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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은 초장부터 눈이 자주 내렸다.
쌓인 눈이 얼어 빙판이 된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리고 어제는 거기에 또 눈도 비도 아닌 것이 참하게 내리더니 급기야 많은 건수의 낙상 골절 사고 소식이 전파를 타고 들려왔다.

'밖에 못 나간다 엄마!"
엄포도 권고도 아니게 딸의 목소리는 염려 반 충고 반으로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날씨 탓에 집에 들어 앉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요즘 별로 없는 편이다.  PC 도 전화도 일체 귀와 뇌腦에 해로운 일은 하지 않아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하라는 의시의 지시에 순종? 하느라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 읽는 일에 한정되어 있었다.

앨범을 펼쳐보기도 하고 빽빽히 꽂혀 있는 각종 노트의 기록들을 하나 하나 펼쳐보면서 긴 시간을 소모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른 날에 비할 수 없이 여유롭고 풍성했다.

노트에서  묻어 나오는 옛 기억의 훈향 속에 나는 그리움의 시원을 향해 흘러가는 조각배가 되었다. 아니 조각배의 한 선객이 된 것이다. 그렇게 기분좋게 빠져들어갔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노트 갈피마다 그리움의 편린들이, 그리움의 음성들이  시골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떨기처럼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기록들은 유용하고 가치가 있는 것인가. 글을 쓰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늘 어디서나 기록하는 습성을 들이도록 교육하는 것인가. 나는 짧은 겨울 해가 다 저물도록 퀴퀴할 정도로 오래 삭은 종이 냄새와 더불어 지낼 수 있었다.

그리움의 바다에 떠오르는, 아득한 시절의 내 모습을 반추하면서 노트를 펼쳐보기 이전보다 더 크고 더 아련한 그리움을 품게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에의 그리움? 혹자는 그렇게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낱낱의 그리움들은 우리가 쉽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나 어휘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사무치는 그 무엇인가가 내재되어 나의 무딘 감성을 채찍질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움을 품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고마운 것, 새로운 일의 촉진제도 되는 것, 그리움의 실체는 자아 탐색과 성찰의 기회이기도,  혹은 자아에의 회귀가 아닐런지.
겨울비 내리는 날 촉촉히 그리움을 품고 그리움에 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