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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
  글쓴이 : 강승택 날짜 : 18-07-06 22:23     조회 : 592    
형님


 돌아가시기 몇 해 전, 형님께서는 나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오셨다. 파킨슨병으로 몸은 이미 쇠약해 질대로 쇠약해진 데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손으로 자판 하나하나를 힘겹게 눌러가며 완성한 글이다. 형님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한동안 착잡한 마음에 눈을 떼지 못했다. 아무리 둘도 없는 동생의 생일이라 한들 그 몸으로 굳이 축하의 글이라는 걸 써야 했을까. 형님은 이 글을 보낸 후 꼭 3년 6개월을 더 사시고 국립묘지에 묻히셨다
 
 “내 몸이 이렇지만 않았다면 여동생들과 함께 대전으로 내려가 4남매가 밥이라도 한 끼 했으면 좋겠지만 형편이 그렇질 못하니 미안하고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서두로 편지는 시작된다. ‘4남매’란 형님을 비롯하여 두 분의 누님과 나를 말한다. 형님 말씀처럼 매년 이맘때면 4남매가 생일상을 함께 했다. 그러던 것이 깊어진 형님의 병으로 인하여 올해엔 더는 할 수 없게 되었으니 형님의 마음인들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형님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이즘 들어 부쩍 더해졌는데 거기에 답하듯 형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나의 출생 당시의 상황을 유언처럼 적어 놓으셨다. 

- 너는 만주 봉황성 다포에서 태어나 이듬해 해방을 앞두고 아버지의 선견지명으로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 백토 동에 있는 숙부님 댁에 정착할 수 있었다. 너와 나의 첫 상봉은 내가 열다섯 나이로 신의주 동중 2학년에 재학 중일 때였다. 어머니가 너를 업고 내 앞으로 다가오시더니 “승희야, 이리 와서 네 동생 좀 봐라!”하시며 업은 아이를 앞으로 돌려 안으시며 말씀하신다.
“네 동생이다. 잘 생겼지? 어머니로선 그럴 만도 하셨다. 우리 康 씨 집안은 아들이 귀했다. 아버지 4형제 중 큰 집에 아들 하나, 둘째인 우리 집이 나 하나였다가 네가 태어났으니 자랑스러울 수밖에.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크게 기뻐하셨다. 너는 70년 전 이렇게 귀하게 태어났다. -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7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백토 동 숙부님 댁 마당에 내려선 기분이었다. 무명 치마에 흰 저고리. 머리를 쪽진 30대 후반의 어머니 모습과 유난히 눈망울이 또랑또랑 빛을 발했던 까까머리 형님의 얼굴까지 70여 년 전의 세월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어른거렸다. 
  당시 우리 집은 아버지 직장을 따라 온 가족이 만주로 이주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형님만이 홀로 숙부님 댁에 기거하며 신의주 동중(東中)엘 다녔는데 듣기로는 그 지역 수재들이 모인 곳이라 했다. 그 후 해방을 앞두고 귀국했고 형님은 말로만 듣던 동생의 얼굴을 처음 대면하게 된 것이리라.
 형님과 나는 나이 차가 많다 보니 여느 형제처럼 성장기를 함께 보낸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형님은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이란 울타리를 떠났다. 그해 여름 6.25 전쟁과 이어지는 1.4 후퇴. 형님은 대학교 합격통지서만 받아 쥐고 학교 한 번 가보지 못한 채 군문에 입대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서로의 생사조차 모른 채 형님은 소총 소대장으로 참전했다. 현리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끌려가던 중 아군의 공습으로 탈출, 기적 같은 자유를 찾기까지 돌아보면 형님만큼 기구한 삶을 산 경우도 흔치 않으리라.
 형님은 성격상 군인 체질이 아니었다. 일찍이 문학을 좋아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는 「현대문학」 창간호에서부터 쭉 모은 책들을 상자에 바리바리 쌓아 대전 집으로 가져왔다. 서가에 꽂힌 책들을 나는 틈틈이 읽곤 했는데 내가 문학에 눈을 뜬 계기였다면 아마도 이때였을 것이다. 
 
 나는 형님의 죽음을 서울행 버스 안에서 처음 들었다. 열흘 전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냉면 한 그릇을 너끈히 해치우실 만큼 상태가 좋았던 형님이었다. 그랬던 형님의 병세가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는 조카의 말을 듣고 병문안을 나선 길이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조카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아버지, 조금 전 돌아가셨습니다.” 앞뒤 정황설명 없이 끝을 맺는 짧은 한마디에 나 역시 가타부타 질문 없이 통화는 끝이 났다. 워낙 큰 충격 앞에서는 놀라움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지 담담했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될 것처럼 여겨지던 일이 너무도 쉽게 벌어지고 보니 마음은 오히려 차분했다. 모든 것은 정해진 순서대로 굴러가는 것을 괜히 애글타글 했던가 하는 허무함도 함께 밀려왔다.
  나의 발길은 급히 방향을 틀어 삼육병원 영안실을 향했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촛대 사이로 내려다보는 형님의 영정 앞에 서니 새삼 인생이 허망했다. 형님 자신도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집이 협소하다고 큰 집으로 늘려 가자고 했던 형님이었다. 
 
 
 오늘은 그동안 미루어왔던 형님의 여행용 가방 속 옷들을 동네 재활용 통속에 넣었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 우리 집에 잠시 맡겨놓은 물건이었다. 겨울용 잠바 두 어가지와 등산용 지팡이가 전부였으나 생전의 형님을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칠 않았다. 그리고 문득 내년 나의 생일 아침을 그려본다. 만주 봉황성과 다포 이야기도, 진한 평안도 억양의 형님 목소리도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 나 역시 어찌 예외일 수 있으랴.

이방주   18-07-06 23:34
형제간의 사별이 아픔이란 것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 많은 역경을 함께하신 형제의 간의 이별이 참 많이 아프셨겠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강승택   18-07-08 18:44
감사합니다. 이방주 선생님. 기쁠때나 슬플때나 정신적 지주로 의지할 수 있던 대상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무엇보다 큽니다.
임재문   18-07-07 02:21
파란만장한 인생사의 단면입니다.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시대가 아니였겠습니까? 제 아버지께서도 만주에서 사시다가 해방되어 고향인 해남에 사셨지요. 해란강을 노래하시던 아버지 생각이 부쩍 납니다. 강승택 선생님 !
     
강승택   18-07-08 18:46
일제시대 만주에 사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당시 건너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조선족의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감사합니다.
임병식   18-07-07 17:42
저도 형님과의 사별의 아픔을 겪었지만 어찌 혈육기간에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비통하고 절절하게 전해오는 마음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저도 형님과는 13년 차이인데 강선생님도 그러하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선생님도 더워지는 여름철 건강 유의하기기 바랍니다.
강승택   18-07-08 18:50
임병식 선생님,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누구나 한번 겪게되는 형제간의 이별이지만 막상 당하고보니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임선생님도 건강한 여름 나시기 바랍니다.
김용순   18-07-10 08:30
형님 상을 당하셨군요.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강선생님이 태어나신 봉황은 압록강 변인 단동과는 불과 몇 십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봉황산이라는 산세가 빼어난 산이 있고요,  산위에는 고구려 봉황산성이 있습니다. 좋은 고장입니다.
     
강승택   18-07-10 17:31
그러지 않아도 제가 태어난 봉황성이라는 곳이 궁금했습니다. 중국 전문가인 김선생님으로부터 좋은 고장이라니 듣기 좋습니다. 형님께선 작년 10월 돌아가셨지요. 감사합니다.
일만성철용   18-07-10 14:05
강작가의 글을 보니 송강 정철의 訓民歌가 생각 나네요.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저 봐라
뉘손데 테어났길레 양자조차 같으신가.
한 젖 먹고 길러나서 흘깃흘깃 마로리

[
강승택   18-07-10 17:35
송강의 훈민가를  떠올리셨다니 역시 일만 선생님 다우십니다. 형제는 한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니 하나일 수 밖에요.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지주가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윤행원   18-07-11 11:33
강승택 선생님의 애틋한 兄弟友愛를 봅니다.
內面에 흐르는 여러 생각을 산뜻하게 表出해 내는 筆力이 부럽습니다.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강승택   18-07-11 22:06
윤 선생님,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따뜻한 격려의 말씀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씨가 많이 무덥습니다. 건강에 유념하시고 활기찬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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