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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의자 


이진화


 나의 다락방 서재에는 ‘생각하는 의자’가 있다. 7년 전에 이사를 오면서 들여온 나무 흔들의자로 언제나 하늘로 열리는 창 아래 놓여있지만 그 의자가 거기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따로 있다.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해야 할 때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는데 요즘 들어 부쩍 생각하는 의자에 앉는 일이 많아졌다. 글을 쓰다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컴퓨터 의자에서 ‘생각하는 의자’로 옮겨 앉는다. 단지 두 어 걸음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뿐인데도 새로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어느 한 점에 몰두하기보다 그 주변의 공간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며 절대 틀림없다며 고집을 하던 일도 다른 관점으로 바꾸거나 의식을 확장시킨다는 뜻이다. 

 얼마 전부터 일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생각을 하며 종종 ‘생각하는 의자’에 앉았다.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는 인생을 잘 살아가려면 3모작해야 한다고 하면서 1모작은 '일 중심', 2모작은 '보람 중심', 3모작은 '자연회귀와 자아 찾기'라고 했다. 그 강연 내용을 보며 지금까지는 일에만 몰두를 했는데 이제는 일을 하더라도 보람에 초점을 맞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하프타임에서 숨을 고르고 준비를 하여 후반기를 잘 살아야 멋진 피날레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즈음 그런 생각들을 한다.

 그래서 몇 가지 일을 정리하고 ‘보람 중심’의 일들을 찾기 위해 종종 ‘일하는 의자’에서 ‘생각하는 의자’로 옮겨 앉았다. 초점을 바꾸었더니 시간과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기고 더 많은 일을 할 수가 있다. 내 안의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벗어나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면 적은 힘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일이 보인다. 전에는 윈-윈이라는 상생의 원리에 집착했지만 이제는 윈-윈-윈이라는 보다 넓은 세계로 의식을 넓히게 된다. 바로 나-너-우리(사회)에 고루 기여하는 삶의 자세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우리 또래는 베이비부머로서 신중년기(55세~75세)에 접어들었고 자녀들은 청장년기에 들어섰다. 시대의 주역이 바뀌고 있다. 다행히 올해부터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는 베이이부머들은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비록 올해부터 50만 명씩 직장에서 퇴직을 하기는 하지만 그동안 좋은 교육을 받았고 많은 혜택을 누렸다. 지금까지의 관점을 바꾸어 봉사를 하고 수입도 생기는 분야에 눈을 돌려보면 의외로 새로운 일거리의 발견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욕구와 고집을 조금씩 줄이고 더불어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실제로 주부들이 요양보호사가 되고, 퇴직한 기업의 임원들이 초등학생의 코치가 되며, 예비역 장성이 시니어들을 위해 상담을 하고, 기술사가 축적된 노하우로 컨설팅 일인창조기업을 만들고, 퇴직한 교장 선생님이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들을 돌본다.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서로의 이해에 집중하면 관계가 경직되지만 나누려고 할 때는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지난 3월 11일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 방사능 유출의 재앙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반응들이 쏟아졌다. 잇몸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데 사랑과 미움의 양가감정을 가진 이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짤막하게 정리하여 글을 올렸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에도 사태는 시시각각 변하고 나는 컴퓨터 의자에서‘생각하는 의자’로 여러 차례 옮겨 앉아야 했다. 

 내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두 아들이 '아빠 엄마는 보험을 얼마나 들어두었느냐'고 물었다. 올해 3월이 지나서 가입을 하면 암 발병 시의 보험금이 많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주위에 암이나 뇌혈관질환 때문에 몸과 마음뿐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고통을 당하는 친구와 이웃들이 많은데 정작 나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래 전에 매우 적은 규모의 보험을 들어놓고 잊고 있었다. 늘 노부모님이 편찮으실까 봐 걱정했는데 우리라고 해서 예외가 있을까.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인터넷을 보고 노후 대비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보험 설계를 했다. 왜 그동안 각자 방안에 들어앉아 컴퓨터와 마주앉아 그런 시간을 놓쳤을까.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시면 책상 옆에 놓인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 내가 일하는 것을 보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늘 활동적인 어머니에게는 그것이 생각하는 의자가 아니라 ‘대화하는 의자’이다. 아직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는 팔순의 어머니가 요즈음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셨다. 교회에서 10년 동안 꽃꽂이 봉사를 해오셨고 건강하고 젊어 보여서 꽃가게에 스카우트 되었다고 한다. 일주일에 이틀 반나절씩 일해서 용돈을 버신다고 할머니들 사이에서 단연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을 마치고 전철을 타면 70대 노인이 오히려 자리 양보를 해주었으면 한다며 유쾌하게 웃으셨다.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좋은 선택을 하고 즉시 실천에 들어가는 어머니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나는 주로 식구들이 잠든 자정 무렵에야 다락방에 올라간다. 책상에 앉기 전, 흔들흔들 '쉬는 의자'에 앉아 일인극을 해본다. '생각하라, 쳇바퀴 도는 일상 속에서도 반드시 쉼표가 필요하리니. 대화하라, 우리 모두 총알 같이 달리는 시간의 등에 올라타고 있으니.' 관객은 없고 의자와 나, 단 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