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오늘 방문자수 |
    |
| 어제 방문자수 |
  |
| 최고 방문자수 |
|
| 방문자수 누계 |
|
|
|
|
|
|
|
|
|
|
|
|
|
|
| 글쓴이 : 정동호 |
날짜 : 09-04-12 22:41
조회 : 2339
|
|
|
|
달밤의 목련화
정동호
달밤에 목련화 앞에 섰다.
무심코 밤길을 거닐다가 나도 모르게 와- 하며 입을 닫지 못한다. 금년에는 유별나게 화들짝 핀 목련화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귀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달빛 아래 마주하는 이 목련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이 화사하다. 백옥보다 더 빛나고 깨끗하다. 어쩌면 이토록 티 없이 아름다울까. 달빛에 반사되어 일렁거리는 순백의 물결이 영혼을 사로잡는다.
햇볕 아래서는 눈길을 끌지 못하던 하얀 봉오리들이 커다란 거울이 되어 보름달처럼 나를 비춘다. 나의 영혼을 뚫어보고 있다. ‘당신들도 나와 같이 단 며칠만이라도 순결하게 살 수 없겠냐’ 고 충고를 보낸다. 세상 오욕에 찌든 자신을 발견한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 본다. 하나님은 저 목련과 같이 인간을 티 없이 순결하게 창조하셨는데 지금의 인간은 왜 이토록 얼룩져 있을까.
남해 금산에 갔더니 정상 부근에 큼직한 둥근 거울이 세워져 있었다. ‘양심의 거울’이란 팻말이 쓰여 있기에 나도 거울 앞에 서 보았다. 그리고 살짝 웃다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바다를 내려다보고 산과 바위들을 둘러보고 또 거울을 보았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 좋아하고 대접 받고 존경 받기 좋아했던 자신이 비쳤다. 돈과 인정에 약하고 편리에 익숙하여 양심을 저버린 일들도 드러났다. 불쌍한 이웃을 외면한 채 자신과 가족들만 챙기는 이기적인 심보가 보였다. 거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한없이 왜소해 보여 무르츰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뜬 일이 있다. 돌아가다 거울 앞에 서 있던 그도 세상 여느 사람보다 나은 게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니면 이 산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거울 앞에 서 있는 듯 살아봐야지 다짐해 보았다. 그래서일까 금산은 쓰레기도 없이 어느 산보다 깨끗하게 느껴졌다.
지난 2월 20일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이 있었다.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유리관 속에 안치된 시신이 TV에 방영되었다. 그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양심이었다. 사랑과 진실, 평화와 자유의 사도로서 언행일치의 삶을 살다가 가셨다. 그분은 양심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몸소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며 약자와 가난한 자 편에서 평생을 몸 바쳐 오신 분이었다.
그는 말을 특히 유창하게 잘한 분도 아니었다. 사람들을 웃기지도 못했고 웃기려고도 아니했다. 높아지려고도 높은 체도 아니했다. 그럼에도 그 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무게가 있었고 능력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란 말이 그의 삶이었고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 분의 장례식장에 이름 있는 지도자들은 대부분 얼굴을 내밀었다. 그 분을 존경한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정작 달밤의 목련 앞에서 자신의 양심을 비추어 본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고 생각해 보았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카메라에 찍혀 빨간 쪽지를 받는 일이 더러 있다. 과속을 했거나 신호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조심하여 안 물어도 될 벌금을 물게 되어 마음도 아리지만, 나도 모르게 미행당했다는 느낌 또한 유쾌하지 못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나를 미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매사에 조심하고 양심에 부끄럼 없이 살아야 할 일이다.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산다는 이도 더러 보지만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정말 교만하고 무지하게만 들린다. 단, 하루만이라도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잠들 때까지 모든 행동거지를 비디오에 담아 식구들과 함께 본다면 어떨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물론 자기 가족들 앞에서 낯 뜨거움 없이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어려서 선친으로부터 자주 들어오던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 선한 것은 선한대로 악한 것은 악한대로 모두를 나의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善惡而 皆 吾師)
나는 이 말을 우리 집 가훈으로 삼아 자식들에게도 전해 주고 있다. 좋은 것이나 착한 것을 보면 나의 본으로 삼고 나쁜 일이나 악한 것들은 나도 함께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그렇다고 김수환 추기경 같은 훌륭한 분의 흉내를 낼 수 있을까만, 잠시라도 마음만은 숙연해 본다.
달밤에 비친 목련이 그래서 더 순결해 뵈는 것인가.
|
|
| 김정자 |
09-04-13 00:24 |
 |
정동호선생님
선생님의 수필에서 많은 뉘우침으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밤에 보는 목련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매료되신 선생님의 뒷모습이 보이는군요.
참 좋으신 가훈을 가족들에게 선사 하셨네요.
선생님의 수필을 읽는 동안 아주 많이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
|
|
| 임재문 |
09-04-13 06:41 |
|
|
정동호 선생님 달밤에 마주한 목련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목련을 좋아하는데,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면, 햇빛도 가린다는 사실 그래서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하는 노랫말을 떠올린 적은 있습니다.그러나 달밤의 목련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오늘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가훈이 있는데 모든 일은 바른데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을 가훈으로 삼고 살고 있답니다.고맙습니다.
|
|
|
|
| 임병식 |
09-04-13 06:49 |
|
정동호선생님, 지난번 일행과 여수 영취산에 진달래 꽃구경 오셔서 전화주신 것 고마웠습니다.
엊저녁 늦은시간에 어느 방송프로 '길을 묻는다'를 시청하다가 참으로 깊이있고 새겨들을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善惡而 皆 吾師라는 말씀이 퍽이나 설들력있게 들립니다.
작품이 흰목련꽃 만큼이나 해맑고 정갈해서 감상 잘 했습니다.
|
|
|
|
| 정동호 |
09-04-13 07:42 |
|
세 분 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김정자 선생님 과찬이 부끄럽네요. 더 노력할께요.
임재문 선생님 건강 때문에 고생많으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임회장님 처음으로 영취산 진달래 군락지를 구경했는데 정말 가관이더군요. 돌산 향일암을 둘러 갓김치까지 사서 잘 다녀 왓습니다.
|
|
|
|
| 정희승 |
09-04-13 12:01 |
|
목련 바다 하늘 선악 모두가 다 거울이네요. 거울 자체를 외면하는 사람이 많은 요즈음, 참으로 좋은 말씀입니다. 저의 아파트 화단에는 벌써 앞에 서보지도 못했는데 목련이 지고 있습니다.
글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불현듯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꽃이 집니다.
멀리서 누님이 옵니다.
|
|
|
|
| 윤행원 |
09-04-13 14:50 |
|
|
정동호 선생님, 조용한 양심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선비다운 깔끔한 성품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善과 惡 모두를 나에게 비추는 거울로 보고 스승으로 삼겠다'는 家訓은 마음에 새겨두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
|
| 정동호 |
09-04-13 21:54 |
|
정희승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 목련을 처음 대하는 순간 가슴에 와 닿는 무언가를 글로 써 보았습니다. 정희승 선생님의 좋은 글들은 늘 부러워 햇지요.
윤행원 선생님! 늘 격려해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
|
|
|
| 박원명화 |
09-04-16 10:13 |
|
목련의 자태속에서 문학적 서정을 이끌어내신 정동호 선생님의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흰빛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이끌어 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게 하는 목련 꽃이지요. 저 역시 목련 꽃을 좋아합니다. 저희 집 부엌 창문 앞에 하얀 촛대가 섰는가 했더니 어느새 꽃은 어디로 가고 잎이 파릇파릇 올라 오고 있네요. 그 목련을 보다 문득 글 한편써보고 싶었습니다.
|
|
|
|
| 정동호 |
09-04-16 12:54 |
|
사무국장님! 여러가지 바쁜 생활 중에서도 협회를 위하여 수고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
|
|
|
| 최복희 |
09-05-02 10:08 |
|
정동호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고운 마음이 묻어납니다.
바쁜 일이 있어 이제야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글은 바로 그 사람을 뜻하기에 글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친밀감을 느끼지요. 좋은 글 많이 쓰십시오.
|
|
|
|
| 정동호 |
09-05-03 06:38 |
|
최복희 선생님 오랜 만이네요.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격려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