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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4대의 행복 (2009년 ' 아름다운 가정' 10월호 발표)

최 복 희

  꽃들의 향연이 계속되는 봄날이다. 문단 선배가 선물한 책 ‘아름다운 마무리’(법정)를 읽으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새삼 돌아본다.
 
 ‘현재 지구촌은 대지는 병들고 전쟁과 폭력 물질적인 일에 너무 매달리다보니 경제 위기로 혼란 속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완전 회복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지만 그래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과 자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지각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 하다.’고 한 20세기를 대표한 인디언 지도자 ’토머스 반야시아‘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친정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우리 모녀 4대가 행복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딸애가 직장을 나가기 때문에 어린 손녀를 내가 돌보고 있었다. 어느 공휴일 딸애가 아이를 제 집으로 데려가지 않고 우리 집에 머물렀다. 마침 친정어머니도 와 계신 터라 모처럼 모녀 4대가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한 핏줄이건만 친정어머니(신씨), 나(최씨), 딸(이씨), 외손녀(라씨)가 성이 각각 달라 우리는 철저한 부계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했다. 나란히 펴놓은 잠자리에서 피어나는 내리사랑 치사랑의 온기가 방안 가득했다.
 
아침이 되자 삭정이처럼 쇠잔하신 어머니는 당신 몸도 제대로 못 가누시면서 어깨가 시원치 않은 나를 위해 집안 청소며 빨래를 하시고, 나는 직장 다니느라 피곤했을 내 딸애를 생각해 휴일이니 잠 좀 푹 자게 하려고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살며시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나가다가 뒤돌아보니 딸애가 제 딸아이를 품고 자는 모습에서 모정이 묻어났다.
 
 나는 막내며느리지만 시집오면서부터 시어른과 20여 년을 함께 살았다. 그동안 친정어머니는 우리 집에 자주 오시지도 않았고, 한 번도 주무시고 간 적이 없다. 친정 식구들이 자주 드나들면 혹여 내가 시어른께 눈 밖에 날까봐 서였다.
  이제는 시어른들이 천수를 누리고 모두 돌아가셨기에 친정어머니가 마음 편히 우리 집에 와 계신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어머니의 사랑이 사무쳐 가슴 적시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의 삶을 보며 우리 사회나 지구촌이 모계사회가 된다면 지나친 권력 다툼이나 무서운 전쟁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신은 모든 일을 다 할 수가 없어 어머니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했다는 말이 있다. 자식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면 지구촌은 분명 평화로울 것이 아니겠는가. 범정 스님 산문집에는 이런 예문이 있다. “대지는 병들고 현대사회가 무질서로 잘못되어 가는 이 마당에 여자들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남자들이 이 세상에다 어질러 놓은 것을 정리하고 치울 사람은 여자들뿐이라고 했고, 모성적인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했다. 
 
제 배만 부르면 더 이상 욕심 내지 않는 동물의 세계처럼 자연스러운 세상을 꿈 꿔 본다.
 
전쟁, 폭력, 물질적인 욕심으로 사회 질서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 가부장적 통치에서 발생하는 일이라면 나의 지나친 생각일까.
  모녀 4대가 뒹구는 방안의 온기처럼 애틋한 사랑이 넘쳐흐르는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