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망아지 따라가자니
박원명화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이 있다. 서민들이 살기가 어렵다고 아무리 악을 써도 물가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오르기만 한다.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2025년 세계 경제성장(經濟成長)을 주도할 6개 신흥경제국 중 한국을 지목했지만 서민이 느끼는 경제성장은 환상 뿐인 것 같다. 어려워질 때로 어려워진 지갑 사정에 비해 오르는 물가를 감당 할 길이 없으니 말이다.
입만 열면 으레 ‘물가잡기’ 를 다짐한 정부당국. 지나고 보면 역시 속았다는 현장감을 어찌 할 수 없다. 몇 만원 쥐고 장보러 나가봐야 살 것이 없다.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멋대로 날뛴 물건값,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겁부터 난다.
더러 값싼 것을 살펴보면 어김없이 동남아에서 들여오는 수입품들이다. 식품류는 가급적 국산을 선호하는 편인데, 국산이라고 표기된 것을 보면 값이 2배쯤 된다. 어쩌다 싼 물건을 놓고 장사가 국산이라고 해도 의심부터 앞선다. ‘신토불이’를 구한답시고 일부러 시골 장에까지 가서 사가지고 온 것도 결국 수입 산임을 알았을 때의 황당함이란….진짜도 가짜도 믿기 힘든 세상이다.
절약이라는 말도 어찌 보면 돈 있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절약해야 하단 말인가. 허리띠를 졸라 매는 일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곤궁한 형편이다. 정부는 물가부터 잡아주어야 나 같은 서민도 숨통이 트일 것이 아닌가. 서민을 위한 정치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시장에 나가보면 서민을 외면하고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용돈을 더 달라는 아이들, 그건 남편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물가가 다 올랐으니 가족들의 항변을 고집할 수만도 없다. 쥐꼬리만 한 월급봉투에서 차(車)떼고 포(包)떼고 나면 가만히 앉아 감봉을 당한 꼴이 되고 만다. 남편에게 몇 푼의 용돈을 건네줄 적마다 나는 앵무새처럼 되뇐다.
“아껴 쓰세요. 이달도 적자 될까 겁나네요.”
“아~ 이 사람아, 언제는 우리가 흑자 인생이던가!” 말은 그러면서도 남편은 이내 심드렁해진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새 책만 사려하지 말고 선배들에게 부탁해서 헌책사면 안 되니? 우리 때는 다 그렇게 공부했어도 잘만 햇것만......”
받는 입장에서는 기분 좋게 더 주지는 못할망정 잔소리부터 하는 게 달갑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걸 알면서도 입으로는 그런 말을 자꾸 하게 된다.
남자나 여자나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때, 어깨도 펴지고 기운도 나는 법이다. 특히 남자란 친구를 만나거나 동창회 같은 데 나갔을 때, 차도 사고 술도 사는 여유를 누릴 수 있어야 체면이 선다는데…. 남편은 드러내놓고 내게 불만을 토하지는 않지만 표정에서 자조적인 느낌을 본다.
나는 직감한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 이만큼 크게 쫓기지 않는 것은 모두가 알뜰살뜰 절약하며 살아온 덕분이란 것을….
그런데 엉뚱하게 남편의 음성 수입을 묻는 이가 있었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어느 한쪽이 썩어 간다고 모든 공직자가 다 그럴 것으로 여기는 시각을 어떻게 풀 재간이 없다. “그런 재주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하고 씁쓸해질 수밖에. 융통성이라고는 약에 쓸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이다. 다급한 일이 생겨도 어디 가서 돈 몇 푼 빌려보지 못한다. 그저 월급 축내지 않고 갖다 주는 것만으로 황송하다. 달마다 나오는 고정 수입으로 완급을 가려 이것저것 돌려쓰는 습성에 나는 익숙해진 편이다. 아이들도 비슷하게 자라고 있다. 그 불편이 누구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대로 다 잘 이해하고 있어 다행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물가를 따라 이리저리 뛰다보면 턱까지 숨이 찰 때가 많다. 욕망을 채우자고 하면 빚이 늘어날 것이고 그저 형편대로 너나 할 것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서민의 살림을 위해 국가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물가안정이 아닌가.
4대강사업이니, 복지정책이니, 햇볕정책이니 하는 정치공약의 화려한 선심의 빛 잔치가 강 건너 남의 일만 같다. 서민의 피부로 느끼며 살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일까? 바라건데 제발 날뛰는 망아지 고삐를 단단히 쥐어주었으면 싶은 마음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