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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감은 노인들
  글쓴이 : 정진철 날짜 : 18-11-03 17:29     조회 : 622    

함께한 세월이 오랜 사람들은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짐작한다. 부부가 그렇고 친구가 그렇다. 공자의 논어 위정 편에 보면 사람이 오십 살에 이르면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이요 육십 살이 되면 귀가 순리대로 들리는 이순이라고 한다. 그 정도 살면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아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한다는 뜻이다.

하물며 칠십 살이 되고 팔십 살이 되면 눈빛도 필요 없는 혜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보지 않고 만지지 않아도 무엇인지 아는 슬기로움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벽면 수도 하는 고승들이 세상 이치를 훤히 꿰뚫고 있는 것과 같다. 눈을 감고 있어도 밤이 낮과 같고 세상을 전부 쳐다볼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지하철을 탔다. 평상시에는 경로석을 피하는데 몸이 피곤한데다가 마침 경로석에 노인이 혼자 앉아 있어서 염치불구하고 한 쪽으로 앉았다. 두 정거장쯤 갔을 때 건강하게 보이는 다른 노인이 같이 앉게 되었다. 뒤에 탄 노인이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옆에 앉아 있는 노인을 쳐다본다. 두 노인 옆에 앉아 있는 게 불편하기도 하여 일반석 쪽에 혹시 빈자리가 있는가 보았더니 서있는 사람들도 빽빽하여 혼잡했다. 좀 난감했지만 일어나기가 싫었다이럴 때 좋은 방법은 그냥 눈을 감고 잠자는 척하는 것이다.

또 다른 노인이 오기 전까지는 그대로 앉아서 가고 싶었다. 정적이 흐르는 것이 좀 불안한 기분이었는데 방금 앉은 노인이 옆 노인에게 말을 건넨다.

올해 어떻게 되셨수? ”

. 나요여든 아홉이요.”

그 말에 나도 놀라 슬쩍 눈을 뜨고 아버지 세대인 노인을 쳐다보았다. 얼굴의 주름이나 백발 모습이 충분히 그 나이는 되어 보였다말을 건넨 노인을 보니 그 노인보다는 한참 어려 보여서 좀 무안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나보다 두 살 아래구먼하는 것이다아니 그럼 말을 건넨 노인이 아흔 한 살이 된다는 것 아닌가. 다시 쳐다보니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를 않았다. 여든 아홉인 노인도 자기보다 두 살 위라고 해서인지 힐끗 쳐다본다. 다시 눈을 감고 두 노인이 어떤 대화를 이어갈지 궁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먼저 여든 아홉 노인이 설마 거짓말 아니요?” 하면서 물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아흔 한살된 노인이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렇게 젊게 보이느냐고 의심하는 것 아니요 라든지, 나보다도 젊은데 무슨 고생을 해서 그렇게 늙었수 한다든지, 아니면 지금은 무엇을 하며 소일하고 있느냐 든지, 일단 말을 건넸으니 무슨 말이든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아무 말이 없는 것이다. 귀 기울이고 있는 내가 더 궁금해서 초조한 심정이 되었다. 지금 어디 사시오 아니면 자식은 몇이나 두셨수 하든지, 자기가 먼저 말을 꺼냈으면 다음 말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기껏 나이 한번 물어 보고 나보다 두 살 아래라고 해놓고는 어린사람하고 말을 섞기가 싫어서 그런다는 것인지 왜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있는가 말이다.

이제나 저제나 두 노인 중에 아무한테서라도 무슨 말이 나올 법도 한데 한 정거장 한 정거장씩 지나가는데도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되어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두 노인을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두 노인이 똑 같이 눈을 감고 있었다. 두 노인은 최소한 겉으로는 나처럼 궁금하지는 않는 듯 보였다. 오히려 이봐 젊은이 무엇을 알고 싶어서 그리 성급해? ’ 하면서 나무라는 것 같았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은 매일 공치다가 85일째 되던 날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바다로 나가서 결국에는 큰 고기를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의 습격을 받아 뼈만 가지고 항구로 돌아온다. 노인은 피로에 지쳐 잠에 빠져든다. 거친 파도와 상어 떼와 싸우는 장면은 인간이 걸어가는 험난한 인생 역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노인의 마음속에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빛이 있었다. 그리고 희망이 있었기에 기아와 피로, 눈이 보이지 않는 극한 상황을 버텨내어 뼈라도 가지고 올 수 있는 슬기와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노인은 용기와 도전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세상사는 이치를 자연으로부터 깨우치고 비로소 깊은 잠에 빠져들어 휴식을 즐기며 평온해진 것이다. 여기에 무슨 군더더기 같은 말이 필요 있겠는가.

문득 두 노인도 그 나이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굳이 말을 나누거나 보지 않더라도 서로가 상통하는 경지에 올라있을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머리속으로 모든 경험과 역량을 동원하여 치열하게 서로가 상대방을 헤아려보고 대화 하고 있는 중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 대화 내용을 엿듣고 참견할 수 있는 노인이 되려면 한참 연륜을 쌓아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재문   18-11-04 00:52
모처럼 지하철 풍경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지하철은 스마트폰 시대를 실감하게 합니다. 어쩌다가 성경을 보는 사람 또 책을 보는 사람도 가끔 눈에 띌 정도니까요. 오죽하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아 지하철 광고 효과가 없어서 지하철 광고란이 비어있는 곳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도 칠순이라서 노약자 좌석만을 찾는데, 때로는 젊은 사람이 앉아서 눈감고 있으면 좀 얄밉게 보일 때도 더러 있습니다. 하기는 지하철 공짜고 타고다니는데, 좌석까지 탐하는것이 좀 미안스럽기는 합니다. 어떻든 지하철 타듯이 그렇게 세월이 아주아주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다음 정거장이 어디가 될지요. 감사합니다. 정진철 선생님 !
     
정진철   18-11-05 12:24
임재문선생님 건강하시지요?  정말 오랜만에 지상으로나마 뵙습니다.
임선생님도 지하철을 애용하시지요? 요즘은 경로석이 만원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반석에 가서 앉았는데 그곳에도 노인들이 만원입니다. 젊은이들은 직장에 있고 노인들은 특별히 갈곳이 없어서 지하철로 몰려 들기도 하는데 그래서 이제는 일반석에 앉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정말 어디로 갈까요? ㅎㅎ
임병식   18-11-04 06:23
오랜만에 작품으로 근황을 접합니다. 지하철 경로석 풍경이 흥미롭고 시선을 붙잡습니다.
남에게 나이를 물으려면 적어도 90정도는 돼야 하겠군요.
따라서 마음놓고 경로석에 않으려면 그 정도의 나이는 돼야 할것 같습니다. 70언저리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언감생심, 탐해서는 안되겠네요.
참고를 햐야햘 것 같습니다.  인생경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 잘 읽었습니다.
     
정진철   18-11-05 12:31
존경하는 임병식 회장님의 깊은 사유와 해박한 작품들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노인들 모습을 보면서 소통과 감동의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백세를 바라보는 분들의 경륜을 느끼고 감동받으려면  저 또한 얼마나 더 살아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뜻깊게 한해를 마무리 하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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