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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동호 |
날짜 : 09-10-29 19:43
조회 : 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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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이 그립다
정동호
이웃과의 끈끈한 情.
비록 가난하게 살았어도 정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것이 우리 민족의 미풍이요 자랑 아니던가. 그래서 이웃사촌이란 말도 생겼을 게다. ‘춥고 배고프게 살았어도 옛날이 좋았어!’ 라고 더러 말하는 것도 어쩜 그 정 때문이 아닐는지.
요즘은 이웃에 살면서도 정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마지못해 인사정도라도 하면서 지내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같은 아파트 한 엘리베이터를 늘 같이 이용하면서도 눈을 딴 데로 돌리거나 안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듯 당황해 하기도 한다. 아들딸 결혼식도 그렇고 초상이 나도 한참 지나서야 알듯 말듯 하는 정도다. 세상이 왜 이리도 삭막해 졌을까? 씁쓸함을 숨기지 못할 때도 있다.
“ 0 0 노인이 요새 와 안 보이노”
“ 뻔 한일 아이가. 또 한 사람 간 거지 머”
뒷산 쉼터에 모인 노인네들이 날마다 빠짐없이 산을 오르던 이가 며칠씩 보이지 않아 군담처럼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한 토막 이야기다.
그리고는 무슨 병에 걸렸을까 서로 내기라도 하는 듯, 그럴싸한 병명들을 주 섬긴다. 일말의 동정심이나 연민의 정일랑 아예 생각 밖인 것 같다. 오히려 자신들의 건강만을 더 챙기는 모양새다.
옛날에 동네 초상이 나면 또래 늙은이들이 마을 입구나 장지까지 상여를 따라 나와 눈시울을 닦으며 좋은데 가라고 축원도 해주지 않았던가. 어떤 이들은 하관할 때 흙 한 줌 뿌려주며 “이 사람아! 말 한마디 없이 간단 말 가, 나중 우리 또 만나세“ 눈두덩을 짓누르며 돌아서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
요즘에는 자신이 죽었을 때 진정으로 눈물 흘려줄 친구가 있을까 하고 한스럽게 말하는 이도 적지 않은 것을 보면 확실히 정이 메말라 버린 것 같다.
나는 요즘 심한 자괴감에 빠져있다. 한 아파트 한 라인의 15층과 6층에 살면서 친분을 맺어 온지 10여 년, 두어 살 위이긴 해도 가까이 지냈던 분인데 어느 날 소리도 없이 이사를 가버렸다. 안팎으로 반갑게 인사하며 정을 주고받던 사이라 수필집 한 권을 들고 찾아갔더니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다음 날 다시 갔더니 온 집을 뜯어놓고 수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웬 일이냐 물으니 원래 주인이 집을 팔고 이사를 갔다며 새 주인이 알려준다. 여러 날이 지나도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나의 정이 부족해서 그랬으리라 생각하니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또 곱씹어 보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 냄새가 사라지면 누구와 살아야 하나. 서양 사람들이 그래서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들, 심지어 방안에 돼지를 기르고 뱀을 감고 사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도 그런 풍조들이 들어와 유행하고 있음은 정녕 사람들의 정이 메말라간다는 징조인 것만 같다.
손녀아이가 부산 어느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 2학년에 다닐 때로 기억된다. 서울에서 이사 온 아이라며 심한 따돌림을 당했더란다. 제 엄마가 온갖 방법을 다 써 봐도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 고민 끝에 애완견을 한 마리 사 주었더니 강아지와 함께 놀면서 마음을 잡더란다. 친구들에게서 정이 멀어지니 강아지와 정을 주고받은 것 아니겠는가.
“하얀 거짓말”이란 아침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일이 있다. 시작부터 끝마칠 때까지 온통 거짓말과 사기로 점철 된 드라마를 보고 사람들이 희열을 느낀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누구를 믿고 누구를 신뢰해야 하며 어디서 어디까지를 신뢰해야 할지 무서운 세상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도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라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경제 지상주의도 그렇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이면 뭐하며 경제가 성장하면 뭐하겠는가. 일가친척 간, 이웃이나 친구 간에 끈끈한 정이 있어야지 않을까. 속에 있는 말 허물없이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 아플 때 함께 위로해주고 힘들 때 함께 짐을 나눠질 수 있는 그런 이웃 말이다. 무한 경쟁사회에 살다보니 직장 동료들 사이에도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면서 속으로는 투기하고,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경계의 눈초리를 떼지 못한다. 그러니 무슨 정이 흐를 것이며 오붓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랴.
인간의 가장 무서운 병은 ‘고독’이라 지 않은가. 정이 메말라 생기는 병이 고독이러니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의 ‘군중 속의 고독’ 이란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사회로부터 격리를 두려워하며 내면적 고독감에 휩싸이며 번민하게 되는 병. 지금 이 사회는 점점 고독의 병이 깊어가는 것은 아닐까.
들에서 일 하다가 들어오면서 상추 한 주먹 뜯어 와도 이웃과 나누고, 부침개를 구워도 나눠먹는 잔잔한 정. 길흉사가 생기면 묵이며 두부며 떡이며 여러 음식들을 서로 만들어와 짐을 나누어지던 아름다운 옛 모습을 이제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가만 생각해보면 그래도 나는 이웃들에게서 많은 사랑과 정을 받으며 살아왔다. 모두가 빚이거니 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갚지 못한 채 정을 그리워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되 뇌이면서도 말이다.
정은 주고받는 것이다. 내가 먼저 베풀어야 하고 내가 먼저 문을 열어야 상대편도 베풀고 문을 열어줄 것 아닌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 좋아하고, 남을 배려하고 남 용서하는 데는 인색했던 자신을 돌이켜 본다. 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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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0-30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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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호선생님께서 정 이야기를 쓰신 글을 보니 제가 정이 그리워집니다.
유행가 가사에 '정이란 무엇일까. 주는걸까. 받는 걸까'하는 대목이 있는데
저도 주는것이 정이 아닌가 합니다.
정을 흠뻑 느낄수 있는 출판기념회 날이 박두하고 있습니다.
그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정을 나누십시다.
작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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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10-30 1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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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호선생님 저도 어려서 시골에서 자라 정을 주고 받으며 살다가 객지로 돌아다니며 지금은 아파트 생활을 하다보니 정이 그립기만 합니다. 저는 그래도 다행인 것이 앞집은 언제나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정을 나눌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지금 바로 앞집도 저처럼 직장 정년퇴임하고 사시는 분이라 더 정이 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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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09-10-30 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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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임회장님!
정이 멀어지는 세상이 어떤 때는 두렵기조차 하네요.
'사랑보다 더 진한 건 정이라고' 하는 노래 가사가 귀에 쟁쟁합니다.
두분 모두 건강하시고 다음 뵙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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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09-10-30 1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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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지기인 그 분에겐 선생님께 기별하지도 못한 채 이사를 가야만 했던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릴 때에 누구나 마음 문 활짝 열고 맞이했다면 세상은 오래 전에 낙원이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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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10-31 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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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정동호 선생님의 정을 느낍니다.
온정을 느끼며 보낸 하루는 행복합니다.
저도 따뜻한 이웃이 되어주어야겠다고 마음 다짐합니다.
수필은 교술 문학이라고 하지요.
독자가 읽고 동감하며 또 그렇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마음의 동요를 느껴야 좋은 수필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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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09-10-31 1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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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고맙습니다.
최복희 선생님! 고맙습니다. 과찬의 평을 주셨군요.
사회가 급변하면서 소리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귀한 유산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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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11-04 2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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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란 무엇인가..ㅎㅎ
정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저는 냉정한 사람일까 다정한 사람일까
정을 주는 사람일까 정을 받고 싶어 하는 부류일까하고
말입니다
노래가사에도 정주지 않으리~~ 그런 게 있는데
여러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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