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의 거장 겸재정선을 만나다

고국으로 돌아온《겸재정선화첩》-국립고궁박물관

(2013. 12. 26-2014, 2.2)

                                                                                                                              박원명화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든다. 호들갑 떠는 일기예보와는 상관없이 동장군의 변덕은 혹독한 냉기를 뿜어대거나, 제 풀에 지쳐 한 풀 꺾이거나 하는 반복을 즐긴다. 그런 겨울 추위를 피할 길은 없다. 그저 동장군의 기세에 흔들릴 수밖에.

  추위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실내에서 안락한 낭만과 휴식을 즐기는 것은 어떨까. 도심의 건물 숲을 뒤적이다 보면 재미난 공연도 만날 수 있고 특별한 전시회도 볼 수가 있다. 색다른 즐거움도 누리고 한겨울 추위도 피할 수 있는 좋은 절호를 어찌 놓칠 수 있으랴.

  붓 하나로 세계 미술계를 재패한 겸재정선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산수화의 진실은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도 먼 옛날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게 그 매력이다.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 겸재정선을 따라 조선 땅을 발로 탐승하고 눈을 통해 가슴으로 구경하는 일이다.

  그 시대 최고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은 많다. 김홍도를 비롯하여 안견, 장승업, 신윤복 등이 있다지만 겸재 정선 謙齋 鄭敾 만큼 그림을 많이 그린 이가 있을까. 선생은 여행을 즐겨 전국 명승지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듯 있는 그대로를 그리기를 좋아했다. ‘금강내산전도金剛內山全圖와 같이 우람하고 힘찬 산수화는 물론 섬세한 붓터치가 돋보이는 ‘함흥본궁송도咸興本宮松圖’에 이르기까지 그의 다양한 예술세계는 한계가 없는 듯하다. 정선은 금강산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겸재하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의 산수화풍은 개성과 격조가 돋보인다. 내금강의 명소 ‘만폭동도’ 는 절벽 계곡풍경의 정수를 실감나게 표현했고 외금강의 명소인 ‘구룡폭포’는 장쾌하게 깎아내린 절벽의 웅장함을 정교한 필선으로 부드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 외 서울 인왕산도를 비롯 영남교남명승첩 등 겸재가 남겨 놓은 많은 걸작은 시대를 엿 볼 수 있는 역사적 산물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는 특히 자연의 정취를 많이 그렸다. 그의 산수화에는 독창적인 화법으로 표현된 소나무가 자주 등장한다. 용이 꿈틀대는 듯 뒤틀린 소나무의 둥치에는 용의 비늘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 역시 정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겸재 정선은 당대는 물론 후세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유의 화풍(畵風)을 개척한 인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타고난 미술가임이 분명하다. 그가 그린 산수화 대부분은 직접 보고 흡사 찍어 놓은 듯 그린 것도 있지만 다녀온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예술적 끼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마치 본 것 이상으로 정취 그대로를 실감나게 표현해 그린 것도 있는 듯하다. 이는 그림과 기록이 실제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는 역사학자들이 주장에서 드러난다.

  이번 고궁박물관의 ‘고국으로 돌아온 《겸재정선화첩》’은 영인복제본 및 화첩의 환수과정과 학술적 의의를 밝히는 글들을 모은 단행본 ‘돌아온 문화재 총서 시리즈 1’발간을 기념해 마련된 전시이다. 겸재의 다양한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그런지 반가움과 그리움을 배로 즐겼다.

 겸재선생이 남긴 화첩전시는 삭막한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가슴에 자연의 소박한 운치를 전해주고 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비록 정신적 거리감은 멀게 느껴질지 몰라도 예술적 혜안은 이름난 명승지를 탐방한 듯 황홀할 지경이다.

  그림을 보면 볼수록 친근감이 짙어간다. 솔직해 보이고, 담백해 보이고, 정스럽다. 자연의 연한 속살,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들여다보고 나니 눈도 마음도 맑고 선해진 느낌이다. 그림으로나마 겸재선생을 만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즐거움이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