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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일만성철용 |
날짜 : 09-05-23 08:40
조회 :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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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모월 모일
나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난다. KBS1의 라디오 ‘한상권의 실버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새벽에 배달된 우유에 커피를 타 마시면서 그 방송을 듣는 것이 아침을 여는 요즈음 나의 일과다.
라디오에서는 우리네 같은 실버(Silver) 세대를 상대로 하여 각계각층의 권위자가 나와서 건강, 여행, 교양 등 다채로운 프로를 가지고 정보를 제공하여 준다. 오늘은 ‘두드러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하나하나가 너무나 좋은 자료라서 나는 MP3에 일일이 녹음하며 듣는다.
아내와 단둘이 사는 집이라 그 라디오 소리에 아내가 깨어난다.
양양 박씨가 일어난 것이다. 양,양,양! 잔소리가 많아서 내가 붙인 아내의 애칭이지만 그때마다 자기를 거시기 하는 소리라고 아내가 질색을 한다.
“박 x 자 씨, 잘 자셨는가?”
“응!”
“‘응’이 뭔가? 4살 위 오빠뻘의 남편에게.”
“박 x 자 씨!”
“어!”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다.
“불러도 대답 있는 이름이여! 부르면서 내가 살 이름이여! ~”
핸드폰 알람이 울려 댄다. 6시에 방영되는 KBS2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 ”를 녹화하기 위해 설정하여 놓은 핸드폰 알람이다.
나의 역마살은 항상 세계로 향하는데, 나라의 경제가 아프듯이 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여정의 욕망을 TV로 달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녹화한 것을 작년에 정리하여 보았더니 근 1,000편이나 된다.
녹화한 것 중에는 해외여행이 주였지만 국내 여행이나 교양물 등도 많다. 그중에는 ‘한국의 산’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어제가 오늘과 똑 같은 노년기의 나날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지식으로 충전하며 젊은이처럼 사는 편이다.
아내는 나와 함께 TV를 지켜보거나 아니면 봄이 한창인 호수공원으로 자전거를 몰고 나간다.
녹화가 끝나면 나도 호수공원을 향하여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젊은이들처럼 헬멧을 쓰고, 붉은 상의를 걸치고,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으며 달리는 아침은 언제나 상쾌하다.
나는 취미가 많은 편이다.
여행, 등산, 낚시, 바둑, 자전거, 카메라, 비디오, 컴퓨터, 시, 수필 , 그리고 술 등등.
이 모든 것이 몇 십년을 공들인 것들이다. 그래서 나의 비자금은 그 취미와 관계된 물건을 사는데 쓰고 있다. 그때마다 건강한 사람이 물건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해 한다..
작년에 큰맘 먹고 MTB(산악자전거)를 샀더니 그 놈이 나를 행복하게 하여 주고 있다.
물건은 고가(高價)일수록, 명품(名品)일수록 그 이름값을 하는 법이다.
생활자전거보다 MTB는 더 빠르고, 오일 부레 키여서 멈춤이 안전하고, 쿠션이 좋아서 엉덩이를 편하게 하여 준다.
자전거 운동을 끝내고 아내가 즐겨 보는 TV 드라마를 함께 보며 아침을 먹는다.
아내에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 시간에는 젊은 시절에 ‘나를 버리고 간 여인들도 이 연속 극을 보고 있겠지.’ 하면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 동안 우리 집 청소부가 청소를 시작한다.
정년퇴직하고 보니 자연스럽게 아내의 집안 청소를 돕게 되었는데, 그때 시간이 가장 많이 드는 것은 걸레로 닦는 몰청소보다 청소기로 하는 청소였다.
그러던 것을 로봇 청소기를 들여놓았더니 놈이 알아서 일정한 시간이 되면 청소를 시작하고 끝나면 신통하게도 다시 제 홈으로 스스로 쏙 들어가서 충전을 시작한다. 그래서 청소를 도와 주는 시간이 고맙게도 1시간 이상이나 절약하게 되었다.
식사 후 아내는 이 놈을 따라 다니며 청소를 시키는 데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그때마다 ‘편리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국은 전자레인지에 1분만, 생선은 50초만 데우고요. 그릇은 물에 담가 놓으세요.”
수영장에, 동창회에, 친구다. 노인대학이다 하며 외출하는 아내가 하는 말이다.
그러면 차려놓은 점심을 차려 먹고, 때때로는 설거지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난다.
‘지금 우리는 서로 헤어져서 혼자서 살아가야 할 때를 위하여 이별 예습을 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10여 년부터인가 나는 침실에서 자고, 아내는 안방에서 잔다.
화장실도 각각 따로따로다. 집안에서도 아내 영역은 출입금지 지역이요, 아내의 몸은 접촉 금지가 된 지가 벌써 오래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이렇게 살다가 곱게 죽는 일만 남은 나이임을 실감하게 된다.
정년퇴직을 할 무렵 가장 두려웠던 것이 ‘앞으로 무얼 하며 그 많은 시간을 보내지?’하는 것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심심하게 보낸 적이 단 하루도 없는 것 같다. 이는 오로지 내 취미 덕택이라 생각한다.
그 취미 중에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술 마시는데 바쳤다.
노인들의 하루는 기어가고, 노인들의 일 년은 날아간다고 했는데, ‘술 마시다 보면 하루가 항상 날라가더라.’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젊었을 때는 술 마시고 나면 아내와 자주 다투기도 하였는데, 요즈음은 술마시고 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드는 것이 일과다.
나이 들고 보니 술마시는 힘밖에 싸우는 힘은 남아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고희를 넘긴 내 나이 또래는 거의 술을 끊거나 절주하고 있어서, 내가 술을 사야 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그 술은 상대가 노숙자, 술집이나 전철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로 확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다 간첩으로 신고 되어 경찰이 동원되기까지 한 적까지 있었다.
술집 주인조차 내가 마시는 술의 양을 보고 놀라는 것을 보니 이러다가 큰일 나지- 하면서 ‘술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술을 버리자.’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몸도 몸이지만, 하루에 1만원만 먹자고 ‘lman’이라 호를 한 것과 달리 언제나 초과다. 그래서 주머니 사정이 언제나 엉망이 되어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
그러다 며칠 전 앞에서 말한 새벽 4시 라디오 방송에서 ‘노인과 음주’에 대한 어느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내심에 놀랐다.
“술을 조금씩 마시는 것은 혈액 순환을 도와서 몸에 아주 유익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젊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고, 65세 이상의 노인이 술을 과음하면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이 해롭습니다. 노인의 술의 정량은 하루에 소주 1잔 정도입니다.
이를 지나치면 고혈압, 당뇨, 뇌졸중 등 모든 노인성 질환이나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지요.”
젊어서 직장을 다닐 때, 지각이나 결근을 해도 아파도 모두가 술과 연관시켜서 나를 대할 때 얼마나 서운하던지.
제 돈 내고 술 마시고, 제 차 타고 집에 가면서 아무 사고를 내지 않았는데도 술 먹었다고 우리들의 술 마시는 일과 전연 관계없는 경찰이, 잡아서 면허를 취소시키는 세상이 아닌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6천원이면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술집에 가면 소주 한 병에 3천 원 안주 값은 1만 원 이상으로 이 삼만 원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세상이 술집이다. 그렇게 생각항고 보니 나의 귀한 돈을 술집에 바친 술꾼의 하루하루가 억울해 진다.
그래서 절주하면서 1주일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남아돌아가고, 위가 개운해지며 주머니가 건강을 찾아가지만, 전보다 재미없는 세상임을 비로소 깨닫게 한다.
그러나 70 나이가 되면 ‘마음 따라 하고자 하는 바를 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從心所慾不踰矩)’는 공자의 경지를 넘볼 수 있게 되지 않나 하는 즐거운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져 보기로 했다.
그 술을 지금까지와 달리 절제할 수만 있다면 나도 노래하고 다닐 것이다.
“술을 적게 마셔도, 그 술을 안 마시게 되어도 . 문제 없다, 문제 없다. 비비디바비디부(생각하면 생각대로) ♩♫ ♬~비비디바비디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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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05-23 1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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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성철용 선생님 일찌기 수주 변영로 시인님은 명정 사십년이라는 수필을 써서 그 글을 보고 감동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 글을 읽으니 명정 사십년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저도 술로 인해 아내와 다투고 내몸 상하고 술에대한 것을 쓰면 아마 소설집을 출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어떻든 술은 그렇게 사람을 즐겁게도 하고 또 동전의 앞과 뒤처럼 사람을 괴롭게도 합니다. 저도 이제 조심조심해야 할 때가 된것같습니다. 건강하시고 더욱 더 재미나는 삶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늦게야 비보를 접하고 추가합니다. 노무현대통령님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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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5-23 1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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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 노익장을 과시하며 사시니 보기 좋습니다.
긴 댓들을 달아드리고 싶은데, 오늘은 안타까운 비보때문에
짧게 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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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희 |
09-05-26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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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대할 때마다 노년을 즐기며 사시는 모습에 감탄합니다. 얼마든지 시간을 유용하게 쓰며 살 수 있는데, 하루 하루 재미없게 사는 자신이 한탄스럽습니다. 선생님의 여러가지 취미활동이 선생님의 건강을 지켜주는가 봅니다. 더욱더 재미있고 유익한 날 되십시요. 부부가 재미있게 사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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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05-31 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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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 짧은 글도 아닌데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대단했습니다.
멋지게 사시는 노신사의 모습도 감탄스럽구요.
사모님과 젊은 부부 모찌않게, 신혼처럼 아기자기한 삶이 모범적이며 재미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금의 모습 그대로 계속 좋은 글 읽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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