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 중에 맞는 8월의 첫 일요일이다. 주위의 지인들이 여름휴가를 많이 떠났지만 나는 길거리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고 휴가 나들이를 포기했다. 한동안은 가족들하고 여름휴가 떠나는 것을 의무처럼 생활 했었는데 자식들도 성장하고 아내도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아 언제부터인가 그 의무를 슬쩍 내려놓게 된 것이다. 어떻든 마음은 홀가분하고 한가롭다. 그 대신 지난 한 달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되돌아보았다. 월초에 세웠던 계획을 제대로 실천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날씨가 너무 무더워서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고 몸이 지친 탓이었다고 스스로 변명해본다. 그러나 연초에 세웠던 계획도 제대로 한 것이 없으니 두 말할 필요가 없이 게으르고 의지가 약한 탓이다. 이런 것을 보면 내가 세운 계획은 진솔한 내 취향이나 의지를 고려한 것이라기보다 세속적으로 해내면 좋은 그런 계획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하반기에 들어섰으니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조금 방향을 수정하더라도 연초에 세웠던 계획의 절반이라도 이루어 보겠다고 다짐해 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주위에서는 나만 게으른 것 같다. 연락할 때마다 항상 바빠서 약속 시간을 잡기가 어려운 것을 보면 모두들 바쁘게 생활하는 것 같다. 요즈음 내 생활은 한달전이나 일주일전이나 어저께나 하루를 지내는 패턴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시간정도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다음 집에 와서 아침을 먹고 열두시 까지는 텔레비전이나 보며 빈둥빈둥 지내다가 누가 점심 먹자고 연락이 오면 부리나케 나갔다가 커피 한잔 하면서 시국 돌아가는 이야기 같은 것으로 대충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 먹고 또 빈둥거리며 지내다가 잠자는 전형적인 백수의 패턴이다. 어떨 때는 누가 찾아 주는 반가운 전화인데도 쇼파에 누운 몸을 일으키기가 싫어 공연히 바쁜 것처럼 변덕을 부리기도 한다. 자기 패턴을 벗어나게 하는 외부의 요구나 충격에 저항 하는 본능은 백수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내 주위의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 정말로 바쁘게 산다. 하루 24시간을 거미줄처럼 쪼개서 사는 것 같다. 모처럼 만날 기회가 생겨서 다음 언제쯤 다시 만나야 할지 약속이라도 하려면 나는 솔직히 아무 날이라도 상관이 없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수첩을 꺼내서 들여다보며 “아이고 이날은 안 되고 저 날도 안 되고 ”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기야 그렇게 바쁘고 부지런하게 사니까 성공도 빨리하고 돈도 빨리 번 것 같다. 일 처리 하는 것도 밤을 새워가며 빨리 빨리 하기 때문에 나 같은 게으름뱅이하고는 생각도 다르고 나를 이해도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기계처럼 각박하게 살아서 오로지 성공에 취한 사람이 부럽지는 않다. 그들보다 재빠르지 못하여 기회를 놓쳤더라도 후회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 보다는 글을 쓰다가 쓰기 싫으면 졸면서 오수를 즐기기도 하고 헬스장에서 런닝 머신 위를 걸으면서 양손을 머리 위 까지 올려가며 해병대 흉내를 내는 모습에 혼자 웃음 지으며 즐거워하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 이렇게 마냥 느리게 도는 내 패턴 속에서 유치하든 어떻든 순간순간 마다 누리는 행복감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를 구하고 싶지도 않다. 내 행동을 합리화 시키려는 언어적 수사가 아니고 정말로 나는 현재의 내 패턴이 편하고 좋다. 빈둥거릴 때의 여유로움, 점심약속에 나가면서 백수 패턴에서 잠시 일탈하는 아쉬움과 곧 다가올 즐거운 시간을 기대하는 미지의 시간에 대한 기다림 같은 것들이다.

 중국에 갔을 때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는데 예정시간이 지났는데도 출발한다는 소리가 없어서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하면서 퉁명스럽게 기다려 보라는 것이다. 무려 4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혼자서 투덜거리고 있는데 한국말을 하는 중국 동포가 말을 건넨다. 그런 일이 보통일뿐더러 아무도 사정을 알려주지 않는데도 물어보거나 항의 하는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도 한국에 가서 살다가 왔는데 한국 사람들은 성질이 무지하게 급해서 모든 것이 빨리 빨리인데 중국은 만만디라고 했다. 그런 것을 보면 아무 자원도 없는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시간을 황금 같이 여기고 아껴서 한시도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기회도 빨리 잡고 출세도 빨리 해서 성공을 하고 돈도 빨리 벌어서 행복한 시간도 빨리 얻는 사람은 그다음 순서로 죽음도 빨리 올 것 같다. 다른 것은 전부 빨리 빨리 되면서 죽음만 만만디로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세상의 이치는 공평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다가 오면 원래 느린 시간들을 보내면서 생각도 많이 했으니까 쉽게 결정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 그러나 바쁘게 살아 온 사람들은 어떨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므로 무척 당황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어렵게 쌓아온 부귀와 명예를 놓기가정말 아까울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인생의 끝머리에서는 여유롭지 못했던 생활이 후회스러울 것 같고 성공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것 같다. 문득 피어 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인 고등학생들과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건네주던 7살짜리 어린 오빠는 어떻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영상으로 전해온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깔깔 거리다가" 아아. 우리 이제 정말 죽는가보다, 엄마 사랑해 "하면서 들이치는 파도에 쓸려가며 눈을 감았다. 보는 이들의 가슴은 메어지지만 정작 그 아이들은 죽음의 순간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고 쉽게 눈을 감은 것 같다. 한평생 일구어 낸 성공을 아쉬워할 처지도 아니고 아직은 빈손으로 태어난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에 쉽게 생명의 손을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태껏 아름다운 것들만 보았으니까 하늘나라에 가도 지금처럼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순진무구한 기대로 죽음을 그 순간 담담한 모습으로 의젓하게 받아 들였을 것 같다.

죽음을 맞는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고통의 시간이 아니고 즐거움으로 영원히 멈춰버린 시간이었을 것 같다

( 2014. 8 백우 정진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