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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11-01-12 13:42
조회 : 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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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배기
김창식
동네 어귀 빈터에 못 보던 가게가 섰다. 생필품을 바닥에 늘어놓고 파는 좌판이다. 물건을 사고 셈을 치르려 하자 중년의 주인아저씨가 말없이 손가락을 펴보였다. 말 못하는 사람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찬바람이 불자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단속에 걸린 것일까 아니면 장사가 신통찮아 가게를 접은 것일까. 날씨도 추워지는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소외받고 그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을 떠올리면 늘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라진 좌판아저씨는 몸이 성치 않은 사람에 대한 아픈 기억을 일깨워준다. 목발을 짚고 자갈길을 올라오던 하늘배기에 대한 추억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느 해 설 무렵이니 예닐곱 살 쯤 되었다. 대문 앞 큰 길과 맞닿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은 우리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엄마를 졸라 때 이른 설빔 옷을 차려입고 동무들과 사방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하늘배기다!"라고 소리쳤다. 하늘배기는 한쪽 다리가 없어 목발을 짚었고 고개는 기운 채 얼굴을 받치고 있어서 비스듬히 허공을 바라보는 모양새였다. 하늘배기란 별명도 여기서 비롯하였다. 우리가 그곳에서 놀고 있던 것은 건성이었고 실은 하늘배기를 기다렸다.
하늘배기는 어디에 갔다 오는지 모르지만 해가 서산에 걸릴 때쯤이면 언덕 자갈길을 절뚝거리며 올라와 우리 집 앞을 지나가곤 했다. 하늘배기가 나타나자 누군가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노래를 선창했고,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아이들이 합창했다. 또 다른 누군가 "하늘~ 배기 설날은~ 어저께고요~" 라고 바꾸어 부르자 나머지가 키득키득 웃으며 따라 불렀다.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좀 더 어린 꼬마였을 적에 하늘배기는 무서움의 대상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말을 안 듣거나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하늘배기가 아이들을 목발로 쳐서 쓰러뜨리곤 잡아간다고 겁을 주었다. 우리는 괴상한 모습의 하늘배기가 징 박힌 목발을 휘두르는 것을 떠올리곤 두려움을 느꼈음직하다. 그런데 하늘배기가 목발을 휘두를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외다리에게 목발은 몸을 지탱해주는 도구였으므로 정작 목발을 사용하려 한다면 그전에 넘어졌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는 시늉만 하였을 뿐 목발을 휘두른 적이 없었다.
우리가 커가며 움직임이 여의치 못한 하늘배기의 약점을 알아챌 나이가 되자 하늘배기는 놀림감으로 전락하였다. "하늘배기야 뭐하냐?" 그날도 우리는 노래가 끝나자 하늘배기 앞으로 뛰어들어 겁을 주거나 주위를 맴돌며 놀려댔다. 우리 강아지 복구(福狗)는 사냥개라도 된 양 어린 주인을 믿고 촐랑거리며 짖어댔다. "으… 흐흐…" 하늘배기가 눈을 희번덕거리고 목발을 내디디며 움쭉거렸다.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우리를 상관하지 않고 다시 철거덩거리며 걷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시 졸졸 그 뒤를 따라갔으며 누군가는 감자를 먹였다. "하늘배기야, 뭐하고 자빠졌냐?" "엣따, 이것이나 묵어라!"
그가 멈추어 서서 우리를 향해 꼬인 고개를 비틀더니 띄엄띄엄 말문을 열었다. 쉬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그… 그으만… 해라. 새으을… 보오온다." 하늘배기의 얼굴이 다시 하늘로 향했다. 하늘배기는 항상 그렇게 말을 하곤 했다. 얼굴이 하늘로 들려 있으니 어차피 해, 구름, 새 같은 것들만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하늘배기의 쉰 목소리가 듣기 좋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묻고 대답을 듣는 것이 그렇게 재미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가 평소와 달랐다. 우리가 그새 한참 커버린 것이었을까. 그는 매우 지친 듯 보였으며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애원하는 것처럼 들렸다. 우리는 무엇에 홀린 듯 하늘배기의 눈을 따라 하늘을 쳐다보았다.
참으로 이상도 해라. 해거름 판이었는데도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검붉은 구름, 먼 산의 경계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찬물로 세수를 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늘에 정말 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하늘배기를 놀리는 것도 잊은 채 새가 점이되어 사라진 후에도 한참 동안 빈 하늘을 쳐다보았다. 슬픔인지 잘 잡히지 않는 야릇한 느낌이 밀려들었다. 하늘배기의 '새를 본다.'는 말이 당시에는 마음에 잘 와닿지 않았다. 그 후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의미를 두고두고 곱씹게 되었다. 하늘배기가 새를 보면서 꿈꾸었을 그 무엇의 정체에 대하여.
하늘배기가 목발을 움찔거리는 바람에 자갈이 튀었다. 눈에 물기가 그렁그렁했다. 그가 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우리는 하늘배기의 뒤를 쫓아가다 왠지 신이나지 않아 그만 두었는데, 그 판국에도 누군가는 하늘배기에게 돌멩이 한 개를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복구도 하늘배기를 쫓아가다가 시들해져서 '캥' 한 소리 짖고는 돌아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하늘배기가 멀어져 가는지 철거덩거리는 목발소리에 울음소리가 섞여 끊어질 듯 이어질듯 들려왔다. "새으을… 보오온다. 으흐… 새으을…" 누군가 "하늘~ 배기 설날은~ 어저께고요~" 노래를 선창했지만 따라 부르는 아이는 없었다.
그날 이후 하늘배기가 언덕바지 자갈길을 힘겹게 올라오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하늘배기가 '차부(車部)'에서 구걸을 하다 '도라꾸(트럭)'에 치어 다쳤다는 것이다. 성치 않은 몸에 다치기까지 했다면? 무거운 슬픔이 우리 마음을 짓눌렀다. 그 후에도 우리는 집 앞 공터에 모여 놀았지만 전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하늘배기에 대하여 가끔 이야기하긴 했으나 오래 계속하진 않았다.
지금도 하늘배기를 생각하면 철거덩거리는 목발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자주 잊고 있는 것이지만 힘겹고 마음이 산란할 때도 주위를 돌아보면 항상 나보다 더 불우한 처지에 놓인 이웃이 있다. 그 때도 우리가 그를 잊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이 든 친구를 잃은 슬픔은 가슴 한켠에 앙금처럼 남았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반추해보는 것이지만, 어린 마음에도 아픔과 상처를 우리 스스로 견디어내야 한다고 어렴풋이 느낀 듯하다. 또 우리 모두 그때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늘배기를 해(害)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 <<한국산문>> 1월호, <선수필> 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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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1-12 2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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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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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1-13 0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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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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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1-01-13 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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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며 저도 어렸을 적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20심 넘은 어른이 코흘리고 다니며 10살의 내가 '거시기 내놔!' 하면 내 놓던. 한 새우젓 장수가 거나하게 취하여 '곤쟁이 젓, 새우 젓! 뒤루 돌아 갓. 좌로 돌아 갓!' 하며 쇼를 벌이다가 달라는 아줌마들에게 듬뿍 듬뿍 퍼 주던 그런 사람들을. 우리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천진무구한 사람인 모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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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1-14 1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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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幼年의 동네'마다 그런 사람들이 한, 둘쯤 있었던 듯합니다, 일만성철용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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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1-01-13 2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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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선생님 새해들어 첫 작품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어린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듭니다. 어린시절의 잊혀지지 않은 그 추억들을 더듬으며 저도 글을 한편 써보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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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1-14 1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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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께서 이 글을 쓰셨으면 더욱 가슴 뭉클한 글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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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1-01-14 1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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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으며 백치아아다의 생각이 문득 스칩니다. 비련의 주인공은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듯 합니다.
약자에 대한 공격과 무시는 동물세계에서 흔히 나타나지만 인간세상에도 드문일이 아니지요.
그 하늘배기가 잊혀지지 않고 김선생님의 마음속에 남아있다면 그가 살아간 삶이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살고간 흔적은 남겨놓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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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1-15 1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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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전 회장님, 공감과 격려 말씀주시어 감사합니다.
어렸을 적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하늘배기'와 '돌산 장사'입니다.
'하늘배기'는 매일 봤지만 '돌산 장사'는 직접 본 적은 없고 소문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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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1-01-15 1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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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진흥기금 타시게 된 것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어떤 면이 심사위원들께 맘에 들었을까?
선생님의 글을 전보다 더 꼼꼼히 읽게 됩니다.
식상한 신변잡기에서 벗어나 독특한 소재에서
공감을 끌어내는 글재주가 탁월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뭍은 정월부터 또 이렇게 좋은 글 발표하시며
새해를 열고 있으니 금년은 선생님의 해가 되실 것 같군요.
승승장구한 문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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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1-15 1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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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축하해주시니 기쁘면서도 한편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또 우리 홈페이지에서 여러 선배님들께서 격려해주시고
가르쳐주신 덕택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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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1-18 2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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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에 축하를 드립니다. 늘 성실한 마음 자세로 열심히 글을 쓰시는 선생님의 열정이 부러웠는데....하늘배기 글을 읽으며 문득 고향이 생각나네요. 어릴적 우리집에 머음으로 있던 '천식'아저씨가 떠올려지네요. 긴 세월 돌아보며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입니다.
오늘 '당산동'에서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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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1-19 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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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명화 선생님, 자세한 이야기 미처 나누지 못해 아쉽습니다.
근데 '(김)천식'은 세 살 터울 제 동생 이름인데 어떻게 그 댁 머슴으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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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1-02-02 2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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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그럼 나도 한때는 히늘배기였네요
항상 삐딱하게 15도 각도로 하늘로 목을 향하고
살았으니까요~ㅎㅎ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계속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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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02-05 1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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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생님도 하늘을 보며 자유와 비상을 꿈꾸셨군요.
저도 키는 작지만 하늘배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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