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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09-05-31 21:46
조회 :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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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차이
박 영 보
이른 새벽 시커멓던 하늘이 발그레해지기 시작하면서 비쳐주는 여명의 빛살을 바라다보거나 노을 진 저녁나절의 하늘을 바라다 보면서도 그렇다. 동네를 거닐다가 이웃집 앞 뜰에 피어난 장미꽃들은 물론 아스팔트 틈새를 비집고 나와 얼굴을 내밀고 있는 민들레 꽃 한 송이를 바라다보면 이 세상이 마치 나를 기쁨으로 이끌어주기 위해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주변에 이렇게 감탄과 감동을 할만한 것들이 많으니 말이다.
구름의 형태에 따라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변화시켜주고 석양아래 짙고 옅은 색깔로 구름과의 조화를 이루어 낸 도시의 스카이라인 또한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거기에다 철 따라 피어나는 각종 꽃들이 있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활짝 웃음으로 맞아주고 있으니 나라는 사람도 웬만큼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잇살이나 먹고 있는 내가 이런 일로 감동을 하고 있다 보면 생전의 어머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머나 저 돌들 좀 봐”. 초록색, 더러는 군데군데 초록과 적갈색의 물감을 쏟아 놓은듯한 색깔로 무늬를 이루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끼로 덮인 바위를 가리킨다. 그런 바위 사이사이로 흐르고 있는 시린 물에 발목을 담근 채 “아, 시원하다”며 “이 지역은 우리를 어느 골짜기에 아무데라도 데려다 놓는다 해도 절경”이라며 감탄을 한 듯 이야기의 톤을 높이신다. 환갑을 넘긴지도 수년이 지난 어머니의 탄성이었다. 생전에 어머니와 함께 간 적이 있었던 무주 구천동에서의 이야기 이다. 그 나이에 ‘어머나’ 라는 표현을 하는 어머니가 십대의 소녀처럼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동네 전체가 백여가 구가 될까 말까 하는 시골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보낸 나에게는 보이는 것이 산이며 개울, 꽃과 나무들이 있는 벌판이 모두였고 놀이마당이기도 했었다. 길가 보리밭 사이로 족제비가 달음질치고 하늘에선 종달새가 노래하는 그런 동네였다. 개울에 나가면 고무신에 송사리 새끼나 가재새끼를 잡아 담아오기도 하던 기억들은 지금까지도 새롭다.
가끔 ‘내가 만일 큰 도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자라왔다면 지금쯤 나에게는 무슨 추억거리가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온 동네 벌판이 마치 내 세상과 같기도 했던 그런 곳을 고향으로 갖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하고 그렇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우리집에는 열여섯 살의 여고생이 머물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조기유학생이 홈 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학교의 등 하교까지 해 줘야 했다. 학교에 오가는 길에는 주택가와 상가도 지나게 된다. 겨울이 없는 이곳이기도 하지만 집집마다 철 따라 잘 가꾸어진 정원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다. 날씨에 따라 구름의 모양과 색깔도 여러 가지 아름다운 모습들이 연출되기도 한다. 하교 시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서녘하늘 노을의 색깔 또한 감탄을 한만큼 아름답기도 하다.
열여섯의 나이라면 감수성이 강한 또래가 아닌가. 더구나 여자 아이이니까. 예순이 넘은 중늙은이가 매일같이 바라다보이는 하늘의 색깔을 보거나 들꽃 한 송이를 보고도 감탄을 하고 있다는 것은 노망의 초기증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 시절엔 여학생들은 굴러가는 자갈을 보거나 바람에 휘날리는 낙옆을 보고도 깔깔대고 웃는다는 말이 있기도 했었다. 여학생들의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정아야, 매일 같이 이 길을 지나치면서 저 꽃들을 보면 뭔가 생각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니?”라거나 “저 하늘 좀 봐라. 얼마나 아름다우냐?” 물으면 “전 한번도 그런 것들을 바라다 보거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걸요.”
“아, 저 차, 앞으로 내 타게 될 차예요. 제가 갖고 싶은 오픈카이고 꼭 사고야 말 차예요.” 별다른 생각 없이 운전을 하고 있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소리를 꽥 지르는 것이었다. 투 도어 짜리 비엠더블류(BMW) 컨버터블 차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의 말이었다. 이제는 대학생이 됐을 터인데 지금쯤 그 아이는 무엇이, 무슨 일이 그 아이를 감동시키고 있을까가 궁금해 지기도 한다. 그냥 눈요기거리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관 같은 것도 생각을 해보고는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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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06-01 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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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저도 고향이름이 계곡면이라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답니다. 사철 옷을 가라입는 모습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에 대한 감성도 남다르게 느껴온답니다. 이국의 하늘아래 펼쳐지는 자연의 그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사실 요즘애들은 자연에 대한 찬사보다는 미래에 대한 집착과 연민이 더 깊게 느껴오는가 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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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6-01 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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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만 35세와 32세의 저의 두 아들녀석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등꽃이 피거나 자목련 또는 수선화같은 꽃들이 피어나면 억지로 뒷마당에 불어내어 "이 꽃들좀 봐라" 하며 억지로 한마디씩을 시키려 들면 건성르로 "예쁘다"고 하거나 아보카도 나무가지에 매달린 듯한 보름달을 보여주려면 "참 크고 밝다"며 한마디씩 하는 것이 고작이고 그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딴 일로 농구경기 중계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밖에 불러낸다고 짜증을 부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입니다.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봐도 당장 떠오르지가 않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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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09-06-02 1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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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밝게 보시는 안목이 삶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듯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군요.
외국에서 생활하시는 모양이지요? 저는 한국산하에 취해서 그제는 속리산, 그 전에는 담양 등을 여행하며 내 나라를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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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6-02 2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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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담양. 제가 한국에 있었으면 염치 불구하고 선생님을 따라나서고 싶었을 것입니다. 형편상 한국에 있을 때 제주도는 물론 경주나 지리산, 내장산을 포함, 강원도 원주에서 10년 넘게 살아 왔으면서도 아직까지도 설악산 구경한번 가본 적이 없지요. 제주도와 경주는 미국생활 8년만의 첫 방문때 였던 1983년 여름에 지나치듯 잠깐 다녀 온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경부선 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황무지 산은 보이지 않고 너무나 아름답더군요. 자연의 색깔은 항상 마음을 정돈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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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 |
09-06-08 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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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선생님
전 선생님과 인사도 없었기에 늘 선생님의 글을 탐독하면서도 댓글을 달지 못했답니다.
할미꽃에선 더욱 감동이 일었구요.
세대차이의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그리도 똑바른 세상을 잘 보시면서
젊은 세대에 대한 상념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라나는 우리들의 손주녀석들이 늘 걱정이 되거든요.
늘 그런 생각으로 노심초사 하면서 살아가는 저로서도 공감대를 이룹니다.
늘 고향을 그리며 좋은글 쓰시며 살아가시는 박선생님께서
한국에 오시면 인사 올릴 기회가 있을런지요...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한 삶속에 좋은수필 보여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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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6-08 2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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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작가회의 한 식구가 된 것에 대하여 늘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 계신 분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은 없었습니다만 모든 분들의 글을 통하여 모두가 어떤 분들이신가에 대하여 알 수가 있게되어 전혀 생소한 느낌이 들지도 않습니다.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직접 만나뵙고 싶습니다. 복된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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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06-08 2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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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작가의 심성으로 바라보시는 심미안이 놀랍습니다.
선생님은 머리엔 서리가 내려앉으셨어도
마음은 언제나 봄인 듯 합니다.
독자의 마음을 맑게 하네요.
요즘 청소년들은 무얼 생각하며 꿈은 무엇인지 참 궁금해요.
좋은 글 또 읽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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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6-08 2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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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도 자지 않으며 컴퓨터 채팅이나 게임으로 밤을 지새는 아이들, 먹자골목에 떼지어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전철같은데서도 휴대전화기 자판을 바쁘게 눌러대는 양손의 손가락들, 입시가 지상 목표이기나 한듯 이른 새벽부터 학교, 사설학원, 독서실에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 꿈 같은 게 있다면 그덧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IT 강국,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 모두 듣기 싫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조그만 시집 한권이라도 들고다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외워둔 릴케나 헷세의 시 한구절씩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던 시절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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