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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10-02-20 21:56
조회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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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사
‘당신, 그러다 후회하지.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가서 하룻밤 함께 지내면서 맛있는 것 사드리고 이야기도 나누다 오면 좋겠구먼!’ 며칠 전 부터 되풀이하던 아내의 재촉을 뒤로 나는 마침내 그동안 미루어왔던 서울행 길에 올랐다. 아내의 경고처럼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절박감이 불현듯 뇌리를 스치며 마음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4형제 중 아무도 60대 중반을 넘긴 이가 없었던 우리 집 가계에 비추면 그동안 의학의 발달과 식생활의 개선 등 이유를 생각한다 해도 금년 형님의 80세는 분명 과분한 수(壽)였다. 더욱이 당뇨에 파킨슨병이라는 희귀병까지 떠안고 있는 형님으로선 온갖 악조건 속에서 이루어낸 기념비적인 이정표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오를 수 있는 산은 거의 다 오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었다. 남은 하루하루가 그래서 더 새롭고 소중했다. 이별이 예고 없음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통해 이미 터득한 바가 있기에 더욱 그랬다.
지구의 온난화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던 겨울 추위가 금년엔 작심이라도 한 듯 연일 강추위를 몰고 오더니 입춘이 지난 지 일주일째인 오늘은 을씨년스럽게 비까지 내린다. 2번 출구로 나오라는 전화속의 형님 목소리에 따라 계단을 오르니 무지개 아파트 202동이 바로 눈앞이다. 이제는 나의 기억도 예전만 못해 확인을 해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긴 했으나 동 호수까지 물어가며 찾아가자니 그동안의 무심함에 절로 낯이 달아오른다. 퇴직 후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면서 무엇에 늘 그리 바빴을까.
오래된 건물이어서 낡고 칙칙했지만 지하철에서 내려 곧바로 이어지는 아파트의 위치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며 긴 복도를 지나니 604호 현관문이 나의 방문을 기다리 듯 빠끔히 열려있다. 젖은 우산을 현관에 세우며 거실로 들어서니 형님내외를 비롯한 안의 식구들이 반갑게 맞는다. 큰 누나와 작은 누나는 물론 평소 친척모임에 얼굴을 잘 나타내지 않던 사촌인 복임 누나까지 와있다. 모임의 취지를 알린다곤 했지만 갑작스레 이루어진 통화여서 쉽지 않았을 결정이었음에도 거역할 수 없는 명령 앞에 순종이라도 하듯 다소곳이 참석한 성의들이 고맙다.
예약한 식당에 둘러앉으니 젊은 사람들의 모임 같지 않고 정적만이 흐른다. 예전 같으면 태근이 매형의 재치 넘치는 재담을 시작으로 형님의 만만치 않은 반격이 나오고 여기에 병도, 명식이 매형까지 합세하면 한바탕 시끌벅적 했을 방안의 분위기도 이제는 옛날이 된지 오래다. 형님과 매형들은 나이가 비슷한데다 명식이 매형을 빼고는 고향도 같은 이북이어서 유대감이 남달랐을 뿐 아니라 친구처럼 격의 없이 지냈다. 그에 비해 십여 년 이상 쳐지는 나는 항상 일정한 영역 밖에 머물렀고 그것을 당연한 예의로 알았다. 알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매형 셋 모두가 1,2년을 터울로 불귀의 객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흐름이라도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가라앉은 방안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요즘 인기 종목인 막걸리로 잔을 돌린다. ‘막걸리, 거 좋지’ 형님이 힘을 낸다. 목이 말랐던 차에 나는 연거푸 두 번째 잔까지 들이킨다. 맨송맨송했던 기분이 짜르르 달아오른다. 예전에 형님과 매형들이 담당했던 분위기 띄우는 일을 내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반응을 살핀다. 노력의 대가일까.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와는 달리 여기저기 활발하게 대화들이 오가는 모습이다.
생각하면 또 그랬다. 분위기, 분위기 하지만 내 뱃속 편하면 구차하게 막걸리 기운 빌릴 일도 없을 것이다. 이 나이 되도록 형님을 비롯해 복임누나와 큰누나 모두 자식 걱정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사람들이다. 아픈 상처 건드릴까봐 애써 자식 이야기만은 피하곤 했다. 섣불리 관심을 표한다고 복임 누나에게 ‘큰 애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진다거나 작은 누나처럼 안식 휴가를 위해 1년 넘게 외국에 머물고 있는 사위자랑 딸 이야기라도 꺼내는 날이면 분위기는 그것으로 끝장이다. 서로가 예민한 부분은 피하다보니 어색한 침묵만이 남는 것인데 오늘은 의외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노년의 모임이 보기 좋았던지 두 명의 아가씨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정성껏 음식을 날라준다. 적당히 오른 취기 탓인지 갑자기 노래 한 곡이 부르고 싶어지는 것을 애써 누른다. 예전 같으면 젓가락 장단이라도 친다지만 요즘이야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직은 살아있는 감성이 고맙기도 하지만 때론 넘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사고를 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목석이 되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잊을만하면 일을 저지르곤 하니 두루두루 조심해야할 일이다.
식탁위의 그릇들이 모두 치워지고 차까지 마셨으니 오늘의 예정된 식사는 끝이 났다. 딸린 식구 없이 5남매들만이 함께한 저녁식사였다. 해방되고 이듬해, 북한의 공산체재를 피해 황해도 해주로 똑딱선 배를 탔던 10대 소년소녀들이 황혼의 나이가 되어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한 것이다. 저마다 가정을 이루고 가꾸기에 고단 할대로 고단해진 심신을 잠시 쉬면서 굵게 주름진 서로의 얼굴 속에서 우리는 세월이 저만큼 흘렀음을 새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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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0-02-21 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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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세상을 살다보니 형제간에도 모여서 식사하기가 어렵니다.
비교적 단명한 집안에서 형님께서는 장수하시고 계시는군요.
형제우애를 생각해 보게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지난번 전화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총회때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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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0-02-21 2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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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회장님, 그리고 작가회 선배 회원여러분. 신정 구정 모두 지났으니 꼼짝없이 또 한살 먹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댁내 평안하신지요? 작가회에 신입회원으로 참여한지 얼마안되었습니다만 늘 보이지않는 여러 선배님들의 숨결과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지내왔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며 겪는 애환, 함께 나누며 힘을 얻고자 합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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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02-21 2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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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화기애애한 모임이 겨울 추위도 녹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제법 따뜻한 봄기운이 가슴에 스며 옵니다. 저도 그렇게 화기 애애한 모임 갖고 싶어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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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0-02-22 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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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생님, 건강하시지요? 어렸을 땐 젖배도 많이 곯으셔서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남으신 것 같던데 ~3월에 반갑게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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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인 |
10-02-22 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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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형제 분들의 따뜻한 모임이 글을 쓰게 하셨군요..
가족이란 한 울타리에 살다가 결혼하여 흩어져사는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전경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노년의 모임이라 더 소중함을 느끼게 합니다
차분하게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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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0-02-22 1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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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 선생님, 강사합니다. 살아가면서 새삼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곤 한답니다. 저희 형님 패기만만하던 청년장교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힘없고 보행조차 자유롭지 못한 모습 볼때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답니다. 좋은 글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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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0-02-22 2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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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참 이상하더군요, 한분이 돌아 가시면 비슷한 또래의 분들이 한분씩
가십니다. 마음을 놓은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우애를 나누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요즘은 부모님 차례 없애는 집안도 많고 점점 살벌해지는데 아무쪼록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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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0-02-22 2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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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생님의 글은 잘 읽고 있으면서도 인사도 못드렸습니다. 새 해 좋은 일만 있으시기 바라며 3월 모임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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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0-02-22 2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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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선생님,
훈훈한 애기 잘 읽었습니다.
세월은 늙어도, 나이는 늘어도 형제의 모임은 언제나 정체된 그 시간에 머물 듯 내 아우,
내 형입니다. 찾아가시는 그 발길, 그 마음마다 사람의 정이 느껴집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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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0-02-22 2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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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한국수필`에 부끄러운 글 올리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작가회`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주저했지만 요즘엔 험한 세상에 많은 `아군` 만난듯 행복합니다. 가까이 이야기 나눈적 없지만 구면인듯 정도 가고요~ 임재문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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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0-02-23 1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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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성경 시편기자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피를 나눈 형제자매였건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마치 서로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린 철새들처럼
그렇게 거친 세상으로 흩어져 살아가던 형제분들이 모처럼
혈육의 정을 확인하신 뜻깊은 자리를 상상해봅니다.
모든 형제분들이 부디 오래오래 강녕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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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0-02-23 2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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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을 서슴없이 떠 올릴 수 있는 이희순 선생님의 단단한 신앙심이 부럽습니다. 3월1일이 형님 생신이어서 가족들이 모이기로 했습니다. 주신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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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0-02-24 0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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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며 아프리카, 중남미, 유럽 가리지 않고 잘도 다니시더니 이번 3월의 막내 결혼식에도 참석을 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형님 내외분은 이곳에서 만 35년을 넘게 살고 있는 저희들보다도 미국내의 더 많은 곳을 다니시기도 했습니다. 건강상 특별한 지병도 없지만 장거리 여행을 하기가 힘들고 신명도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울해 집니다. 강선생님께서 분위기 띄우시던 형님과 매형들의 역할을 대신하신 것처럼 저도 한번 그렇게 해봐야 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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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0-02-24 2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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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의 글이 형제간의 우애를 잠시나마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그토록 여행을 좋아하시던 형님이 왜 갑자기 우울해하실까요. 선생님말씀대로 조만간 만나시어 좋은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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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승 |
10-02-24 2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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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남다른 의미가 있는 모임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분단이라는 거시사에서부터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가장들의 미시사까지.
정말 살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터이니 형제분들 정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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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0-02-25 0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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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정희승 선생님~ 해방에서부터 남북분단, 그리고 6,25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저희 형제의 가정사에 그대로 녹아있는 것도 같습니다.부족한 글에 주신 댓글,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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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0-02-25 2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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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놓은 작품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간에도 소원해지기 쉬운 요즘입니다.
저 역시도 마음은 있으면서 몸이 바쁜탓에 일가친척들을 자주 뵙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용기가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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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0-02-26 2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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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연히 봄기운을 느끼는 어제 오늘입니다. 이제 저도 차근히 작가회 식구로써 열심히 참여해야겠지요? 신입생의 딱지가 아직도 주눅들게 하지만 뭐, 우리 사무국장님이 잘 받쳐주시리라 믿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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