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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원명화 |
날짜 : 11-01-14 12:41
조회 : 2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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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찔이 /박원명화
새벽녘, 갓난아기의 애타는 울음소리에 설핏 잠을 깼다. 엄마를 찾는 것일까, 배고파 보채는 것일까. 온 신경이 그 소리에 쏠렸다. 알고 보니 그게 아기 울음이 아니라 암고양이가 님 그리워 부르는 소리였다니….
다시 며칠인가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어둡고 힁한 아파트 광장을 맴돌았다. 암고양이가 또 그러는가 싶어 진저리가 쳐졌다. 그런데 어제부터 그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보았더니 “새끼 밴 고양이였어요. 새끼는 나야하고, 날씨는 춥고, 갈 데는 없고, 아마 그래서 그토록 울었나 봐요. 저기 담장 밑에 박스를 놓고 그 안에 담요를 깔아주었더니 거기에 들어가 조용하네요.” 아저씨가 가르쳐 준 곳을 살펴보았지만 고양이의 모습은 볼 수가 없고 찬바람만 쌩하니 불어왔다.
이튿날, 꽉 찬 쓰레기봉투를 버리려고 나갔다. 경비초소 담장아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박스 안을 유심히 살피며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으로 가 보았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어요. 저것 봐요. 까만 바탕에 흰줄이 어쩜 귀엽기도 해라”
새끼를 낳느라 힘이 빠져 지쳤는지 어미고양이는 휴식을 취하는 듯 누워 널브러져 있으면서도 경계하는 눈빛만은 매서움을 띠고 있었다. 10센티쯤 될까,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앙증맞은 새끼고양이 세 마리가 어미젖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그 모습이 신기한 듯 엄마 따라 나온 아이들도 목이 빠져라 들여다보며 덩달아 신이 났다. 대여섯 살쯤 된 사내아이가 제 엄마 치마꼬리를 붙잡고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자며 떼를 썼다.
“엄마, 으응...저기 고양이 한 마리 가져다 키우자”
엄마는 아이를 이해시키려 온갖 설명을 해주는데도 아이는 막무가내로 칭얼댔다. 참다못한 새댁이 그이어 아이 손목을 잡아끌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사람들도 춥다며 하나 둘 그 자리를 떴다. 어미젖을 열심히 물고 핥고 머리를 들이미는 어린고양이의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오해했던 마음도 덜어낼 겸 어미고양이에게 뭔가 먹이고 싶어 집으로 들어왔다. 마침 먹다 남은 고깃국이 있기에 밥을 좀 말아 가지고 내려와 막 허리를 굽히는 순간 경비아저씨가 소리치며 뛰어왔다.
“먹을 거 주시게요. 지금은 어미가 무척 예민해 있을 겁니다. 본능적으로 공격을 할 수도 있으니 직접 주지 말고 가까운 곳에 그냥 놓아주세요. 사람에게 버림받은 고양이라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겁니다.”
따뜻한 집에서 사랑받고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버림을 받게 되면 동물이라고 어찌 마음의 상처가 없을까. 간음한 여인 헤스터에게 평생 ‘주홍 글씨’를 가슴에 달게 하고 세상 밖으로 쫒아내려 했던 것처럼 우리 손으로 버려놓고 ‘도둑고양이’라는 억울한 이름까지 붙여 부르고 있지 않은가.
요즘은 어딜 가나 도둑고양이들이 많다. 가끔 길 앞을 휙 지나가거나 쓰레기통을 마구 헤집는 모습을 볼 땐 해치려 달려드는 것도 아닌데 흠칫 놀라곤 한다. 고양이는 대체로 깔끔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살기위해, 종족번식을 위해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것 보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살기 위한 본능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나도 고양이와 벗 삼아 놀던 때가 있었다. 고양이를 영물이라 하면서 어머니는 내가 고양이와 노는 것을 내내 못마땅해 하셨다. 개처럼 순종하지는 않지만 저를 예뻐해 주면 잘 따르는 고양이를 왜 경계하라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랫집 무당 할머니 곁에는 언제나 ‘움찔이’란 고양이가 붙어 다녔다. 술을 좋아해 늘 코끝이 딸기처럼 빨갛던 할머니. 술만 먹으면 아무에게나 욕설을 서슴없이 잘해 동네에서는 ‘욕쟁이 무당할머니’로 통했다. 그런 할머니가 그 집 식구들도 알다가도 모를 일 이라고 할 만큼 나를 유난히 예뻐해 주었다.
할머니가 나를 부르기도 했지만 나 역시 자주 할머니 집엘 갔다. 나는 할머니의 말벗이었고 ‘움찔이’는 만만한 내 친구였다. ‘움찔이’란 이름은 내가 지어주었다. 처음 봤을 때 낯가림인지 어리벙벙 했다. 부드러운 줄무늬 털이라도 만져주고 싶어 등을 살짝 쓰다듬을라치면 놀란 듯 몸을 움찔댔다. 그래서 붙여준 이름이다.
처음부터 녀석을 좋아 했던 것은 아니다. 예리한 눈빛, 날카로운 이빨, 뾰족한 발톱, 생김새부터가 기분 나쁜 게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거기다 마루난간에다 꼭 배설을 하는 통에 수없이 할머니에게 지청구를 듣기도하고 심할 때는 물고 있던 담뱃대가 회초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발에 치이고 맞으면서도 녀석은 할머니가 뭐가 좋은지 늘 곁에 쭈그려 있기를 좋아했다. 함께 있을 땐 미운 자식 대하듯 하다가도 어쩌다 눈에라도 보이지 않을라치면 할머니 역시 ‘음찔이 어디냐’ 하며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찾아다니시곤 했다.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뜬것은 이른 봄이었다. 무슨 암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움찔도 몹쓸 병이나 든 것처럼 늘어져 마루 밑에서 꼼짝도 안했다. 밥을 줘도 나오지 않고 내가 아무리 불러도 들었는지 말았는지 미동도 안했다.
할머니도 죽고 없는 세상에 움찔이까지 병이 난 것 같아 겁이 더럭 났다. 나는 움찔이를 생각하며 고구마를 맛있게 구웠다. 뜨거운 군고구마가 식을 새라 치마로 꼬옥 여며들고 할머니 집으로 내달았다. 분명 마루 밑에 널브러져 있어야할 움찔이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고 찾고 있는 데 그 집 아저씨가 들어왔다.
“움찔이 찾는 거냐. 그 녀석 청승떨고 있는 게 보기 싫어 내다 버렸다.”
나는 그때처럼 아저씨가 미워 본적이 없다. 며칠인가 움찔이가 찾아 온 동리를 헤맸다. 차가운 성에로 뒤덮인 풀숲을 헤치며 몇날며칠 온 들판을 뒤져 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그 후 나는 움찔이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초목이든 그 생명의 무게는 똑 같다. 외로움도 덜고, 즐거운 만족감을 얻기 위해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부쩍 많다고 한다. 사람은 동물로 하여금 필요한 욕구를 충족하고 동물은 그런 주인을 섬기며 즐거움을 준다. 가족의 일환으로 동고동락하는 이로운 공생共生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애완동물이 병이 들었다고, 늙었다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장난감처럼 내다 버릴 거라면 애초부터 키우지 말았어야 했다. 사랑을 나눈 동물들이야 죽도록 주인을 섬긴 죄 밖에 더 있을까.
가깝게 잘해주던 사람이 어느 순간 손익에 따라 상처를 주고 떠났다는 소리는 들어 봤어도 동물이 먼저 키워준 주인을 배반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장화신은고양이’를 비롯해 ‘검은고양이 네로’ 그리고 ‘톰(고양이역)과 제리’에서 고양이는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웃음과 꿈을 주고 있는가.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애완동물을 좋아해 기르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다해 마지막까지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삶이 단조롭고 건조한 요즘, 그 옛날 어리버리하던 움찔이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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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희 |
11-01-14 1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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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추위에 얼마나 고생할까 마음이 아파오네요.새끼들은 젖이나 제대로 먹을런지...
나도 강아지 두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자식같은 생각이 들어 내가 먼저 죽으면 저것들 어떻하나, 쓸데없는 걱정을 할때가 있답니다.
고양이를 따듯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선생님같은 분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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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1-01-14 1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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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 새끼밴 고양이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본적이 있습니다. 그걸보면서 '어찌 겨울을 나려고 하필 이때 새끼를 뱄을까" 걱정을 해본 적이 있는데, 박선생님도 그런 걸 보셨군요.
고양이의 사랑놀음은 유별나지요. 밤새 울어대고 다니는 것을 보면 여간 신경이 씌이지 않습니다. 글중에 '사람은 상처를 주고 떠나지만 동물은 배신을 않는다'는 말이 공감이 갑니다. 시리즈로 올려준 회원님들의 작품, 동장군이 맹위를 떠는 날씨때문인지 짠해오는 마음이 더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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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1-01-14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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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고양이에도 이렇게 연민의 정을 느끼는데, 공들여 키운 멀쩡한 건강한 소, 돼지를 강제로 알락사 시켜서 생매장하는 것이 한국소의 1/10 이라 하니, 그 농심이 어떻겠어요. 그 새끼까지.
요즈음은 그 구제역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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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1-01-15 1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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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고양이 좋아합니다. 고양이 뿐만 아니라 개도 좋아하지요. 고양이와 개를 보면 어릴적 생각이 마구마구 납니다. 어릴적에 그렇게 개와 고양이를 벗삼아 지낸때가 있었으니까요. 추억이 어린글 잘 읽고 갑니다. 박원명화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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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1-01-15 1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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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태어난 지 3일만에 어미를 잃은 고양이를 10년 간 키운 적이 있지요.
젖먹이때부터 내가 키워 쥐를 잡지 못하고 내 치마폭에서 살다가
개에 물려 죽었지요.
'움찔이' 글을 읽으며 남다른 아픔이 전해옵니다.
이 추위에 저 어린 고양이들이 잘 클지 걱정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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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01-15 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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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책임지지못할 사랑이라면 애초 불러 들이지나 말 일이지, 인간은 왜 짓지않아도 될 죄를 스스로 만들어가는지 알수 없군요. 고양이 가족의 그 후가 궁금하군요.오랫만에 올리신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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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1-18 2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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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글을 올려 놓고 가슴은 두근두근.....항상 초심의 마음에서 작품을 쓰곤합니다.
핵가족 시대, 외로운 마음으로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 들였다가 감당 못해 버리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 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공감해 주시는 마음쓰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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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주 |
11-01-19 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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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아파트에도 자유를 꿈꾸는 낭만자객 "나비"라는 길 고양이가 있었는데... 몇 년을 아파트 현관 옆에 세들어 살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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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1-20 0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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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선생님! 반갑네요.
근데 한국에 온 건가요? 남다른 정이 느껴지는 이선생님이라 보고 싶네요.
지금도 여전히 작품활동 활발하리라 믿습니다. 이선생님의 좋은 작품
기대 되는데요.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는지.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문운의 꽃도 활짝 피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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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1-02-02 2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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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생님 올만이네요
왕성하게 활동하시는모습 보기 좋습니다
어제 명절쇠러 들어왔어요
이비쁜 와중에서도 요샌 타래 회장직에 임명 됬네요~ ㅎㅎ
앞서 다른 댓글에서 말슴드렸듯이 이젠
아프리카쪽으로 들락거릴것 같아요
봉사나 그런 멋있는 일이 아니고 돈버는 속물일로 그렇습니다
긍을 읽다 보니 참 아름답네요
내가 전에 써둔 정저지와 라는 고양이 글이 있는데
그것은 좀 슬프고 생존경쟁에 관한 이야기인데
시간 날때 한번 올려 볼게요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건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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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2-03 1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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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만이네요 정선생님!
늘 하시는 사업이 번창하시길 빌겠습니다. 열정으로 삶의 나날이 뜨거울 것 같은데, 이번 엔 또 아프리카쪽으로 가신다니, 세계화가 되는건가요. 돈이든 봉사이든 건강할 때 지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열심히 뛰는 만큼 좋은 결과 기대합니다. 바쁘시더라도 작가회 회원으로
임무도 충실히 하신다는 좋은 듯 싶은데요. 그리운 얼굴도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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