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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14-07-29 07:51
조회 :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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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심으며 사는 남자
박 영 보
어슴프레 어둠이 걷히는 듯 하여 전화로 “벌써 일어났니?”라고 물으면 “응, 지금 깻잎모종을 심고 있는 중이야.”란다. 아직 어두울 텐데 보이기나 하겠느냐 면 이정도 쯤은 이제 느낌만으로도 간격을 맞추어 심을 수 있을 만큼 이력이 생겼단다. 비가 올 것 같은데 그 전에 심어둬야 한다며.
십여 분만 운전하면 만리포 해수욕장이 있는 충남 보령의 웅천. 남포에 있는 선산에서도 십분 내외의 거리에 있다. 온통 초록의 벌판, 골짝에 흐르는 냇물은 발이 시릴 정도이다. 맑은 물에 노닐던 송사리 떼며 돌 짝을 들어 올리면 가재새끼 뒷걸음치던 지난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이런 곳에서 이런 식의 삶을 사는 것이 나의 꿈이고 목표이기도 했었다. 아직도 그런 꿈과 목표를 완전히 지워 버린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그런 용기나 결단력 같은 것이 없었는가 보다.
벌써 이 년째에 접어들었다. 하와이에서 보낸 삼 십여 성상. 지내온 그 세월들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는 공백의 시간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단숨에 훌훌 털어버리고 나설 수 있었던 용기. 그것은 그냥 한번쯤 저질러보는 만용이나 객기에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 같다. 귀농의 길.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때 팀에서 보칼과 키보드 파트를 맡고 있을 때 제법 알려진 그룹사운드의 멤버이기도 했었다. 라디오나 TV는 물론 당시 시민회관과 같은 큰 무대에서도 박수를 받던 시절도 있었다. 요샛말로 ‘한참 잘 나갈 때’ 악기를 실은 짐 트럭은 뒤를 따르게 하고 다섯 명의 멤버 모두가 앞장서서 새빨간 색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음 공연장소로 이동을 할 때의 제법 모양새 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도 마음을 접고 하와이행 짐 보따리를 쌌던 것을 보면 이 또한 그에게 만사를 한 순간에 접을 수 있는 ‘용기’라는 게 있었던가 보다.
그러나 그의 그런 용기, 그런 결단은 무슨 호사스러운 꿈을 꿔가며 한번쯤 저질러 보는 일회성 심심풀이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거기엔 아주 소박하고 순박하며 여리고 따뜻한 정감이 깔려 있었다. 이를 통해 금전적 소득이나 이윤 같은 사업성이나 개인적 소유욕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얼핏 보면 답답하게 보일 때도 있다. 내 눈으로 보면 주변에 널려있는 여건들만 잘 활용만 해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요소들이 얼마든지 널려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집은 비바람을 피할 뿐이며 음식은 배고픔을 달래고 옷은 몸을 가리며 추위를 막을 뿐’이라는 마치 신선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무슨 대단한 아이디어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좋고 많은 소득원을 잘 활용해 보라고 권고하려 했던 나를 무색하게 만든다.
“내가 여기에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으면 칠십 대에서 팔십 대에 있는 형님들과 누님들, 그리고 동생네 가족의 쉼터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는 사람. “또 나 자신이 이런 청결하고 아름다운 푸른 골짝에서 즐기며 살수 있는 인생이니 그 이상 무엇을 바랄게 있겠느냐”는 사람. 형제들이 도시 생활에서 쫓고 쫓기며 시달리는 생활에서 잠시라도 들려 몸과 마음을 쉬고 갈 수 있는 조그만 쉼터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다. 그에게 지금 무슨 다른 제안이 필요할까.
지난 주 나를 포함한 육 남매가 기차 편으로 그곳에 갔었다. 집 주변엔 옥수수, 호랑이 강낭콩, 토마토, 참깨, 호박고구마, 호박, 오이 등이 무성하다. 끝물이 된 호랑이 강낭콩 밭을 거둬내야 했다. 칠 남매 모두가 나서서 힘을 모으니 반나절 만에 모두 끝내고 나니 들깨 모종을 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이 또한 손과 마음을 합하니 해지기 전에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거둔 소출들은 일부러 짐 보따리를 들춰 메고 매장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도시에 살고 있는 옛 친구들이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물량이 모자랄 정도란다. 모자랄 경우 이웃들이 거둔 소출들도 모아 함께 팔아 준단다. 전화 주문에는 택배로 보내준단다. 친구들로부터 받은 대금의 액수 전액을 그대로 이웃들에게 되돌려 준단다. 친구들은 가격 같은 것은 묻지도 않고 자기들이 알아서 시중가격보다도 더 높은 가격으로 사주기 때문에 오히려 미안해서 주문한 량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실어 보낸다고도 한다. 오 가는 정, 나눔의 정이 물씬 풍겨나는 광경들이다.
농사일에는 초보자인 동생에게 이웃들이 이런 저런 많은 지도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혼자 지내고 있는 육 십대 후반의 남자가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을 거라며 김치나, 갖가지 밑반찬도 가져다 주기도 한단다. 어디를 가나 외지에서 온 사람에 대한 텃세랄까,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류의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곳이라고 하여 예외가 있을까마는 이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참고 견디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아무런 잘못이나 이유도 없이 괴로움과 불편을 주며 심술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고 있는 이에 대한 대응책은 오직 참을 뿐이며 진실을 보이는 일뿐이란다.
돌아올 때는 우리 형제들에게 한 보따리씩 안겨주는 그의 소출들. 행복의 온기가 감싸오는 것 같은 뿌듯함이 몸과 마음에 번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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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4-07-29 1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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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농사 짓는것이 행복을 심으며 사는 남자라 생각한다면 심사숙고의 대상이 아닐까 감히 생각이 듭니다. 요즘 보통 농작물이라하는 농사를 지어 봤자 적자투성이 입니다. 겨우 남는것은 인건비에 불과합니다. 남의 손 빌려서 농사 지으면 그 때부터 적자입니다. 농약, 비료 대금도 무시 못하지요. 도시에서 농촌을 보면은 이상향이지만 정작 늦은 나이에 먹고 살기 위해 전업농한다면 고생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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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7-29 2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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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리는 땅방울의 결실. 이것을 나누는 기쁨. 그 이상의 바램이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냥 뿌린 씨앗에서 움터나오는 새싻, 떡잎, 본잎, 줄기, 꽃, 열매로 이어저가는 과정을 바라다 보며 행복해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제 동생이 안쓰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한 차원을 넘은 세계를 일구어 나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영리만을 꿈꾸는 대농을 원치도 않으며 농기구라 해도 삽과 꼭괭이와 호미 그리고 모종삽과 물뿌리개만 있으면 그만인 정도의 규모에서 더 이상 넓히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땀과, 시간, 그리고 몸체의 움직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꿈의 폭으로 한정짓고 있는 그런 사람에게는 괴로움도 고민도 행복을 일구는 한가닥 도구가 될 수도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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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08-02 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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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생님께서 요즘 고국에 돌아와 지내신것 같습니다. 농사를 짓는 동생을 도와 땀흘리며 지내시는 모습이 건강하고 소박해 보여서 좋습니다.고국에서 머무시는 기간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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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02 2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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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강낭콩을 거두는 일, 들깨 모종을 하고 물 뿌리기, 옥수수 수확, 이를 위해 땀으로 적셔진 셔츠를 벗어저치고 등목을 하는 재미 수십년전의 농촌풍경 그대로였습니다. 옥수수 열매만 따고 줄기는 그대로 놔둔채 그 옥수주 줄기를 이모작으로 심는 호랑이 강낭콩의 넝쿨을 올리려는 지주로 삼겠다는 동생, 어느새 농사꾼이 다 돼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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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4-08-02 0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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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몇 달 동안에는 뉴욕에서 오신 선생님이 서울에 계셔서 자주 만났습니다.
미국에 손님으로 갔을 때와 들어오신 분을 맞이할 때의 마음이 다른 데,
박선생님께서도 오셔서 옛날의 일을 생각하며 추억을 만끽하고 계신듯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다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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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02 2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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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와서 '촌놈' 노릇하기 바쁩니다. 팔십대 중반의 형님이 칠십대를 넘기고 있는 얼떨떨이 동생때문에 신경도 많이 쓰고 계신답니다. 저 혼자 밖에 나가게 되면 매 한두시간마다 무사하다는 보고전화를 드려야 하지요. 하도 어리숙하니 어데 제대로 길을 찾아 다니지나 않나 싶어 하시는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연락을 해 드려야 마음을 놓으시니까요. 제가 나갔다가 어느 누구의 도움없이 돌아오는 행선지는 현재 용인 성복동에서 죽전 지하철 역 정도 오가는 정도를 터득한 것에 불과 합니다. 아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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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08-02 1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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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들과 옛추억도 상기하며 즐겁게 지내시는 모습이 보람되게 느껴집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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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02 2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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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의 동생을 만나러 가게 된 것은 형님들 누님들과 함께 가는 길이어서 마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만 길눈이 유난히 어두운 저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곳 형님댁에서 걸어서 나갈 수 있는 위치의 정해진 자리에서 만나곤 합니다. 오히려 찻집같은 곳의 이름이나 주소/위치는 상대편에서 알려주는대로 적은 메모쪽지를 들고 나가야 할 정도입니다만 하여튼 만남은 행복하기만 하고 즐겁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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