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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11-09-26 20:20
조회 :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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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과 함께 시작된 나의 전업주부 경력도 어느덧 만 5년을 넘어서고 있다. 방안 청소는 물론 밥 짓고 빨래하고 음식 쓰레기 버리는 일에서부터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날짜에 맞춰 재활용품을 내놓는 일까지 지금은 모두가 나의 몫이다.
퇴직 전까지만 해도 남자가 주방에 들어서는 것을 대단한 금기 사항쯤으로 알았고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물건조차도 일일이 아내와 아이들 신세를 져야만 했던 과거의 자신을 생각한다면 상전벽해나 다름없는 변신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주변머리가 없었으면 방학이 되어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때조차도 제 손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지 못해 외출한 아내와 딸아이의 발걸음을 동동거리게 만들었을까.
이제 대오 각성하여 집안의 허드렛일까지 스스로 떠맡고 나섬은 그만한 저간의 사정이 없지 않았음인데 그 연유가 이러하다.
아내와 나는 나이 차이가 보통 부부와는 달리 9년이나 되었다. 신랑의 나이가 처음부터 께름칙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아내 사랑만큼은 남다를 것이라는 주위의 권유와 본인의 실낱같은 희망이 어우러져 결혼까지는 갔으나 살아가면서 이어지는 철부지 남편의 크고 작은 온갖 뒷바라지에 여자는 한 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남편의 능력 또한 곧바로 바닥을 드러내어 아이들 가르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간파한 아내는 더 이상 미련을 갖기보다는 집안의 모든 일들을 자신이 직접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나갔다.
이를테면 방안의 전등을 갈아 끼운다든지 벽에 못 하나 박는 일처럼 크고 작은 가사 일들이 우리 집에선 모두가 아내의 몫이었다. 그렇다고 매양 내가 손을 놓고만 있던 것은 아니어서 아내가 디디고 서있는 의자를 단단히 붙잡아 준다던지 찾는 용구를 재빨리 올려주는 일처럼 비교적 손쉬운 일은 나도 얼마든지 몸 사리지 않고 동참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난이도의 문제였는데 이러한 입장이 정상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분담에 대해 이제껏 불평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뜻하지 않은 사고도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신혼 초 안방으로 통하는 보일러의 물통이 터졌을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혹독하게 추운 날씨에 호스를 손질하다 아내는 그만 자신의 무릎을 칼로 내리치고 말았다. 그 날이 마침 휴일이어서 아내는 마취주사도 맞지 못한 채 생살을 꿰매야 했는데 그 때의 아픈 기억은 두고두고 아내에게 부담으로 남아있다. 비정한 남편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날 사건의 발단만 하더라도 서로가 능력에 맞는 일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였지 나의 방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30년 이상을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던 아내가 남편의 퇴직을 1년 남기고부터 새삼 입버릇처럼 떠올리는 말이 있었다. 당신도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고.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어서 언제 어떤 상황이 올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라고. 난데없는 아내의 말에 나는 그만 잊고 지내던 상황이 눈앞에 벌어지기라도 한 듯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있을 수도, 있어도 안 되는 만일의 상황을 가정하는 자체가 두려웠지만 대비하는 일마저 소홀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집을 꺾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처음으로 담아내던 날, 아내는 그렇게 흐뭇해 할 수가 없었다. 당신도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그 날 이후 조금씩 활동영역을 넓혀온 것이 이제는 아예 집안 살림을 통째로 떠맡게 되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전업주부 역할이라는 것이 과거에 대한 총체적인 속죄의 의미도 지닌다 할 것인데 이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는 듯하다. 더불어 얻은 소득이라면 아내 귀한 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에 좋다는 각종 건강식을 만들어 아내에게 바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래 살다보니 해가 서쪽에서도 다 뜬다는 얼굴이지만 표정으로 미루어 아내는 분명 요즘 행복의 정점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이 역시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 한 번도 아내에게서 확인 받은 사항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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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1-09-26 2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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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강선생님 요즈음 그렇게 사시는군요. 어떻게하다 그렇게 되었습니까? ㅎㅎㅎ 결국에는 아주 역활 교환을 하셨군요. 9년씩이나 젊고 능력있는 부인하고 사시니까, 그렇게 하셔도 되겠습니다. 그래도 행복해하시니 된 것 아닙니까. 살림 알뜰하게 하시고 주부습진 조심하세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가까운 시일내에 한번 뭉칩시다. 연락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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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09-27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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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습진 말씀하시는 것 보니 김선생님도 경력이 녹록치 않아보이십니다. 어쩝니까. 부부란 때로 필요에 따라 역할교환도 해야하는 것을~ 이 가을 가기전 얼굴 한번 뵙게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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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09-26 2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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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이제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고', 사모님의 그 말 이후 선생님은 정말 대오각성하여 전혀 다른 사람이 되셨군요. 아무나 그리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정말 운이 좋으신 겁니다. 많은 남자들이 옛날의 힘만 믿고 날뛰다가 망신을 당하고, 심지어 집에서 쫓겨난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내의 눈치를 보며 비실비실 집안을 헤매다가, 겨우 밥 한술 얻어먹고 공원으로 거리로 내몰린 자들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선생님은 정말 운이 좋은 겁니다. 더욱 노력하시어 그런 불상사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무사하시기를 빌며 뵈울 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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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09-27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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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생님은 주변에서 쫓겨난 남자들의 경우를 많이 보신듯 합니다. 아무리 그렇기로소니 저같은 힘있는 남자를 그런 경우에 비유하시다니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 것 아닌가요? ㅎㅎ . 이 가을 , 넘치는 낭만이 임선생님과 함께 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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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9-27 1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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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강선생님의 글에서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주부들의 일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서로 마음을 나누며 힘든 일을 나누고 산다고 생각하십시요. 굳이 아내의 눈치가 아닌 사랑의 마음이라 생각하신다면 더 보람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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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09-27 2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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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에 공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진작에 철이 들었더라면 아내의 속을 상하게 하는 일도 없었을텐데 이제와 생각하니 모든 것이 후회뿐입니다. 주신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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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9-28 0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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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참 멋지십니다.
혹시 유학생이나 문하생은 아니 받으시는지요? ㅎㅎ...
앞으로 이런 소재로 글을 쓰시면 많은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월간 <주부편지>에 싣고 싶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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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09-28 2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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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생이라, 당연히 받아야겠지요. 주변에 아직 세상 물정 모르시는 분 계시면 성심 성의껏 교육 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다른 월간지에 소개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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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1-10-01 0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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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면서 아내는 이런 글을 읽지 말아 주었으면 하였습니다.
쇼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여보 밥!' 하는 소리에 일어나면서 요즈음은 잠깐이나마 미안해 하던 참이니요. 그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도 행복한 줄 알아, 아침 저녁해 주고 수영장이다, 동창회다, 요가다 아무런 걱정없이 온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 말이오."
점심은 사 먹거나 해 주고 간 것을 차려 먹으면서 늘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그래, 우리 부부는 지금 이별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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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10-02 1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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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선생님, 자수하여 광명 찾으시지요? 지금의 행복이 결국은 모든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 생각하면 빚을 갚는 차원에서도 한번쯤 시도해 보심이 어떠하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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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1-10-02 0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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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공감가는 글입니다.
우리 곁지기 좀 읽으라고 사정을 해도
손사례를 칩니다. ㅎ
다른 글은 잘 읽으면서요.
끝까지 받기만 하겠다는 심보 아닌가요?ㅋ
어떻게 하면 변화시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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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10-02 1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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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글로 최선생님의 ' 곁지기 ' 되시는 분께 부담만 드리는 것 같습니다. 이제껏 살아온 습관이 어찌 마음 바꾸기가 쉬울까요. 봉사하시는 김에 끝까지 쭈~욱 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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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1-11-17 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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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즘 아내를 도와 청소며 설겆이등등 공유하며 삽니다. 퇴직하고 보니 내조하던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나 알게 되었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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