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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4-08-02 08:40
조회 :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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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 머무는 사유
임병식
나는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도 부지불식간에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는 때가 있다. 어디냐 하면 수반위에 놓여 진 수석이다. 일부러 보려고 취한 동작은 아닌데 시선이 수석에 꽂히곤 한다.
누가 석광(石狂)이 아니랄까봐 표시라도 내려는지 수시로 눈길이 간다. 대개는 1,2분에 머물고 말지만 어떤 때는 10분도 넘게 꽂혀있을 때가 있다. 그토록 눈길이 머물다보면 머릿속에서는 사유가 일어난다. 탐석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던 때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떠오른다. 그러다가도 방향을 틀어 역사를 생각해 보는 때도 있다. 물론 이 때의 역사란 수석의 역사이다.
한데, 그 역사를 거슬러 오르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마주치는 것이 있다. 고향에 잠들어 계시는 입향조의 산소이다. 우리 마을 자손은 그분으로부터 이어졌다. 하면 왜 그분이 떠오른 것일까.
나로서는 8대조가 되시는데 아무래도 그런데는 촌수를 따져 어떤 연대측정이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조상님은 영조 말 정조 초에 지금의 고향마을에 자리 잡으셨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50년 전이다.
그때부터 후손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고조부와 증조부 대를 거치는 동안 거의 50여호에 육박한 가옥과 200여명이 넘은 자손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만큼 초기 정착기로부터 따져보면 짧은 시대는 아니다. 그런데도 선대를 거슬러 오르다보면 흘러온 시대가 선명하게 그려진지는 것이다.
그 250년 전은 한국의 문화가 꽃피던 르네상스시대이다. 그림과 서예뿐만 아니라 수석취미도 사대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고급 취미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때가 그리워지면서 생각이 오래 머무는 것이다.
당대의 수석문화는 시인묵객인 조면호 선생과 황산 김유근선생, 추사 김정희선생이 이끌었다. 어느 집에 좋은 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찾아가 감상하고 그 완상한 시문을 써서 서로 건네며 즐거움을 나누었다.
당시에 일어난 일이다. 어느날 황산이 어느날 벼슬길을 그만두고 돌아오는 길에 마차에 짐을 가득 싣고 나타났다. 부인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았다. 한데 그것을 들춰본 부인은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금은보화가 아닌 한갓 쓸데없는 돌멩이었기 때문이다.
이 광경을 추사가 전해 들었다. 어찌 시 한 수를 남기지 않았겠는가. 다음은 그가 남긴 시. ‘수레에 가득히 실어온 돌/ 부인은 버선발로 나왔다가/ 돌인 것을 알고서/ 여기서 무슨 의식이 나온단 말이요/ (이하생략) .’ 내용으로 보아 대단히 실망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아마도 추사는 한바탕 웃으며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어찌 호탕한 풍류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데 나는 여기서 동시대 사람으로 또 한사람을 그려보게 된다. 그 사람은 일생에 책을 2만권이나 읽고 읽은 책을 수백권이나 필사했다는 이덕무(1741-1793)선생이다. 그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으나 비루하지 않고 선비의 기개를 지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독서로 다져진 해박한 지식 이외에도 늘 소매 속에 붓을 가지고 다니면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적은 탓에 문장으로도 이름을 얻었다. 다음은 그의 기개를 짐작케 하는 <나를 경계하는 글>의 한 대목이다.
“선비는 마음 밝히기를 거울 같아야 하고 몸 규제하기를 먹 줄 같아야 한다. 거울은 닦지 않으면 먼지가 끼지 쉽고 먹줄이 똑바르지 않으면 나무가 굽기 쉽듯이, 마음을 밝히지 않으면 쓸데없는 생각이 저절로 가득 차게 되고, 몸을 규제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저절로 생겨나게 된다. ”
이 얼마나 자기 경개와 절제가 철저한 사람인가. 그는 서얼 출신으로 벼슬길에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성군인 정조임금을 만나 서얼출신도 등용하는 은전에 힘입어 규장각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국조교감등 수많은 책을 교열했다고 한다.
한번은 정조임금이 그에게 시문을 짓게 했다. 그러면서 ‘雅 아’ 자를 내려주셨다. 하여 아호가 청장관이외 아정(雅亭)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젊은 나이로 죽자 임금은 애석하게 생각한 나머지 시문을 편찬해 주도록 했다. 이때 대문장가 박지원에게 아들이 찾아가 서문을 부탁했다. 그를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없는데 내가 쓰지 않고 누가 쓸것인가’ 하고서 흔쾌히 응해 주었다고 한다. 인품에 감복한 것이었다.
19세기 전후는 이렇듯 뛰어난 문장가와 수석애호가가 많았다. 그러니 생각이 그곳으로 미치지 않겠는가.
비록 먹은 것은 거칠고 입은 옷은 소박해도 청유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으니 어찌 본받을 만 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하여 수석을 감상할 때는 버릇처럼 그 시대를 가늠해 보는지 모른다. 시차는 거리가 있으나 그리움은 거리가 없으므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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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4-08-02 0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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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올려진 글에 답글을 달고 수필 한 편 올려야지 들어왔는데
금방 선생님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인터넷에서 실시간 소통이 되는 게 늘 신기합니다.
옛사람들의 이야기는 배울 점이 많고 생각할 것이 많아서 즐겨 소재가 되는데
선생님께서도 좋은 소재를 잡으셨습니다.
요즘은 [간찰]을 읽고 있습니다. 편지의 종류에 대해서 써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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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08-02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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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파시가 통했나 봅니다. 저도 며칠 들어오지 않다가 새로 올려진 글이 있어서 댓글을 달아놓고 마악 글을 올렸드랬습니다. 간찰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하니 기대됩니다. 소소한 것들이 때로 큰 감동을 주기도 하기에 얻어갈 것이 있을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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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4-08-02 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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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을 애호함이 石狂의 경지에 이르렀음은 참으로 자연과 합일의 경지가 아닌가 思料됩니다.
변함없이 있는 그대로 아름다움을 주는 것은 영원한 기쁨이 될 것입니다.
수석을 좋아한 이덕무선생의 '나를 경계하는 글'은 오늘에 사는 작가들에게 큰 깨우침이라 생각합니다.
'선비는 마음 밝히기를 거울 같아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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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08-02 1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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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을 아끼다보니 돌멩이 하나로 우정을 나누고 벗을 사귀던 조선시대의 신비들이 늘 그리워집니다. 아마도 영조시대부터 현종시대까지 100여년간이 역사의 격랑은 많았지만 문화가 활짝 꽃핀 시대가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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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4-08-02 1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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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잡이를 보고 어른들은 아이의 장래를 축복하였지요.
그 사람이 어떤 사물, 어떤 물건을 애호하는지만 보아도 그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석은 억겁의 세월을 절차탁마하여 오늘 변절하지 않되 고고한 품위를 잃지 않으니 선생님 또한 그러한 선비의 기상으로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비록 단사표음일지라도 옛 선비의 청유의 향기가 그리움은 유전자가 일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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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08-02 2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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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어느것을 집어들어도 같은 것이 없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돌은 부동성과 진중함, 세월감같은 것이 응축된 것이어서 선비들이 많이 벗을 삼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꿈을 꾸면 탐석하는 꿈을 꾸는 것으로 보아 돌 사랑은 앞으로도 그칠것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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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08-02 1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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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생님의 탐석에 심취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상당한 권위자가 되셨을것 같습니다.
어떤것이든지 미쳐 버리고싶은 대상이 있다는것은 뜻 깊고 행복한 것 같습니다. 사유의 세계가 무한히 뻗어나가는 말씀만으로도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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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08-02 2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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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을 감상하고 있으면 참 신비한 점이 많습니다. 구입석은 어디서 얼마를 주고 산 것만 기억되지만, 자탐을 한 돌은 어디서 탐석을 했으며 그날의 기분까지도 느껴져서 생각이 오래 머물게 됩니다. 요즈음은 청풍오석 한점을 옆에두고 물을 뿌려놓고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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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4-08-02 2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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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자는 돌을 보고 수억년 전의 기상 상태, 지각의 움직임, 생태계의 변화 같은 것을 짐작한다는데 선생님께서는 돌을 보시고 당대 석학의 삶을 짚어내시니 선생님의 혜안이 두렵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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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08-02 2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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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을 보며 혼자서 즐기고 교유해온 역사는 중국은 송나라시대, 우리는 조선시대에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서화에 보면 석죽도가 많이 보이는데 아마도 그림을 그리는데 하나의 필법으로 자리잡았던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옛분들과 학문의 깊이는 따라가지 못하나 취미만은 공유하니 무언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는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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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02 2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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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든 간에 눈이 모아지고 마음도 모아지게 될때 구태여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판단같은 것도 필요할 것없이 무아의 지경에 들어서게 될 때 오히려 행복할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크고 작고를 떠나 무엇에든 어느 한 곳에 몰입을 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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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08-03 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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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하기로는 취미생활이 제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업과 관련이 없으니 부담이 없고,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가 쉽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세상에 나서 무엇엔가 미쳐본다는 것도 한번쯤 해보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고국에 머무시는 동안 평안하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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