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향의 고장 보성군 이야기

                                                                                                                          박 원명화

  누가 이렇게 많은 초록색 물감을 풀어 놓은 것일까. 산이 온통 초록빛이다. 너울거린 녹색 띠들이 정연한 차밭이 마치 천혜의 걸작품 같다. 보성에 들어서면 사방팔방에서 멋대로 흩어진 녹차 향기에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초록의 분출이 한창이다. 

  잔치에는 역시 사람이 흥청대야 제격이다. 보성이 가장 많은 차밭을 가꾸고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작년만 해도 5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는 데도 올해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매년 곡우 절이 다가오면 차잎 따기를 시작한다. 절정기를 맞춰 차 문화 행사로 열린 ‘다향제’는 올해 그 35회를 맞는다.    

  차의 풍작을 기원하는 다신제를 시작으로 차잎따기, 차 만들기 등 차 산업 발전과 차 문화 보급을 위해 보성군민이 하나 되어 벌이는 국내 최대의 차 문화 잔치이다. 이때 가보면 남도보성의 명성과 차의 진미를 직접 느낄 수 있어 좋다. 특히 올해 열리는 다향제는 '예절과 전통문화의 재발견, 자연과 건강이 함께하는 체험축제'를 주제로 펼쳐진다.

신농(神農)은 수정같이 투명한 배(腹)를 가지고 있어 무엇을 먹든 위장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가 있었다. 당시엔 불로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몰라 화초(花草)나 들판에 열린 과실(果實)、또는 독이 든 생선이나 짐승 등을 잡아 날것으로 먹다보니 자주 병에 자주 걸리게 되고 이를 안타까이 여기던 신농은 음식물을 통한 중독(中毒)이나 질병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우유빛(乳白色·유백색)꽃송이가 열린 나무의 연한 나뭇잎을 맛보게 되었다. 그 녹엽(綠葉)은 위장(胃腸)에 들어가자마자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유동(流動)하며, 위장의 내부를 깨끗하게 세정(洗淨)하는 것이었다. 이에 신농은 그 신비한 녹엽(綠葉)을 가리켜 “査(사,cha＇)”라고 불렀고, 이에 후대(後代) 사람들은 “査(사,cha＇)”와 동음(同音)인 茶(차,cha＇)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중국어로 ‘사(査)’와 ‘차(茶)’는 모두 ‘차(cha＇)’로 발음됨〕 후인들의 전설 중에 “신농(神農)이 백(百)가지의 풀을 맛보고, 날마다 일흔 두가지에 중독되었는데, 차(茶)로써 해독했다.(神農嘗百草,日遇七十二毒,得茶而解·신농상백초,일우칠십이독,득차이해)”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기쁨은 배가된다. 1983년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아리랑>을 거쳐 <한강>에 이르기까지 자그마치 19여년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만 써온 소설가 조정래선생의 문학관을 찾았다. 여순반란사건을 중심으로 한과 이데올로기의 세계를 형상화한 『태백산맥』,그 무대인 보성군 벌교읍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통일을 염원한다는 뜻으로 건물을 북향으로 지었다는「조정래」문학관은 그 의미와 뜻을 더해준다. 건물 옆으로 세워진 옹벽은 마치 오래된 대형고분벽화를 보는 듯 했다. 문학관에는 142건 621점에 이르는 작가의 육필원고와 증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층에는 소설의 탄생과정과 출간 이후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으며 2층에는 작가의 삶과 소설을 조명하는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 중 내 시선을 잡은 것은 1층 전시실에 있는 16,500매의 육필 원고였다. 얇디얇은 원고지로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은 원고의 분량은 작가의 진념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듯했다. 그 순간 내 몸이 아주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

  조정래선생은 '불요불굴의 작가정신'을 가진 거인이다. 이념 논란이 자유롭지 못한 한국현대사를 소설을 통해 거침없이 발표한 것만 봐도 그의 올곧은 성격을 알 수 있다. “이 슬픈 시대에 작가들은 정신 차려야 되겠다.” 며 작가들에게 던진 내면의 충고 또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향해 진실을 쓰는 것이 작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것이 아니던가. 필설로는 형용키 어려운 넉넉하고, 아름다운 보성군의 풍경은 계속되었다. 오래전 이곳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데올로기로 죽어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벌교는 평화로웠다.

 맛난 ‘꼬막 정식’이란 걸 난생 처음 맛보았는데, ‘그래 바로 이 맛이야’를 확인했다. 남도는 본래부터도 음식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고장이 아니던가. 오래전부터 먹어보고 싶었던 벌교의‘참꼬막 정식’은 역시 기대 그 이상이었다. 쫄깃쫄깃하면서도 짭쪼름한 맛이 일품이다. 연이어 벌어지는 꼬막의 화려한 변신들, 꼬막전, 꼬막무침, 꼬막젓갈로 이어졌다. 산나물을 포함한 찬들이 한상을 가득 매웠다. 아~아 행복한포만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