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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변영희 |
날짜 : 09-10-21 18:19
조회 : 2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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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이 다가오기 훨씬 전부터 나는 보일러 아저씨를 불렀다.
우리집 동호수와 전화까지 소상하게 일러주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보일러 아저씨에게서는 응답이 오지 않았다.
나는 8단지 철물가게로 찾아가서 여름에 소개해 준 그 보일러 아저씨가 영 연락이 안된다는 하소연을 했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대구에서 아들이 전근해 우리집으로 오기로 되었으니 마음이 급했다.
장가가서 수 년 동안 처와 두 아들 거기에 더하여 처가집 가솔들을 돌보느라? 지쳐있을 '시집간 아들' 에게 내가 베풀 수 있는 최선의 은전, 은택이라할까. 아니 장가가서 아들을 둘이나 낳았어도 내겐 어디까지나 자식이니까 에미다운 발상, 배려가 되는 것인가.
그렇게 애를 먹어 모셔온 보일러 아저씨는 우리집에 도착한지 한 시간 남짓 걸려서 그동안 작동을 멈춘 현관방의 보일러를 확실하게 고쳤다. 나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대구 지역이 본시 더운 지방이라 더운 데서 몇 년 살다 온 아들이 일단 따숩게 지낼 수 있어 안심이 된 것이다. 우리 사는 동네는 평양이 가까운 탓에 서울 보다는 항시 3도 가량 기온이 더 떨어진다고 한다. 춥다고 옷 껴입고 서울 나갔다가 낭패보는 일이 종종 있을 만큼 기온 차가 나는 곳이다.
일금 15만원.
한 쪽 방의 보일러를 손 본 가격이 거금 15만 원이었다. 나는 눈이 나왔다. 15매 정도 수필 쓰는 데 소모되는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노력을 말해서 무엇하랴.
금방 유쾌했던 마음이 괜히 슬퍼지는 것이었다. 일 했으면 보상과 대가라는 게 어디에나 있는 법 아닌가. 지 좋아서 하는 일에 뭐 대가까지 바란다고? 혹자는 그렇게 말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인들의 생활상은 비참 그대로라고 한다.
돌아가신 어느 평론가가 생활비를 못벌면 아마추어고 생활비를 글써서 충당하면 프로라고 하던 말씀이 생각난다 .아마추어가 무슨 말이 많단 말인가 라고 하면 더 할 말이 없지만 보일러 수리비 15만원을 현찰로 건네면서 공연히 착집해지는 건 나만의 심정은 아닐 듯 하다.
글쓰기의 어려움 . 창작의 고통은 흔히 해산의 고통과 맞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정말 그런가? 그런데도 응분의 대접을 못받는단 말인가? 의아할 때도 있다.
어쨋든 보일러를 고쳤으니 아들이 대구에서 내일 저녁이라도 올라오면 뜨신 방에서 잘 수 있어 고맙기는 하지만 왜 이리 내 순수 청정한 마음은 상처받기 일보전이란 말인가. 언제부터 좀 와 주세요 라고 몇 차례나 사정?하다싶이 한 것도 그만큼 보일러 아저씨의 업무가 바빴다는 얘기고 보면 우리의 창작하는 수고는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한심하다. 그러나 손놓고 살 수는 없다. 작가는 모름지기 쓰고 또 쓰는 일만이 구원이라고 배웠으니 계속 이 노릇을 반복할 밖에는.
보일러 아저씨 노임을 가지고 심각해 하는 내 몰골이 창 그늘에 어려 더욱 가관이다. 잡념 털고 김치나 담그자. 보일러 아저씨는 보일러 아저씨로서의 삶이 있고 나는 나로서 빛나는 가치가 있지 아니한가. 글쓰는 긍지와 기쁨을 다시 가다듬으며 얼가리김치를 버무린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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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10-21 2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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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세요 창작하는 열정으로 얼갈이 김치라도 정성껏 비벼서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맛있게 먹일수 있다면 그게 보상에 비하겠습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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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09-10-22 0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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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유쾌하고 즐거운 말씀이십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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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10-22 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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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온돌처럼 모정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사랑으로 버무린 선생님의 김치 맛이 일품일 것 같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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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09-10-22 0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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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간 아들에 대한 연민
요즘은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해요.
내 아들이라고 별다를까.
애정 깃든 최복희 선생님의 댓글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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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10-22 2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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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추위를 많이 타니 보일러 고장나면 안됩니다. 글쟁이 생활비 벌기가 하늘에 별따기인것만 같아요. 잘 나가는 사람들이야 그렇지만, 저같은 한량은 아무래도 안되는것이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활비를 벌 수 있도록 한 번 노력을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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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09-10-23 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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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지금 세탁기를 돌려놓고 앉아 임재문 선생님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 궁금했습니다.
여기 저기 그냥 다니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00 찾기 입니다.
하하하 말은 그럴듯 하네
고맙습니다.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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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09-10-25 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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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데 수입른 커녕 글을 쓰는일에 돈을 쓰게 되는 우리들의 현실이 서글퍼 집니다.
제 경우 쓰는 글이 대개 여행기라 적지 않은 투자를 해야하거든요. 그걸 사진과 연관하면 글쓰는 시간 이상의 시간을 바쳐야 하거든요.
아내는 제 글을 읽어 주지 않습니다. 아무 소득도 없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해서인 듯합니다. 보일러를 읽으면서 단독주택에서 살던 시절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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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09-10-25 1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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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고 한 달도 못되어서 여류문학인회에서 주최하는 경복궁 주부백일장에 나갔더랬습니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문화센타 이런 것도 백일장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는데 공교롭게도 2~300명의 주부참가자 중에서 그녀와 저는 시와 산문 부문에서 각각 일등을 했어요. 우리는 몇 년동안 우정을 지속해오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문학동네에 나오지 않는 거였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돈이 든다는 이유였는데요. 동네 헬스클럽 다니는 게 훨씬 유용하고 재밌대요.
전쟁같은 비상사태가 오면 가장 먼저 도태될 지도 모르는 일인 것을.
선생님.
지끔 저가 궁상떨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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