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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에서 수천  만 배에 달하는 방사능이 날아온다면서 당분간  외출을 하지 말라는 딸애의 당부였다. 그 당부를 저버릴 수 없기도 하고  내 볼일 아닌 타인의 볼일로 깎두기처럼 묻어다나던 내가 오늘은 목련나무가 바라다 보이는 창가에 앉아 컴퓨터 자판과 씨름한다.
이따금 목련나무의 쓸쓸한 가지에 참새도 비둘기도 아닌 얼핏보아 그다지 예쁘게 생기지 않은 새 한 마리가 짝도 거느리지 않은 채 홀로 앉아 있다. 날아갔나 싶어 살펴보면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고, 앉아 있나 싶어 바라보면 또 어느 순간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저 새는 대체 이름이 뭘까. 날마다 아파트 단지 소나무를 오가며 구욱! 구욱! 처량맞게 우는 새가 아마도 저녀석이었지. 그런데 왜 저녀석은 짝궁도 없이 혼자일까. 눈은 자판을 보고 있으나 생각은 목련나무 가지에 홀로 앉아 있는 .별로 잘 생긴 축에 들지 못하는, 참새보다 등치가 큰 편인 이름 모를 새에게 쏠려지고 있다.

딱 이런 계절이었다. 아이들 개학이 시작되고 골목안 집에 목련꽃이 우아하게 그 탐스런 꽃봉오리를 터뜨리던 봄철 이야기다.그때쯤이면 나는 나 자신이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세 아이들 뒷 바라지로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교보문고에 세 아이들을 몰고 가서 새학기에 필요한 학용품 등을 듬뿍 구입하여 더는 살 물건이 없기를 바랐으나 준비해야 할 품목이  또 있었다.
모의고사 끝나고 일찍 귀가할 아들을 염두에 두고 현관문을 잠그지 않은 채 대문만 대강 걸어짐근 뒤에 집을 나섰다. 집에서 H백화점 까지는 10분~20분 거리였고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대로 즉시 귀가할 예정이었으므로 크게 걱정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한참 언덕을 내려가다가 나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잠시 갔다와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너희들끼리 먼저 내려가라 말하고 나는 집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런데 웬일, 불과 5분 정도 되었을까. 우리가 집을 나선 게 그토록 짧은 시간이었는데 집 안팎은 이루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도둑들이 집단으로 침입해서 집 전체를 난장판으로 쑤셔놓고 사라진 후였다. 평소에 잘 착용하지 않고 도자기 바닥에 둘둘 말아 넣은 목거리 반지 등속이며 책갈피에 숨겨둔 신권 지폐 등 쓸만 한 것들은 싹 쓸어간 후였다.
전화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올케의 말은 "하늘이 영희 고모를 살려주었다. 경찰에 신고도 하지 말아요! 목숨 살려준 게 어딘데!" 라고 하면서 집에 있었으면 영락없이 내 목숨이 위험했다는 이론을 폈다.
또 언젠가. 가까운 친척 한 분이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서다 픽! 하고 쓰러진 채 그냥 이승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내가 전화하니 "영희 고모 대신 그 양반이 저승사자에게 붙잡혀갔으니 암말 말고 기도나 해주세요." 했다.

도둑이 들고 나서 얼마 후  우리 가족이 사랑해 마지 않는 스피츠 계열의 강아지-스치가 홀연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다. 그 개를 기른 게 무려 6년이었는데 개에 대한 아이들의 총애가 유별났다. 그런데 그때도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그것은 올케가 아닌 이웃의 말이었다.
"당신  대신 개가 죽었군요.그 개가 당신을 살린 겁니다!"
어디에 근거를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섬뜩하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올케의 말을 빌리자면 조상님들이 영희 고모를 살리기 위해서 엉뚱한 생명들을 대신 데려간다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면 그렇게만 알아두라고 콱! 못을 박았다.
나는 단명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데 그때마다 다른 목숨이 나를 대신하여 저승으로 호출받아 갔다는 것인가.

부모님 무덤가에 심은 할미꽃도 곧 피어날 것이다. 방사능 피해가 덜 하다 싶은 날을 택하여 형제들과 대청호 언덕의 부모님 산소엘 다녀와야겠다.
이번에 만나면 올케에게 단단히 질문할 일이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렇다면 나는 벌써 죽어 이 세상에 없어야 하는 생명 아닌가.그 이유를 물어 보고 싶다.
정말 그랬을까? 죽지 않고 살아있어야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목련나무 가지에 잘 생기지도 못한 새 한 마리가 다시 날아왔다. 황사바람 방사능 바람을 견디며 홀로 앉아 있는 저 새는 무엇을 그리워 하는가. 나처럼 살아남은 이유를 탐색하기 위해 자중하는 모습인가. 꽃 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목련나무 가지 위에서 구욱! 구욱! 그 새가 울고 있다. 새의 울음소리가 구성지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