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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병원 신세를 져야했던 나는 일찍부터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 일례로서 지난 겨울 내게 부과된 현생의 숙제를 완료하는 것을 기점으로 삶의 흔적들을 정리하려는 결심을 세웠다.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잡다한 짐을 줄이고 과감히 버리므로 단출하게 먼 길 떠날 준비를 해둘 참이었다. 죽음 그것은 다른 세계로의 영원한 이전이 아닌가.

짐이라고 하면 반드시 형상이 있거나 부피가 많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음의 짐, 정신의 짐도 이 범주에 속한다. 어쩌면 마음의 짐, 정신의 짐을 더는 것이 무엇보다 선결요건이 될 것이 틀림없다. 먼지 한 점조차 남기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훨훨 날아가기를 원한다면 마음의 껄끄러운 찌꺼기를 몽땅 털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유정무정을 막론하고 까닭없이 미워하고 원망하고 기피한 적이 있는지 차분히 돌아보아 행여 후생에서 악연으로 다시 만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 말하기를 모든 것은 인연과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더 이상은 악업을 짓지 않을 것은 물론이려니와 이미 지은 업보도 일일이 들춰내서 요만큼 건강함을 소지하고 있을 때 점검 해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까짓 그 외의 다른 물건이나 살림살이를 축소하고 버리는 일은 마음 파트에 비하면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다. 집 어디에나 쌓여있는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번에 행한 것처럼 우체국 택배비를 내가 물고라도 원하는 00대학도서관 어디든지 보낼 수가 있고 다른 물건들은 시간 나는 대로 보따리에 챙겨서 조금씩 집밖으로 내놓는 방법이 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의 채무이다. 매듭은 풀고 앙금은 녹여내 알카리 이온수로 말끔히 씻어내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마음 청소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내가 죽어 어디에도 닿지 않는 바람 권속이 된다 하여도 혹은 깊은 바다의 파도가 되거나 고산준령의 한 송이 야생화로 청초하게 피어나는 일이 있어도 거리낄 바가 아니다.

죽음에 이르어 굳이 용서니 화해니 그런 용어를 떠올릴 것도 없다. 새삼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요청할 만큼 엄청난 과오를 저지른 기억은 없다. 행여 부지불식간에 어떤 실수를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면 중도이다. 어디에도 치우치는 법이 없는 원융화쟁의 중도사상이야말로 내 삶의 지표였지 않은가.

아! 그런데 이런 일련의 죽음에 대한 나의 계획들이 지난 해 겨울 이후 큰 착오가 나기 시작했다. 만약에 내 의도 대로 그 일이 종료가 되었다면 나는 지금쯤 지리산 자락에 작은 둥지를 틀고 앉아 삶에 대한 명상을, 그리고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공부를 꽉 붙들었을 확률이 높다.

죽음이 멀리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침에 눈뜨면 삶의 시작이고 저녁에 자리에 누우면 죽음 연습 아니던가. 그렇게 잠들 듯이 미련 안 남기고 이 세상을 하직할 꿈을 키우고 있다.

진실로 나는 삶에 별다른 애착이나 기대를 갖고 있지 않으며 또한 죽음이란 게 어느 날 홀연히 내 육신을 유린할 거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삶도 죽음도 자연의 순리에 맡길 따름이다. 예외로 몹쓸병이 들거나 신체적인 장애와 고통이 임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일상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을 경우에는 조용히 생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시설 같은 데로 수용되어 자식들의 수고를 덜어주려 한다.

특별히 내 척추에 부착된 금속기둥이 의료연구 측면에서 유용할지도 모르므로 시신을 기꺼이 기증할 용의는 명백히 해두겠다. 당부라면 대개 이와 같은 내용들이 아니겠는가
죽은 후 나는 결코 무덤, 산소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한 생을 살아 본 적이 있는 지구라는 별을 벗어나 바람처럼 가벼이 유쾌한 비상을 시도하고 싶을 뿐이다. 이전에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2009년 <한국여성문학인회> 문집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