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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14-08-24 20:49
조회 :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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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의 싸가지
박 영 보
촌티. 조국을 방문할 때마다 겪게 되는 나의 어수룩함. 이로 인하여 형제 자매에게 항상 조바심을 안겨주기가 일쑤인 나의 실제 모습이기도 하다. 초행길이었다면 한 가닥 변명의 여지라도 있었겠지만 매번 반복되는 나의 실수에 더 이상의 기대를 할 수가 없겠다는 판단이 서있는 것 같다. 내가 집을 나가게 되면 마치 객관식 문제의 해답을 원하듯 질문을 해대신다.
마을 버스의 번호, 전철은 몇 호선, 행선지, 갈아타기 등에 대하여 물으신다. 집에 돌아오는 순서와 방법까지도 문답 형식으로 최종 확인을 해야만 마음이 놓이는가 보다. 나는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메모지에 적어가며 버스나 전철 안에서도 시험공부를 하듯 암기를 해둬야만 나 자신도 마음이 놓인다. 팔 십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형님이 칠십을 넘긴 유치원생을 밖에 내보낼 때의 걱정 때문이리라. 이런 형님이나 동생의 모습, 제법 귀여운 광경이 않겠는가.
길눈이 유난히 어두워 항상 헤매야 하는 나는 형님을 안심시키게 해 드리기 위해 수시로 전화 연락을 드려야 한다. 전철은 제대로 탔으며 갈아타기, 목적지에 도착, 되돌아 올 때도 수시로 보고를 하듯 연락을 드리게 된다. 무사히 돌아와서는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잘 다녀 왔습니다”라며 뻐기고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웃기는 이야기 같지만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 아니겠는가.
머리 색깔이 좀 하얗다는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얼굴은 아직도 팽팽한데~. 전철 안에서 가끔 겪게 되는 일이다. 한가한 시간, 승객이 별로 많지 않아 빈 자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출입구 근처에 서게 된다. 의자 가까이에 다가가 서면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일들 때문이다. 중고등 학생 정도의 젊은이들이 일어선다면 고맙다며 못이기는 체 앉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것마저도 거북하다. 삼 십대 중반이나 그 이상으로 보이는 분들이 자리양보를 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다 보고 있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속으로는 ‘내가 벌써 자리 양보를 받을 만큼 늙은이가 돼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라는 말. 고맙기도 하지만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친절에는 알밤이라도 먹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도 이러한 아름다움이 간직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을 해본다. 고마운 일이다. 형님 댁에 머물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문이 열려 이웃들이 타거나 내릴 때도 그냥 드나드는 것이 아니다. 꼭 인사가 따르는 광경들. 가뭄에 찌들어 마음까지도 메말라 있는 상황에서 청량음료를 마시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게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따뜻한 고향의 온기가 느껴진다.
몇 달 전 우리 부부가 일주일간의 계획으로 두 아들과 함께 뉴욕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뉴욕 양키스와 로스앤젤레스의 엔젤스 팀과의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전철을 타게 되었다. 개막시간이 가까워진 시간의 전철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럴 때 삼 십대쯤으로 보이는 백인 커플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호텔에 돌아올 때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똑 같은 양보를 받게 되었다. 갈 때나 올 때 습관처럼 “괜찮다. 고맙다”라는 말로 사양은 했지만 어깨를 끌어 당기며 앉혀주는 것이었다. 이들이 혹시 국제화,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 한국으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의 모양새를 표절해 간 것은 아닐까.
미국인의 싸가지. 그곳 생활 사십 년이 돼 가는 나와 아내에게는 어느 정도 그곳 생활에 익숙해져 있고 한때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지 오래이지만 또 다른 발견을 하게 된 것 같았다. 자유 분망하며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한 나라의 젊은이들로만 여겨오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존중하고 존중 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처럼 남을 존중할 줄도 알고 베풀 줄도 아는 사람들. 내가 남으로부터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만큼 남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사상이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에 우리 스스로가 딴지를 거는 이들도 없지 않았겠지만 또다시 움 돋는 아름다운 싹들을 보게 되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배부른 소리 같지만 한가지 아쉬움도 있다. 그냥 꾸벅 하고 고개만 까딱하기만 할게 아니라
“안녕하세요”라거나 “좋은 하루 되세요”라며 생끗 웃으며 한마디씩 해준다면 무더운 한 여름 팥빙수 한 술을 입에 넣는 느낌이 들 것도 같은데. 사실 그런 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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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4-08-24 2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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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청주는 85만이 사는 큰 도시인데도
가끔 서울에 올라가면 저도 온전한 촌놈이 됩니다.
고을마다, 도시마다, 나라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는가 봅니다.
스위스에서 어떤 아가씨에게 길을 물었는데
출근하다가 제가 찾는 곳까지 데려다 주고 생끗 웃도 돌아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 부러웠는데 저는 막상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는 젊은이들에게
다정하게 답례해 주는 배려를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생각만 하는 것도 남을 불편하게 하는 건가 봅니다.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부디 고국에서 더 좋은 일 많이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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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24 2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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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도미 이후 만 8년만에 조국방문길에 들어섰을 때의 어려움. 바쁜 걸음으로 달리다 시피 서둘러 가는 분들께 길을 묻기도 눈치가 보이고 귀찮은듯 하나같이 "몰라요"라는 대답밖에 들을 수가 없어 밖에나갈 때는 버스로선 (번호), 갈아타기, 등을 적어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요즈음도 밖에 나가게 되면 두세번 이상을 물어야 합니다. 그때의 분위기와는 다르더군요. 젊은분들도 그전보다 훨씬 밝아진 얼굴로 대하여 주는 모습들이 아름답습니다. 행복한 여행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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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4-08-29 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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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과 모처럼 갖는 모임 자리에 함께 못해
죄송합니다. 고국에서 또 정겨운 추억 쌓고 계시군요.
형님의 살가운 보살핌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천진하신 칠순의 유치원 동생의 행동에도 웃음이 절로 나네요.
따뜻하고 정겨운 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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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30 2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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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름다운 친구하나 만들었습니다. 대전에서 수원으로 와야 하는데 미리 열차 예약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일정을 미룰 수도 없어 입석표로라도 오기 위해 차에 올랐습니다. 물론 좌석은 없어 승강구쪽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을 때 승강구 한쪽의 예비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친구가 벌떠 일어나 앉으라는 겁니다. 두어번 괜찮다고 사양을 했지만 자기도 괜찮다며 끝내 양보를 하더군요. 연예인처럼 수려한 모습의 청년, 마치 Fan이 Sign을 요청하던 이메일 주소를 받아왔습니다. 방금 감사의 글을 보냈습니다. 왜 이리도 이곳에 눌러있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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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09-07 0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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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것이 미덕인때가 있었지요
그러나 요즘은 전교조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이후 학생들을 잘못 가르쳐서
인성들이 파괴되어 가고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반항적이고 퇴폐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생각지도 못할끔찍한 가혹행위도 저지르고 검사장까지 하는 사람이
각종 변태행위를 하는 병든 사회가 되었지요, 이 풍파가 어느정도 지나간다음
민주주의와 동방예의지국이 자리를 잡혀 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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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9-08 1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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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라는 것이 삼사십년 전의 모습에만 멈춰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요즈음의 변화된 모습이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식 겉모습의 변화에 비하면 우리식의 미덕까지도 완전히 뒤바뀐 것이 아니라는 점, 변화 속에서도 그때 그시절의 미덕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이 발견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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