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망 높은 어른이 별세하였다. 자식들은 당대의 지관이 물색해 준 명당에 아버지를 모시기로 하였다. 발인 날 새벽부터 억수가 쏟아져 그치지를 않았다. 불어난 냇물을 건널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냇가에 유택을 마련하였다. 세월을 따라 근동 사람들은 냇가의 산소에 예를 올리며 어른의 생전을 그리워하였다. 그곳을 지나던 조선 제일의 지관이 어른의 유택과 주변의 경개를 유심히 둘러보더니 무릎을 쳤다던가.

나는 좋은 일을 한 가문이 길지(吉地)를 차지하도록 안배되어 있다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을 고집한다. 이 땅에 명당요처가 따로 있지 않으니 순천자(順天者)가 묻힌 곳은 길지로 화하고 역천자(逆天者)가 묻힌 곳은 비록 고인이 말하는 명당이라 할지라도 폐지(廢地)로 변질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악덕한 자가 명당을 차지하면 그 신성한 땅이 더럽혀질 따름이다. 사람들은 그가 묻힌 땅에 침을 뱉고 그 땅을 저주하게 되니 죽어서도 죄를 짓는 셈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천국과 지옥이 있으니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행실이 땅을 성지로 만들기도 하고 오염시키기도 한다.

‘명당(明堂)’은 풍수지리설에 근거 하여 장차 좋은 일이 자주 생긴다는 집터나 묏자리이다. 집터인 경우에는 주 건물의 전방이고, 묏자리로는 무덤 앞에서 안산(案山)과의 사이 공간을 말하며,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에 둘러싸인 부분이다.

백옥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집에 들어가 사는 자가 ‘짐승’이라면 그 집의 되어 갈 형편이 어떻겠는가. 초라하고 지저분한 집이라 해도 입주자의 행실이 향기로우면 그 집은 성소(聖所)로 탈바꿈할 것이다. 명당혈처가 있다한들 갈데없는 비렁뱅이는 아흔아홉 칸의 주인 노릇을 감당하지 못하며 산골의 초부가 꿈속의 곤룡포를 떨쳐입어도 왕 노릇 한 시를 견딜 수 없다. 예부터 땅은 그곳에 있었으되 오직 그 땅에 더불어 사는 사람의 격에 따라 길지(吉地)가 되기도 하고 흉지(兇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땅에 묻힌 백골이 후손의 화복을 좌우한다는 묘리를 알지 못하나 부조 생전의 행실이 후손의 인생에 감응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 자신이 선을 행하여 덕을 쌓아올림으로 자손이 평안을 누린다면 족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명당은 땅에 있지 않다. 적선한 부조(父祖)가 명당이요 대를 이어 선을 행하는 사람이 명당이다. 그곳에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다.

‘풍수(風水)’란 집, 무덤 따위의 방위와 지형이 좋고 나쁨과 사람의 화복이 절대적 관계를 가진다는 학설이며 중국 후한말의 음양오행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풍수(風水)는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온 말이다. ‘장풍’이란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방풍이 아니라 생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불어나갈 바람을 갈무리하는 것이다. 기(氣)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멎기 때문에 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바람막이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임자 있는 몸에 바람이 나거나 자동차 바퀴에서 바람이 빠져 나가는 것은 불리한 현상인 줄 알겠는데 멀쩡한 땅에서 바람이 불어나가는 일이 있으니 그 바람을 잡아두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본질이 궁금하다. 바람은 무엇이며 언제까지 붙잡아 두어야 하는가?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 가운데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백골에 남아 땅에 묻히게 된다. 땅 속에 들어간 백골이 생기를 받으면 축적된 생기가 동일 유전자를 가진 자손에게 감응이 되어 자손이 행, 불행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동기감응(同氣感應)’이니 죽은 자의 백골이 받은 지기(地氣)가 후손에게 그대로 이어진다는 묏자리 풍수 이론이다. 그러나 조상의 백골이 지하의 생기를 받아 내게 복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선하지 못하다. 부조(父祖)가 적덕하면 남은 경사가 있기 마련이니 자손이 받게 된다.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와 위로를 받는다. 부조가 악업을 쌓으면 그 자손의 과오가 가중 처벌되고 저주마저 받게 된다. 한마을 두 아이가 함께 수박서리를 하다가 붙잡혀도 누구네 자손인지에 따라 밭 임자의 대우가 달라진다. 적덕한 집안의 아이는 오히려 덕담을 듣고 잘 익은 수박까지 받아간다. 악덕한 집안의 아이는 싸다듬이를 당하고 온갖 악담을 듣는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이 후세에 전하고자 한 ‘동기감응’의 이치이리라. 그러나 동기감응의 지극한 깨달음은 따로 있다. 나 자신의 선한 행실이 흠향되어 지하에 있는 조상의 죄업이 씻김 받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면 개천도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되며 자손이 나라에 큰 공을 세우면 조상의 오욕은 지워지고 자랑만이 드높다. 산 자만이 죽은 자의 명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사대봉사(四代奉祀)이다.

나는 조상의 유택을 길지에 조성하려는 근본사상이 불교의 윤회법이라고 생각한다. 12운성의 포태법에 따라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종교의식이다. 좋은 묏자리로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동기감응의 이론은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산에는 형세가 있고 산의 정기 즉 맥이 있으니 산은 생명체이다. 간룡이란 명당 주위의 지세 곧 네 생명체의 형상과 역할을 살펴보는 법이다. 북 현무는 주산이요 남 주작은 안산과 조산이며 좌우에서 청룡과 백호가 주산과 조산을 호위한다. 그러므로 간룡의 이치는 사신(四神)의 참 모습을 깨닫는 데 있다. 산은 생명체이나 세상의 동물이 아니라 하늘의 신이다. 그러기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사신(四神)’이라 한 것이다. 사신은 하늘의 질서를 세우고 호위하는 영물인데 어찌하여 땅의 명당을 수호하는 네 동물 곧 산으로 현신한 것일까. 혹은 천하의 명당 길지언정 죽은 자의 육체가 묻힐 혈처를 하늘의 신들이 지키는 이치를 설파할 자가 누구인가. 혈(穴)은 우주의 중심이자 점지한 땅의 가운데이니 사단(四端) 곧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결정체 ‘신(信)’이다. 지극 정성의 섬김을 바탕으로 하는 생명의 본향인 창조주의 보좌이며 땅에서는 ‘황룡’이니 임금의 자리이다.

한 송이 꽃의 암술과 수술, 씨방과 꽃받침과 꽃잎을 떠올린다. 계란의 겉껍질과 속껍질, 흰자와 노른자를 생각한다. 벌과 나비는 수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날라 꽃의 수정을 성사시킨다. 구름이 비를 내리니 여자는 잉태를 기뻐한다. 수탉이 증거 하는 달걀만이 그 속에 씨를 지니고 있다. 만물의 씨는 혈(穴)을 통하여 자궁과 씨방과 알 속에서 잉태된다.

새 차를 구입하여 무당으로 치성을 올리면 무사고가 보장되는가?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면 그 사람의 속이 깨끗해지는가? 하나 같이 참된 의식이 아니다. 새 차의 행로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며 모든 운전자를 내 몸처럼 아끼겠다는 그 좋은 첫사랑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고사이다. 내 속에 가득한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씻어 그 마음을 순결하게 가꾸는 것이 목욕재계의 참뜻이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 손도 쓰레기이듯 사람의 더러운 행실이 땅을 더럽힌다. 땅속의 일은 보이지 않으나 땅 위의 일은 해 아래 적나라하여 숨길 수 없다. 생기를 받아야 하는 대상은 땅속에 묻힌 부조의 유골이 아니다. 그 속에 생기가 없어 죽은 자와 방불한 나 자신의 백골이다. 나의 뼈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그 생기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나는 좌청룡 우백호의 골짜기에 빠져 혈 찾기에 집착하지 않고 주산을 넘어 생기의 발원지 곧 평원에 나아간다. 청룡과 백호의 실체가 연합하여 공수의 예를 갖추는 성스러운 그곳에 귀를 대고 생명을 듣는다. 줄탁동시(啐啄同時)를 그리며 삼칠일을 안는다.

2014. 2. 7.

참고)12운성의 포태법

장생-목욕-관대-건록-제왕-쇠-병-사-묘-절-태-양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을 살아갈 것인바(長生), 훈육을 받고 자라나서(沐浴),

의관을 정제하여 사람의 틀을 갖추어(冠帶), 나아가 벼슬(직장)을 갖게 되고(建祿),

인생의 황금기를 누리다가(帝王),쇠퇴하고 쇠약해져서(衰), 병으로 신음하다가(病),

죽어(死), 땅에 묻히니(墓), 마침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나(絶),

다시 생기를 받아 잉태하게 되고(胎), 어머니의 자궁에서 양육을 받아(養),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장생) 생명의 순환을 이루니 불교의 윤회론과 상통한다고 봄.

따라서 명당에 묻히고 싶은 것은,

어머니의 자궁에 다시 들어가 부활하기를 염원하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