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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도(大靑島) 이야기
  글쓴이 : 일만성철용 날짜 : 18-06-19 11:38     조회 : 906    
대청도(大靑島) 이야기


인천에서 백령도(白翎島) 가는 길에 들리는 섬이 둘 있다. 서해5도 하나 하나인 소청도(小靑島)와 대청도(大靑島)다. 서해5도란 북방 한계선(NLL, the Northern Limit Line)에 접하여 있는 백령도(白翎島), 대청도(大靑島), 소청도(小靑島), 연평도(延坪島}, 우도(牛島)로 행적구역상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포함되어 있는 섬들를 말한다.  혹자는 '우도' 대신 '소연평도'를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번 여행에서 백령도(白翎島)에 들렸다가 대청도(大靑島)를 둘러 볼 계획인데 첫날은 유난히 쾌청한 날씨여서 신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바다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대청도를 향하려는데 다음날에는 아침부터 궂은 비가 앞길을 막았지만 강행하기로 하였다.

 옛날 대청도는 유배지였다. '동국여지승람'에 고려 충숙왕 5년(1318년)과 충숙왕 17년에 원(元)의 발라태자와 도우첩목아를 고려 대청도에 귀양 보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 충렬왕 때였다. 원나라 태자 신황이 계모의 모함으로 태자의 근친 백여호를 대리고 대청도에 와 대궐을 짓고 생활하면서 대궐 앞 우뚝 솟은 산을 삼각산이라 칭하였다.' 
 대청도는 인구 1,345명(2018년)의 주민이 784 세대를 이루고 살고 있는 곳으로 거기에 해병대가 약 1,000명으로 도합 2천여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대청도는 백령도의 1/3에 해당하는 15,56㎢의 면적에, 해안선 길이 26km의 섬으로, 북동에서 남서 쪽을 길게 누워 자리잡고 있다. 비교적 산악지대가 많아서 농경지가 부족하여 약 20%가 농사를 짓고 80%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은 삼각산(三角山,343m)이다. 

대청도는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202km 떨어져 북한과 북방한계선(NLL)으로 마주하고 있어 북과 충돌이 잦은 국가보안상 전략적 요충지다. 

다음은 대청도(大靑島)란 명칭의 유래담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조선 명종 때 국모 윤씨의 신병으로 전국팔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뽕나무에 맺혀진 상기향을 구하도록 명했다.  전국에서 이를 구하던 중 이곳 암도(岩島)까지 입도하여 내동에서 그 상기향(桑奇香)을 구해 국모 윤씨의 병이 완쾌되었다. 이에 어 암도(岩島)를 그냥 방치할 수 없다하여 왕관자 1조, 각찌 1를  하사 하였으며 돌만 있는 암도(岩島)가 아니고 수목이 무성한 큰 섬이라 하여 대청도(大靑島)라 칭했다.

 대청도  용기포항[선진포동]에 도착하니 예약한 민박 주인 여자가 차를 갖고 나와서 반가이 우리를 맞는다.

나는 우리 일행과 떨어져서 혼자 대청도를 답사하기 위해서 오면서 걱정이 많았다.

대청도 교통편으로는 농어촌 공영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1일 8회 운영하고 있었고 개인택시는 단 1대만 운행[(032) 836-1359]하고 있어서 버스만으로는 1박 2일 관광으로는 한계가 있고, 단 1대뿐이라는 택시(중형)를 이용하려면 5~6만원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내 차례가 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여행사의 배려로 백령도에서 3명의 50대 부인들과 대청도를 동행하기로 하고 숙소로 1박에 4만원, 식사 7,000원씩에다 기름값 정도로 섬 일주를 시켜 준다는 '연실 팬션(민박)(032-836-0054, 0048)'에 예약을 하고 온 것이다. 

차는 연실팬션이 있다는 '동내동'의 반대쪽을 향한다. 우회(迂廻)하는 길이지만 팬션 가는 길에 우리를 대청도의 관광명소를 구경시켜 주기 위한 고마운 배려로 따로 수고비 등을 받지를 않았였다.

그 관광 초입에 세 어부가 힘을 합쳐 그물질하는 '어부상(漁夫像)' 조각이 있다.

대청도는 농경지가 척박하여 주민들은 풍요로운 삶을 위해 주로 어업에 종사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어부(漁夫)들이 서로서로 힘을 모아 힘차게 노력하는 염원을 표상한 조각이었다.

잠깐. 어부를 한자로 '漁夫'나 '漁父'로 쓰던데 어떻게 다른가.'漁夫'는 직업으로 고기를 잡는 사람이고, '漁父'는 취미로 고기를 잡는 사람이니 혼동하지 말 일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해넘이 전망대' 였다. 이후는 영실패션 주인이 안내한 대청도관광 명소들이다.

*. 해넘이 전망대: 

 전망대 좌측으로 갯바위 낚시터로 유명한 삼각형의 '독바위'가 멀리 보이고,

우측에는 서해의 '서풍받이'가 보인다. 여기도 갯바위 낚시꾼들의 고기잡이 포인트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서풍받이'는 서해의 파도를 거대한 절벽으로 막고 있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이 역시 낚시꾼이 그리는 꾼들의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 모두가 해넘이 낙조에서는 아름다움을 꾸며주는 풍경의 하나 하나들이다.


*. 모래 울동의 '광난두 정자각'

 옛날부터 온 마을이 바닷가에서 바람에 날려온 모래로 뒤덮여서 마을 전체의 풍경이 마치 모래밭 같다 하여 '모래울' 또는 한자어로 '사탄동(沙灘洞)'으로 불리다가 '모래울'이라 칭하게 된 마을이다.
 대청도를 한 마디로 '해변의 섬'이라고도 한다.
해변가 따라 서쪽으로 황금동해안, 독바위해변, 광난두해변, 모래울해변, 지두리해변, 미아동해변, 농여해변, 오죽동해변 대진동해변 등이 그렇다.
해변(海邊)이란 무엇인가. 바닷가란 말이다. 대청도의 바닷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두고 한 말 같다.
그 해변을 굽어보는 이 섬에서 제일 높다는 삼각산(三角山, 343m) 정상과 삼각산정자각, 광난두정자각 매바위전망 등의 정자와 모래사막이 대청도 관광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해변에 맑고 푸른 바다가 파도를 이루어 섬을 두드리는 곳이 대청도다. 백령도가 전국 제1위의 미세먼지가 적은 청정지역이듯이 대청도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다도해의 섬과는 달리 딸린 섬이 소청도(小靑島) 외에는 거의 없는데 광난두해변의 바다에는 섬 두 개가 외로이 떠 있다. 대갑도, 소갑도로 신비의 섬 대청도에 있는 신비의 부속 섬들이다.
*. 매바위 전망대:
'매바위 전망대'는 전망(展望)보다 더 멋있는 구조물인 매[鷹]를 만나 볼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 매바위의 유래를 다음 같이 말하고 있다.

매바위의 전망대에 올라 경관을 바라보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형상을 닮은 매바위가 보입니다. 옛날부터 대청도는 송골매의 일종인 해동청(海東靑)의 채집지였다고 합니다. 대청도 서내동(대청1리)에는 '매막골'이란 지명이 남아 있어, 예로부터 매를 기르고 훈련시키는 매막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 귀족층에서는 매사냥이 성행하였는데 고려 충렬왕은 매 사육 및 매 사냥을 담당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을 두기까지 하였답니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보아도 매가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를 찾아 볼 수가 없으니,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산천이 의구(依舊)하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어는 호사가(好事家)가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지어낸 이야기인가.

*. 농여 해변 트레킹;

우리를 안내하는 팬션 주인은 관광지에서 안내하는 안내원처럼 재촉하지 않고 넉넉한 시간을 주고 보채는 일 없이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주곤 했다.

자기는 농여해변 끝나는 곳에서 기다릴 테니 미아동해변에서 농여해변까지 한 30여분 트레킹을 하도록 시간을 주기도 하였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거기는 대청도 여행의 하이라티트라 할 수 있는 명소였다.

썰물이 되면 200m 가량의 해안인 미아동해변과 농여해변이 쌍둥이처럼 하나의 모래사장으로 연결되어 '원 풀러스 원 해변'이 되어 파도를 옆에 두고도 갈 수 있지만 발자국 따라 막힌 듯이 열리는 육지 모랫길이 더욱 운치가 있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풍파에 깎이고 깎인 바위들은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는 나이테 모양으로 연륜을 가진 규석(硅石)의 바위들이었다.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먼저 간 분들의 모래 위 발자국을 따라 가는 것이 눈길에 눈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가듯이 재미가 쏠쏠하다. 썰물 때라서 움푹한 곳에는 바닷물이 연못처럼 고여 있어 가족과 함께 온 이들의 물놀이터도 좋을 것 같다.












해안이 보이는 언덕에 경고판이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이곳은 지뢰밭이거나 군부대 등의 출입급지의 경고판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자촉아 북한 땅이라서 바다를 이용하여 탈북하여 귀순하는 북한 동포에게 환영과 안내를 알리는 표지로 경고판 밑에 벨 보단이 있었다.

 '농어바위'가 길을 막아서 잠시 헤메기도 했지만 거기도 발자국을 따라 가다보니 오른 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다. 거기를 넘으니 거기가 농여해변 같다. 농여해변이란 말은 농어가 잡히는 낚시 포인트라서 농어해변이이라 하던 것이 농여해변은로 바뀐 것 같다.











*. 옥죽동(玉竹洞) 모래사막

젊어서 나는 사막(沙漠)을 두 군데 가봤다.
아프리의 리비아사막(동사하라 사막)과 중국 신강성(新疆省)의 위그르서부터 돈황(敦煌)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 상의 타크라마카 사막 등인데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이 리비아사막에서 지샌 별이 쏟아지는 듯한 하룻밤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사막이 대청도에 '한국의 하라라 사막' 이란 이름으로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길이약 1.6km, 폭 600m로 해발 40m의 '옥죽동 사구(沙丘)'로 오랜 세월 모래가 바람에 날려 이동하면서 이루어졌다는 사구(沙丘)다.
이 사막은 계절마다 형태가 변하는 활동성 사구라 한다. 거기 운치 있게도 사막의 배라고 할 수 있는 낙타 네 마리가 우리를 맞고 있는데 낙타는 단봉, 쌍봉의 모형 낙타였다.
*. 최고봉 삼각산(343m) 등반
  백령도에선 그렇게 좋던 날씨가 대청도에선 흐린 날씨로 몇 m 밖이 보이지 않아서 산에 올라가도 전망이 전혀 없을 것 같아서 망설였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대청도에선 제일 높다는 삼각산(三角山, 343m)을 오르기로 하였는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80 고개를 넘고 보니 작년의 내가 아니다.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을 한 겨울 단독 등반하던 내가 아니다. 백두산까지 종주한 내가 아닌가. 다행히 함께 간 세 부인들이 나물을 뜯으며 올라가는데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길은 군부대가 차도로 만든 길이라서 완만한 오름 길이지만 산행 내내 굽어보는 전망이 전혀 없는 등산길이라  더욱 힘든 것 같다. 이 길을 대청면에서는 '성공로드', '등산 사랑로드'로 조성 하여 놓았는데 양쪽으로는 잡목의 수풀만이 무성한 길이었다.
그런데 함께 간 여인들이 길가에서 무얼 열심히 따 먹고 있다.
앞서 대청도 이름 유래담에서 말한 '상기향(桑奇香)'이 뽕나무와 연관된 말이더니 이와 관계 있는 뽕나무 오디였다.

바다가 굽어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나타나는 8각정 정자에 앞서 간 두 여인이 앉아 있다. 정자 이름은 '충전소'라는데 '氣(기)'를 충전한다는 뜻인 것 같다.

예상하던 대로 굽어보는 마을과 바다가 희미한데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300m만 가면 되는 모양인데  정상까지 길게 멋진 층계가 올라가고 있다. 태산을 오르던 그런 끝없는 층계였다.
앞서간 여인이 부르기에 달려 가 보니 그건 층계가 아니라 군 부대가 일용할 양식과 물품을 정상까지 실어나르는 삭도(索道)였다.
 그런데. 이정표로 보면 삼각산 정상 가는 길이 틀림없이 좌측으로 가는 길인데 그 길은 풀이 무성한 것이 도저히 정상 가는 길이라고 볼 수 없어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보다 정상에 가야 굽어보는 전망이 거시기 머시기 할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는 요란한 강풍 소리와 호의 주의보에 집에 갈 배가 떠나 안 떠나나가 큰 걱정을 하면서 어제 삼각산에 오른 것이 정말 잘 한 것이로구나 하며 안도하였다.
  속절없이 섬에 묶여 있어야 하면 어쩌나 주인의 말은 요즈음 고속훼리는 시설이 좋아 태풍경보나 안개 낀 날만 아니면 출항한다 하여 안심했지만 섬에 와서 황금 같은 시간을 펜션에 있을 수 없는 역마살이 1만보 이상을  부두까지 걷게 하였다.

부두에는 음식점 하나 없어서 부둣가에 있는 대청종합운동장부터 시작되는 멋진 답동해안 산책로를 빤히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서 긴 시간을 부두의 의자 신세를 지다 왔지만 민박에서 3만원에 구입해준 싱싱한 홍어("홍어, 우럭 판매 김연순 , 010-3296-0109)가 귀가 길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여 준다.
생각 같아서는 대청도  남쪽에 소청도(小靑島)에 들려서 1908년 팔미도 다음으로 한국에서 2번째 불을 밝혔다는 등대도 보고, 섬 동쪽의 분칠을 한 듯 하얗게 띠를 두른 듯해서 '월띠'라고도 불리는 하얀 대리석 '분바위'도 보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서둘러 대청도를 떠난다.


                                                                    2018. 6. 13~14.













































임재문   18-06-20 01:08
자세하게 정말 자세하게 사진까지 함께 올려주셔서 마치 일만 성철용 선생님과 함께 여행을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더운 초여름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니 여행도 다니시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더욱더 건강하셔서 더 좋은 곳 아름다운 곳으로 즐거운 여행 즐기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일만 성철용 선생님 !
임병식   18-06-20 05:33
일만선생님의 국토답사기야 말로 김정호선생의 발거름에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일하게 노익장을 과시하시는 것도 대단 하지만 특히 국토사랑이 지극하셔서 발로 뛰어
얽어 보여주는 정열은 글을 쓰는 이의 자세에 크나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소대청도는 늘 가보고 싶은 도서인데 선생님의 글을 대하니 더욱 가보고 싶어집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하며 무더워지는 여름철에 건강 잘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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