 봅니다.
어떻게 죽는가 하는 문제는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
|
|
|
| 김용순 |
11-05-07 13:46 |
|
이방주 선생님, 감동하셨다니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아름답다고 표현하여 보았습니다.
연장된 수명때문에, 이건 아니다 싶은 모습을 많이 봅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감사합니다.
|
|
|
|
| 이희순 |
11-05-11 11:56 |
|
어버이는 열 자식을 건사하여 사람 노릇하게 만들어주시고
여생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하시는데
열 자식은 한 부모도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자식 위한 어버이의 희생은 자자손손 유전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
|
|
| |
| 김용순 |
11-05-11 22:33 |
|
|
이희순 선생님, 부모의 마음과 자식이 부모 생각하는 마음은 완전히 다르지요. 늙고 병든 부모는 자식이 짐으로 생각하는 현실입니다. 요즈음 요양원에 가보면 사실 현대판 고려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태에 따라 인성도 디지탈화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
|
|
|
| 김자인 |
11-05-11 16:36 |
|
김용순 선생님 참 훌륭한 아버지를 두셨군요.
살아서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이 어때셨을까 짐작이 갑니다.
요즘들어 사는일보다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더 힘들고 어렵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글 잘읽었습니다.
|
|
|
| |
| 김용순 |
11-05-11 22:36 |
|
|
김자인 선생님, 저도 아버지를 닮아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앞으로 많은 고민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