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사색의 계절이고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노인들의 외로운 계절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노인들의 수가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 사회로 가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도 출근시간에는 단연 젊은이들이 많은데 낮 시간에는 대부분 승객이 노년층인 것 같다. 65세 부터는 무임승차권을 주는 복지 혜택 때문이기도 하다.

 지하철 문이 열렸다. 남녀 노인들이 여러 명 들어와서 젊은이들이 앉아있는 좌석 앞에 서있다. 예전 같으면 젊은이들이 벌떡 일어나면서 자리를 양보할 텐데 못 본체하고 스마트폰만 쳐다보고들 있다. 노인이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에게 자리를 양보하려면 모두 일어서야할 형편이다. 옆에서 아무도 일어설 기미가 없으니 못 본체하는 것 같기도 하다. 노인 몇 명이 우리 좌석으로 가자고 하면서 경로석 쪽으로 간다. 그 곳도 이미 앉을 좌석이 없지만 젊은이들이 대접을 안 해주니 그냥 서있는 것이 어색한 모양이다. 언제인가부터 노인들은 서 있더라도 우리 좌석 쪽으로 가서 서 있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젊은이들이 당연히 자리를 양보하든 세월은 지나가버렸으므로 젊은이와 노인 간에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어색하게 된 것이다.

 경로사상이 가을 낙엽 떨어지듯이 고루해져가는 세상이다. 물건도 얼마 되지 않아야 희귀성이 있어서 귀중품이 되는 것처럼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그 숫자가 웬만해야 경로우대를 받는 것이지 요즘같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무슨 대접을 기대하겠는가. 노인이 되면 뒷방으로 물러나서 선문답이나 하는 시대 같으면 당연히 어른 대접을 하고 또 공경의 대상이겠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면서 옆의 학생에게 물어 봤다. 노인들이 지하철에 서있는 것을 보면 자리를 양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했다. 약간 갈등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양보하지 않는다고 해도 별로 미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학교 주변 음식점 같은 곳에서 써빙하는 노인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한다. 일일이 노인들에게 미안한 부담을 갖는다면 그런 업소에도 갈 수가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노인들도 생계를 위해서라기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니 노인도 특별히 대접해 드릴 대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도 아직은 과도기인 것 같다. 노인이 어떠한 단순 노동에 종사하든 그 자세를 존중해주는 아량이 부족한 것 같다.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갖추어진다면 노인들이 단순노동자 생활에 그치겠는가. 겉모습은 시들은 낙엽일지라도 새싹을 틔우는 기름진 밑거름인 것을 보지 못한다. 나라 경제도 윤택해지고 복지 정책도 잘 만들어져서 연금도 충분히 받고 생활한다면 어른답게 초연히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나 결코 짧지 않은 남은 인생을 살아가려면 당장에는 써빙 취업도 해야 되고 젊은이들과 생활전선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노인이 공경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 상대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근력이 어느 정도 따라 주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경쟁의 대열에 끼어들기를 포기한 많은 노인들은 돈이 안 드는 등산을 한다든지 경춘선 같은 수도권 전철을 타고 시간을 보내며 줄을 이어 다닌다. 공원에서 무료급식을 먹으며 배회하기도 하고 노인들에게 할인해주는 영화관을 찾기도 한다. 이성도 사귀고 풍류도 즐기려면 콜라텍을 찾기도 한다. 쓸 돈도 넉넉지 않고 시간을 때우는 정도의 이런 소일거리 이외에는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별로 없다. 현재의 풍요를 이루는데 노년들의 땀이 밑거름이 되었지만 그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노년층에 대한 복지정책이 궤도에 오르지를 못해서 더 이상의 혜택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벌써부터 뒹구는 낙엽이 초로의 노인들을 보는 것 같다. 노인은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