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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14-08-16 07:03
조회 :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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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 앞에서
“Mr. Park, come to the room 217 please.” (미스터 박, 217호 병실로 와주세요)
새벽 두 시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이번은 또 어떤 환자가 고통을 받고 있는 걸까. 구내 방송으로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병동이 아닌 다른 병동에서 나를 부를 때는 대개 남자 요원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때이다. 이를 테면 체중이 나가는 환자들을 다른 침대로 옮기거나 배뇨를 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인위적으로 튜브를 꽂아 배뇨를 하게 하는 작업 같은 일, 아니면 소란을 피우는 정신과 병동의 환자를 제압하려면 남자의 힘이 필요할 때도 부름을 받게 된다.
1975년 이곳에 도착한 후 한 달여의 공백 끝에 최저임금 시간당 2불 칠십오 센트로 시작된 이곳에서의 직장생활이었다. 하루 법정 근무시간 8시간 기준으로 한달 수입이 백불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아내는 간호요원으로 나보다는 더 많은 액수를 받게 되지만 한국의 면허를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 한국이나 독일에서처럼 정식 간호원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면허시험(State Board Examination)에 합격을 해야만 RN (Registered Nurse)으로서의 대우를 받게 된다. 이 시험에 합격되고 정식 면허를 받기 전까지는 RN보다는 낮고 일반 보조 간호원(Nurses Aid) 보다는 약간 높은 액수가 되겠지만 우리 세 식구가 살아가자면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았겠는가.
한국정부에서 2명의 성인과 1명의 미성년자에게 허용하는 외환 한도 총액 2,750달러에서 한 달여 동안 허송을 하며 축내고 나니 달랑 오백 달러도 남지 않는 상태였다. 이민 보따리라야 옷가지 몇 개, 간단한고 조그만 생활용품 정도였으니 이브자리나 부엌용품 등 최소한의 생활용품 몇 가지만을 구입하고 남는 돈이 오백 달러가 될까 말까 했었다. 아파트 집세, 아이를 베이비 센터에 보내야 될 때의 육아비용, 식료품, 전기, 개스 등의 유틸리티 비용을 무엇으로 충당할 것인가.
내가 이 병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지 두세 달이 되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정규적으로 근무하는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나면 저녁식사를 끝내자 마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밤 열 한시부터 다음날 아침 일곱 시까지 근무하는 병원에 출근하자면 열 시에는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하루 16시간을 일하는 Two Job (이중 직업?)을 뛰기로 한 것이다. 아침 일곱 시에 일을 끝나고 집에 오면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얼버무리고 한 시간 정도의 잠을 잘 수 있다. 아예 출근 복을 갈아 입고 잠자리에 든다. 눈을 뜨자마자 직장으로 달려가기 위해서이다.
이런 와중에 아내는 풀 타임으로 일을 하면서도 면허시험준비를 위한 공부도 해야 하고 집안일, 아이 돌보는 일로 일분 일초도 허비하지 않고 쫓기고 있는데 나의 열 여섯 시간 Two Job 일이 무엇이 대단하며 어찌 힘들어 하며 쉬운 일 어려운 일 골라가며 따질 수가 있었겠는가.
이 병원에서 내가 하는 일은 한국에서는 보조간호원, 캘리포니아에서는 Nurses Aid 에 해당되는데 그곳에서는 NT (Nursing Technician)라고 불려진다. 8주간의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받은 후에 시작된 일이다. 의사의 지시서에 따른 환자의 혈압, 체온, 맥박 등을 체크하는 바이탈 사인 체크, 환자들의 입원이나 퇴원 등의 일들이 포함되고 근무교대시의 다음 근무 조에게 전하는 리포트, 환자 기록부(Medical Chart)에 환자에 대한 시간 별 상황에 대한 기록을 하는 일들이다.
217호 병실에 가보니 두 개의 침대 중에 첫 번째 침대가 커틴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담당 간호원이 커틴을 여니 하얀 시트로 덮여있는 시신 위에 환자의 이름이 써 있는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지하 영안실에 옮기라는 것이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에. 나 혼자서 바퀴가 달린 스트레처(들것)를 밀고 복도를 거쳐 나갈 때의 느낌이 어떠했을까. 이 시신과 함께 들어가 있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힐 때는 또 어떠했을까.
이층에서 일층, 일층에서 또 지하층, 복도에도, 엘리베이터에도, 지하실에도 어느 누구 하나 없는 새벽시간, 영안실은 엘리베이터에서 복도를 거쳐 제일 끝 쪽의 모퉁이 방에 있었다. 영안실 입구의 천정에 켜져 있는 불빛. 하필이면 왜 붉은 색의 불을 켜 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스트레처의 앞쪽으로 영안실의 더블 스윙 도아 (Swing Door: 들것을 밀고 들어가기 쉽게 밀고 들어가면 저절로 안쪽으로 열리기도 하고 들어가고 나면 저절로 닫히기도 하게 만들어진 두 쪽으로 된 문)를 밀고 영안실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이때 무언가가 나의 엉덩이를 탁 치는 것이었다. 스윙도어의 문이 열렸다가 다시 저절로 닫히는 그 반동으로 나의 배쪽에 밀착돼 있던 스트레처까지 덜컹 튀어 오를듯한 반동이 일어났다. 시신의 몸체까지도 덜컹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어쩌면 내 소리에 나 자신이 더 놀라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영안실을 나올 때는 시신을 바라보며 뒷걸음질을 치며 나왔다. 돌아서서 등이 보이게 나오게 될 때 시신이 벌떡 일어나 나의 등을 움켜쥘 것 만 같아 스윙도어의 문이 닫힐 때가지 같은 자세로 나와야 했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몸의 방향을 바꾸어 뛰듯이 바쁨 걸음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 대신 더 먼 위치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왔다. 엘리베이터에 혼자 갇히게 될 것 같아서였다.
환자들이 사망하는 시간은 대개 새벽 한시, 두 시, 세시. 이런 시간대가 많았다. 내가 근무하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그 후로부터는 그런 일로 두려움을 갖게 되거나 망설여지지도 않았다. 구내 방송으로 나를 부를 때라면 배뇨 돕기나 시신 옮기기, 아니면 남자의 힘이 필요한 일들이다. 간호요원들 중에 시간 배정도 각 병동마다 남자 한 명씩을 두게 되지만 마지막 밤 번에는 전 병동에 한 사람만의 남자를 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 병원에 근무하는 동안에 그 도시의 감옥에 커다란 화재 사건이 있었다. 사십 여명의 수감자들이 질식사를 하게 된 큰 사고였다. 전국의 TV나 언론에서도 다루어 졌고 한국에서도 이 뉴스가 전해졌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헬리콥터, 앰뷸런스, 승용차, 트럭 가릴 것 없이 실려오는 환자, 또 환자. 소방차에서 뿜어 나오는 물과 연기, 검정에 범벅이 된 얼굴들. 이미 숨을 거둔 뒤에 온 사람도 있었지만 아직도 호흡을 하며 눈도 깜박이든 분들이 들것이 싣고 병실로 옮기는 순간에 숨을 멈추는 일, 침대에 눕혀놓고 얼굴과 몸의 검정을 닦아 주고 있는 순간에 스르르 눈을 감는 사람들. 일초, 이 초의 시간이 한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촌각임을 실제로 느껴가며 나 자신이 의아해 지기도 했던 순간이다.
내가 이 정도로 속도감이 있고 물 불 가리지 않고 서슴없이 대들며 판단력이나 집중력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하는 생각. 의사나 전문 간호요원도 아닌 내가 한 생명이 나의 손끝에 달려있다는 책임감과 급박함. 내 움직임의 속도에 따라 한 생명이 되살아 나거나 마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마치 환자들을 한시 빨리 의사 앞으로 데려다 주어야 한다는 앰뷸런스의 역할만이라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는 생각이었을까.
화재로 이미 목숨을 거둔 수감자들, 촌각을 다투는 목숨. 구조를 위해 한마음으로 바삐 움직이던 모습들. 너 나 없이 끄름과 검정으로 범벅이 된 채 자기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던 삼십여 년 전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자니 세월호 사건이 자꾸만 떠오른다. 선체가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동안에 멀뚱히 바라다만 보고 있는 이들의 여유. 마치 그런 식으로 끝장을 내는 장면만을 기다리고 있기나 한 것 같은 광경들이었다. 그런 중에도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이라며 책임을 서로 미루려 하고 있는 모습들 가히 봐줄만한 놀이 마당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후로도 구내 방송으로 나를 부르는 일은 계속 이어져 갔다. 그러나 시신을 옮겨달라는 부탁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시신을 영안실까지 옮기는 일이 싫어서가 아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모습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한달 이상 나의 환자였던 Mr. Cook이 떠오른다. 의료진에서도, 가족들마저도 마음을 정리해야 하겠다는 나이 구십이 넘는 환자였다. 웃는지 우는 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마주치면 누르스름한 이빨을 들어내놓고 손가락으로 까딱 하는 인사로 맞아주던 분이다. 대소변이며, 식사, 목욕까지도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하던 분, 누워만 있으면 등창이 생기게 되므로 하루 몇 시간씩은 시간마다 몸 자세를 바꾸어 줘가며 의자에 앉히기도 해야 한다. 의자에서 넘어질까 봐 침대 시트로 몸을 의자 등받이에 묶어놓기도 한다.
아침 식사시간 역시 의자에 묶여 있는 자세로 식사를 돕는다. 스크램블 에그, 시리얼, 주스, 우유 등 씹는데 어렵지 않은 부드러운 음식들이 제공된다. 한 술 힘들여 삼키고 나면 주스나 우유를 준다. 빨대로 우유를 마시는 힘도 없어 빨려 들어가는가 하면 금방 되 나오기를 반복한다. 물고 있는 게 아니라 빈 빨대만 입에 걸려있다. 그러다가 빨대의 한 부분에 걸려있던 잔여의 우유가 꼬르륵 하고 되 나오는 소리가 나온다. 빨대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침대 시트에 묶인 채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중에 운명을 달리 한 것이다. 곧바로 Nursing Desk에 연락을 하여 동료들과 함께 침대에 눕힌다. 비록 환자와 의료팀간의 만남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한 만남의 시작과 끝이 마감된다는 게 무언가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
인간의 몸뚱이. 생물학적인 목숨이 거두어지면 썩어 없어질 하나의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군에서 누가 사망을 하게 되면 그 시신은 ‘보급반’에서 취급하던 일이 생각난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간에 생물학 적인 생명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동식물이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그 무언가 때문에, 그 무언가를 위해 여느 다른 생명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끔은 “적당히 살아, 죽을 때 가지고 갈 건가”라는 말들을 듣게 될 때가 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가지고 가려는 게 아니라 남겨 두고 가려는 거지”라는 대답이면 어떨까. 무슨 ‘의미부여’라도 해 볼만한 적당한 문구라도 연구해 볼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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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4-08-16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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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저는 한 때 사립고등학교에 근무했는데 이사장의 총애를 받은 제자 교장이 어찌나 못살게 하는지 시집살이도 그런 시집살이가 없었담니다. 수업하고 있으면 교실 뒷문으로 들어와 학생들의 부적절한 행위를 꼬투리 잡고 담당교사는 교장실에 불러 지도를 잘못한다고 호통치고 그런 곤욕이 없어 공립학교에 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독재 교장은 얼마 못살고 간암으로 죽었습니다. 바르게 사는것이 잘살다 가는 것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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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19 2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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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Self Esteem)이 있으면 남을 존중할줄도 아는 법이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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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4-08-16 1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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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긴 글을 끝까지 읽게 한 것은 그냥 한국에 있었으면 편히 사실 분인데- 하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글은 이례적인 체험의 기록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수고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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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19 2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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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산다는 것. 육체적으로 시달리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만이 편하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자기의 뜻을 관철해가며 행동화 할 수만 있다면 나름대로의 보람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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