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감자를 세 상자 주문했다. 20kg 한 상자가 택배비를 포함하여 2만 원이다.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몇 푼이나 남는지 짐작이 안 된다. 1,000상자면 무려 20톤인데 기껏 2,000만 원어치이다. 그마마한 감자를 캐려면 어림잡아 사방 100 미터의 밭에 감자를 심어야 한다. 본전을 건지지 못한 고추농사가 눈에 밟힌다. 중국산이 국산의 절반 가격이니 천방지축 용을 써도 묘수가 없다.

감 밭에 풀 베러 가다가 길모퉁이에 차를 멈추고 구멍가게에 들어섰다. 빵도 우유도 인사가 없는데 노파가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낯을 한다. 오래 두면 거시기한 것들은 들여놓지를 않는다한다. 두 개 남은 초코파이와 생일이 묘연한 과자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면소재지 슈퍼에서 이것저것 챙기고 카드를 내미니 주인아주머니가 떫은 감 먹은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신용카드 안 받는 곳도 있느냐며 열을 올리자, 어디서 더러 들어본 말을 한다. 카드 처리기가 고장 났다는 거다. 세월을 탄해도 기계는 고쳐지지 않을 터이다. 여기는 갈데없는 시골이니까.

LPG가 또 올랐다. 도시사람은 무시로 값싼 도시가스를 쓴다. 촌사람은 밥짓다말고 가스 취급소에 사정을 하고 목이 빠진다. 농장 가까운 마을 이장한테 친환경비료 주문을 부탁했더니 대번에 어깃장을 놓는다. 이장세도 내지 않는 주제에 생심부름 시킬 일 있느냐며 칼을 겨눈다. 이장도 벼슬아치이다. 이곳은 시골이니까.

경운기를 뒤따르는 자동차 행렬은 낯익은 풍경이다. 도로주행 실습을 하는 1톤 트럭의 당당함에 어이가 없어진다. 외줄기 시골길을 전세내지 말아라. 마을 안길에서나 가당한 전동 휠체어가 찻길에 나서서 속을 썩인다. 아무리 시골이지만 심하지 않소이까. 시골노인은 당신들의 걸음을 믿는 듯하다. 보행기에 매달려 찻길을 지르는 위태로운 몸짓이 안쓰럽고 짠하다.

시골은 쓰레기 같은 도시인의 쓰레기장이다. 한적하고 후미진 곳은 투기장이 되었다. 그들은 쾌적한 산골에 쓰레기를 내버리고 더러워진 양심을 아무렇게나 주워 싣고 황급히 도망간다. 살아있는 쓰레기들의 발자국이 어지러운 이곳은 만만한 시골이다.

조류독감의 전파경로는 감염된 닭․오리일까, 야생조수일까? 보균자가 야생조수인바에 ‘차단’이 무색하다. 날개 달린 청둥오리와 가창오리가 어디를 가지 못할까. 반경 500미터나 3킬로미터 안에 있는 가금류를 몰살시키면 해결되는 일일까. 해결 되고말고, 여기가 시골인 걸 벌써 잊었나.

도시의 검은 연기에 소방차가 법석이고 뜬금없는 봉화가 오르니 프로펠러 소리가 창공을 가르는데 산골에 연기가 스멀거리면 면직원의 오토바이에 불이 붙는다. 날을 잡아 밭두렁을 태워보다가 산불을 내고 퍼렇게 떨기만 하던 청자 할아버지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아파트 화단의 살구꽃은 이레가 지났건만 산촌의 봄소식은 늘어진 시조가락이다. 멀쩡한 벽시계도 이곳에 오면 횡설수설하다가 반시간은 지참(遲參)한다. 여기는 시골이니까.

진돗개가 쇠줄을 끊고 나가 이웃집 애완견을 물어 죽인 게 몇 번째인가. 대놓고 화를 못 낸 이웃집 사장님이 싸늘한 주검을 우리 농장 앞에 늘어놓았다. 변상한다는 말을 못하고 며칠 후 막걸리 여남은 병 싸들고 조문(?)을 한다. 화를 내지 않아도 속을 알고 변상하지 않아도 속을 아는 여기는 속없는 시골이다. 비료를 싣고 온 화물차가 구렁에 빠져 버둥대다가 숨이 넘어갔다. 아랫마을 이장님이 열 일 제쳐놓고 달려와서 염려를 해주고 오리 밖 권 사장은 트랙터를 끌고 와서 한 시간을 씨름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으니 그저 고맙다는 한 마디에 손사래를 치며 시치미를 떼는 여기는 정겨운 시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