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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한동희 |
날짜 : 10-08-14 05:34
조회 :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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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슈메트>
백재숙씨 남편이 음악학교 교사로 있는 ‘폴슈메트’라는 작은 도시에 왔다. 물의 도시라고나 할까. 시내로 들어가는 초입에 레시강 줄기에서 흘러내려오는 계단식 폭포가 있고, 그 강폭이 십여 미터쯤 되는 것 같다. 흘러내리는 물소리도 웅장하다. 도심에 그런 웅장한 폭포가 있다는 것에 찬탄하며 시선은 폭포에 꽂혀 움직일 줄 모른다.
강물이 흘러 도심 건물의 아래층 벽면을 타고 흘러간다. 마치 물위에 건물을 짓고 그 흐름을 즐기는 것 같다. 작은 ‘베니스’라고나 할까. 강 주변에는 카페들이 있고, 여름에는 강변의 노천카페에 나와 맥주를 마시며 담소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우리도 그 중의 한곳에 들려 로이부시티(Rotbusch) 아프리카 차를 마신다.
강변의 유럽풍 건물들이 저녁노을을 받아 이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빛내주고 있다. “차~암 예쁘다”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내가 아끼는 순모 숄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이 낭만의 강변을 거닐었다. 소매치기를 만날까봐 긴장하면서도 내 것 잃어버리는 것을 모르다니... 마치 분신을 떼어놓고 오는 것 같아 서운했지만 누군가 아시아의 순모 숄로 유럽의 싸늘한 겨울을 따듯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저녁은 백재숙씨(54세)집에서 먹기로 했다. 시내의 상점을 둘러보고 있는데 백재숙씨 한테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경. 그곳에는 자동차로 한 두시간 거리의 근방에 사는 교민들이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인 인원은 7명으로, 그들은 간호원으로 왔거나 현재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는 비교적 젊은 층의 여인들이다. 그들 7명은 모두 재독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두 번 모여 합창 연습을 하거나 같은 성당에 다니고 있는데, 한 집에서 농사를 지은 시금치와 건대를 커다란 비닐 봉투에 담아와 서로 나눠 먹는 모습이 정겹다.
저녁 식사는 비빔밥을 뷔폐식으로 푸짐히 장만했다. 백재숙씨는 독일인과의 남편 사이에 5남2녀를 두었고, 남편과 두 딸이 우리들과 어울려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큰딸은 22살의 멋쟁이 대학생이고, 아빠는 7세의 막내딸을 ‘우리 집 재롱둥이’라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소개 한다.
저녁 식사 후, 식탁에 둘러앉아 대담식으로 수필강좌를 했다. 이들은 ‘칼스루에’의 세미나에 참석은 못했지만 우리가 백재숙씨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모인 모양이다. 예상치 못했던 이들과의 만남도 감격스러웠다. 이국에서 만나는 동포애는 가슴을 저리게 한다. 나와 동성동본인 한정순씨는 언니를 만난 듯 반갑다며 기쁨을 더했다. 그 중에는 한인 소식지에 이따금 글을 싣는 사람도 있고, 글을 쓰고 싶은 열의는 있지만 엄두를 못내는 사람도 있다. 소설과 시와 수필의 다른 점과 수필문장의 기본적인 요소를 메모하며 관심을 보였고, 내년 세미나에 꼭 참석하겠다며 오늘의 만남을 기뻐했다.
밤늦게 다시 이점순씨 집으로 돌아와 세 번째 밤을 보낸다. 여행 중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뒤척이는 날이 많았다. 이날도 잠이 달아나 머리 위의 뾰족지붕에 달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며 가족들 생각을 한다. 이렇게 편안히 누워 한적하게 정면으로 달을 바라보기는 처음이다.
달빛이 너무 눈부시고 고요해 어느 산중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도 수 없이 달을 보았건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달은 수억 광년을 지나 만난 전생의 연처럼 그 느낌이 오관을 파고들어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빠져들게 한다. 잠은 영 달아나 정신은 맑아지고 이대로 날을 밝힐 것만 같다. 달과 벗하며 밤을 지새우고 싶지만 내일의 일정을 위해 준비해간수면제한알을입에넣는다. (11.5)
<훗가 마을>
아우크스부루크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훗가의 집’을 방문했다. 훗가는 막강한 금융의 힘으로 황제보다 우위에 있던 인물로 르네상스 시대를 열기도 했다. 훗가는 1500년에 처음 무역업을 시작하여 훗가 마을을 세운 자선사업가다. 처음에는 직원들에게 아파트를 지어 숙소로 제공했지만, 차츰 아우크스부르크의 가난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집을 제공한다. 수세기에 거쳐 자손들에 의해 그의 뜻이 전해져 오고, 지금도 일 년에 한화 2000원 정도의 세를 받고 집을 빌려주는 대신 하루에 두 번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불러야 한다.
훗가의 집은 16세기에 지은 근대에 가까운 건물형식이다. 흙 갈색의 벽에 삼각형 지붕의 아담한 2층 아파트로 여러 개 동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80%가 망가져 1945년부터 55년까지 보수하여, 훗가의 후손들이 훗가의 정신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훗가 마을의 어느 집 창가에는 작은 인형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볼 수 있도록 밖을 향해 놓아두었는데, 가난 속에서도 남을 즐겁게 해주는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작은 예배처에서 성가를 부르며 축도하는 모습도 평화로워 보인다. 한 사람의 배려와 사랑의 나눔 정신이 자자손손 전해져 내려오는 훗가의 마을은 그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성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독일에 와서 여러 곳의 황실과 고성,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며 중세 문화의 역사를 감상했다. 호화로움과 권력의 극치를 이루었던 왕권과 주교들의 생활이 후세에 남겨주는 교훈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도시를 건설하고 경제부흥에 앞장섰던 대부호 ‘훗가’는 소시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역사적인 인물로 길이 남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훗가 마을을 돌아보며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고 돈을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중세의 많은 화가들이 그들의 영혼이 담긴 그림을 남기고 갔지만, 훗가는 수 세기를 거쳐 가난한 이들의 어버이가 되어 그들이 거쳐할 수 있는 집을 남기고 갔다. 그는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영혼은 살아있는 성모요, 그가 남긴 사랑의 보금자리는 칭송 받는 예술작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훗가와 같은 인물이 한 명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정치가는 기업을 키워주고, 재벌가에는 처음 사업을 일으킨 선친들의 뜻을 이어 받아 훗가의 자손과 같은 피의 존속이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11.6) (한국수필 2010.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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