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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11-02-14 11:54
조회 :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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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의 사후성(事後性)*
김창식
작년 한 해 상영된 영화 중 아직도 논란과 화제의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영화는 <인셉션(Inception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입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데다 아날로그적인 실감나는 비주얼로 화면에서 잠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게 관객을 몰아쳐 몰입을 강요했지요.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은 놀란 감독이 관객의 무의식 속에 꿈을 인셉션한 셈이라고 당혹스러워 했습니다.
하이스트 영화
다중 액자구조를 취한 블록버스터 <인셉션>의 줄거리는 평범한 듯 간단치 않습니다. 전형적인 하이스트(Hieist각 분야 전문가들이 팀을 이루어 범죄를 도모하는 영화 장르)물로서 의뢰인(와타나베 켄)의 사주를 받은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리더로 한 일당이 경쟁회사 유력 재벌 상속자의 꿈속에 침입, 거짓 내용을 이식해 회사합병을 방해하려는 기도가 기본 포맷이지요. 드림팀은 대상(상속자)의 꿈(잠재의식)에 틈입해 변형된 내용을 저장하려 합니다. 무의식의 단계가 깊어질수록(꿈1→꿈2→꿈3→꿈4) 대상자의 잠재의식 속 저항도 거셉니다. 일단 총격전이나 자동차 추격신 등 액션장면을 모두 꿈으로 간주하면 이해가 쉬우려나요. 그래도 어렵다고요?
왜 어려운가?
영화를 본 관객이 대체적으로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있을 수 있는 반응입니다. <인셉션>이 꿈(무의식, 잠재의식)의 층위(層位)를 다룬 영화인 때문입니다. 무의식의 힘은 광대무변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 정체가 밝혀지거나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인셉션>은 해석되지 않음으로써만 해석될 뿐이지요. 이상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요? 이에 덧붙여 놀란 감독은 원시신앙의 상징물(꿈과 현실, 혹은 죄의식과 치유를 상징하는 토템 팽이), 그리스 신화(꿈의 미로를 설계하는 여주인공 아리아드네), 물리학(펜로즈의 무한계단**), 심리학(림보***) 등 잡다한 코드와 지식을 버무려 부담 가득한 종합선물세트를 안겨준 것이지요. 이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관객들이 영화를 어렵게 느낀 것은 당연합니다.
중층의 서사구조
영화가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참다운 이유는 정작 딴 데 있습니다. 기둥 줄거리와 서브플롯이 병행 진행되는 때문이지요. 게다가 부수적 이야기에 주제가 숨어 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복수 관계자의 해킹작업에 코브 개인의 잠재의식이 끼어들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팀을 곤경에 몰아넣습니다. 남의 꿈을 디자인하지만 정작 자신의 꿈에는 무력한 코브의 아이러니와 슬픔. 코브의 억압된 기억의 심연에는 아내 멜(마리온 코티야르)에 대한 죄의식이 자리하고 있지요. 코브가 사고(아내의 투신자살)의 단순한 목격자인지 범행의 방조자, 또는 연루자인지는 확실치 않아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아내와의 에피소드 또한 왜곡된 기억일 수 있으니까.
토템 팽이의 함의
<인셉션>은 액션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걷어내면 기억과 죄의식의 문제를 다룬 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감독의 전작 <배트맨 2:다크 나이트>처럼 스케일 큰 액션과 화려한 비주얼(무중력 격투신, 도심으로 돌진하는 기관차, 설원에서의 추격신, 도미노 성냥갑처럼 붕괴되는 건물)에 철학적 성찰을 버무리는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장기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함의와 이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코브가 꿈에도 그리는 집과 자녀에게 복귀하는 순간 토템 팽이가 캡처됩니다. 팽이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셔터 아일랜드>에 나오는 넥타이처럼 은폐된 기억의 숙주(宿主) 역할을 하는 매개물입니다. 기억의 회복과 망각의 경계에서 멈추거나(현실), 회전하는(꿈).
이별, 치유, 구원…
해킹의 권위자 코브가 왜 그 자신은 꿈을 설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내에 대한 죄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주제가 억압된 기억이 사후 개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니만큼 정신분석학의 비조(鼻祖) 프로이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반이 기억이고 기억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요소가 죄의식임을 고려하면 감독의 관점은 익숙한 정신분석학적 주제를 변주한 것입니다. 코브가 아내에 대한 집착과 죄의식에서 벗어나 염원하던 가족과의 화해와 일치를 이룬 것인지 감독은 판단을 유보한 채 기억과 죄의식의 메커니즘에 관한 고전적인 질문을 던져 마음을 어둡게 하는군요. 구원에 이르려면 기억해야 하는가, 망각해야 하는가. 진정한 평안과 상처의 치유는 결국 가깝고 소중한 사람과의 헤어짐을 담보로 얻어지는 것인가.
* 사후성(Nachtraeglichkeit):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개념. 과거의 기억이 나중에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
** 펜 로즈의 무한계단(Penrose Stairs): 물리학자 펜 로즈가 창안한 개념. 2차원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착시에 의한 특수계단.
*** 림보(Limbo): 꿈속의 꿈. 베르그송의 '순수의식(le souvenir pur)'을 구체화함. 원래는 지옥의 경계, 또는 고성소(古聖所).
@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 게재.
2011. 2. 8,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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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1-02-14 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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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선생님! 부럽습니다. 왜냐하면요, 글을 쓰기위해 어떤 주제에 깊이 몰입해야 하고, 전문적인 정보도 입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의미에서 저 자신이 조금 나태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저도 제 전문분야를 해집고 다녀야 할 것 같아서 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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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2-14 1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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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영화, 음악, 철학은 제 전문분야가 아니고 관심분야라고 해야 맞습니다. ^^
학교 때 창작과 문예비평을 아우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만 사정으로 뜻을 접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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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1-02-14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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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전문분야하고 글하고는 뭐 상관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별개라 생각합니다. 우리 원로이신 이정원선생님께서 꽃을 주제로 수필을 쓰시는데, 전공이 꽃이 아니고 뭐 꽃집을 운영하시는 것도 아니지만, 글을 그렇게 전문성있게 쓰시는데, 제가 부러울 뿐입니다. 김창식 선생님께서도 그런 맥락에서 부럽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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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2-14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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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뜻 잘 받들겠습니다.
영화, 음악, 철학 지식이나 신화, 고전 이야기를 일상에 끌어들여 현시성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자기성찰과 깨달음을 얻는 입체적인 수필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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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02-14 1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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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역시 유익하고 좋을 글 대할 수 있어 기쁨이 큽니다.
더불어 선생님의 다양하심이 부럽기도 하고요.
올 한 해 건투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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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2-14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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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문 선생님, 여여하시지요. 공감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필가협회 신년 모임에 오시는지요.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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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2-15 0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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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재미있습니다.^^
<인셉션>은 아직 보지 못했고, <셔터 아일랜드>는 봤는데 매우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둘 다 디카프리오가 나오네요.
수필가협회 총회 때 뵙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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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2-15 1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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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두 배! 이진화 선생님이 재미 있다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글 읽으신 지인들이 너무 어려운 글이라고 절 많이 공박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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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1-02-15 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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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선생님은 다방면에 깊은 소양이 쌓여있는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 제작기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인데,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서는 책에서 접한적이 있습니다.
요즘 나온 영화들은 영화기술의 진화로 없는 세계도 그럴듯하게
오히려 충격적으로 그려놓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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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2-15 1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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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전임 회장님, 그간 자세한 안부 여쭙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직 공부와 수련이 많이 부족하니 잘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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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1-02-18 2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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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선생님 전 영화 본 지가 오랩니다.
김선생님께선 영화를 자주 보시고 이렇게 깊이 해석하시고
평론을 쓰시니 저 같은 문외한은 부럽기만 하군요.
아무튼 저도 이 영화를 보며 선생님과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ㅎ
언젠가 한국수필가협회 세미나에서 어느 주제 발표자가
이제는 색다른 글 개성있는 글을 써야할 때라고 한 말이 새삼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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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2-20 1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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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그간 안녕하신지요? 뵙고 인사드린 지 사뭇 오래이군요.
이 글은 영화 에세이라기보다 평론적 글이어서 싣기가 좀 망서려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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