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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진화 |
날짜 : 11-09-25 01:07
조회 :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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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속의 사막
이진화
창문으로 스미는 가을볕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작은 유리병들을 모아놓은 문갑 위를 청소하다 낯설게 느껴지는 병 하나를 집어 들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대부분 향수나 크림형 향료가 담긴 병들 사이에 모래가 담긴 병이 끼어 있다는 것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 모래병을 오래 전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을 여행할 때 산 기억이 있다.
아기 손바닥만 한 유리병 속에는 모래로 그려진 풍경이 들어있는데 푸른 언덕과 하늘, 오아시스와 바다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사막에 사는 여인과 아이들은 핀셋으로 색색의 모래를 골라 담아 유리병 기념품을 만들어서 관광객에게 팔았다. 일부러 모래를 물들이지 않아도 사막에는 온갖 색상의 모래알이 섞여있다. 겉보기에는 무미건조해 보이는 사막이 실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채 쉬고 있는 땅이라는 지질학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때는 높은 산이었거나 깊은 바다, 또는 강이나 호수였던 사막에는 북청색, 옥색, 노란색, 붉은 색, 흰색의 모래가 섞여있는데 서로 다른 성분의 모래알이 모여 모래색이라는 대표색을 드러낸다. 그래도 설마 저렇게 선명한 색이 모여 모래색을 내랴 생각하다가 또 한 개의 모래병이 깨지는 것을 보고서야 오묘한 사막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한꺼번에 보면 모래색이지만 모래알 하나하나가 다른 성질과 빛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인류가 하늘의 별이나 바닷가의 모래로 비유되기도 했는데 그것이 단순한 숫자의 크기일 뿐 아니라 형형색색의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개체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별이라면 모를까 사막의 모래알이 각각 다른 성분과 빛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때때로 살아가는 일이 무미건조하고 힘겨울 때가 있다. 드넓은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지극히 왜소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만의 고유한 색깔과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길은 어쩌면 완전한 형질의 변화를 꿈꾸던 연금술사들의 자아 탐구여행인지도 모른다.
사실 사막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물이다. 지평선이 이어지는 사막을 달리다 보면 물항아리를 머리에 인 여인들이 어디선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고작 몇 개의 물항아리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사막족들은 며칠 후에 내릴 비의 냄새까지 예민하게 맡는다고 한다. 그만큼 자연과 밀착이 되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간다. 한 때는 그들이 편리한 도시나 강가가 아니고 척박한 사막에 남아 사는 이유가 무얼까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문명 세계가 줄 수 없는 비밀스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 머물 것이라고 이해를 하게 되었다. 원하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는 히말라야, 아마존, 시베리아 벌판, 가보지 못한 사막에도 지혜로운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사막은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종 낙심하여 나만의 색깔을 잃고 무채색으로 살아갈 때, 가난과 질병이 찾아와 막막하고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 누구나 목 타는 사막을 경험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래병 안의 사막처럼 매순간 나만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고유한 색깔을 찾아 누릴 수가 있다. 정말 힘들고 괴로울 때는 모래알처럼 한 점과 같은 시간에 집중한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동안 꽤 멀리 안전한 자리로 옮겨질 때가 있다. 상상력을 동원하면 유리병 속의 사막을 통해서도 제법 긴 마음의 여행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종종 시원한 바람이 부는 사막에 누워 별을 헤아리다 달빛 한 자락을 홑이불처럼 끌어당겨서 덮고 자는 것을 꿈꾼다. 꿈이 깊어지면 사막에 강이 흐르고 모래 속에 잠들었던 물고기의 알들이 부화하여 강물에서 뛰논다. 나는 그 장면에 박수를 치고 늘어진 야자나무 잎 사이로 탐스럽게 열린 야쟈와 대추야자를 따러 기어오르는 아이가 된다. 해가 떠오르는 사막에는 무지개빛 모래가 빛나고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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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09-25 1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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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하나의 색으로 보이는 모래 알조차도 제각기 다른 환경과 생성과정으로 인해 고유의 색상을 지니고 있는데 우리네 인간사야 말해 무엇할까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때로는 나만의 색깔도 내면서 살아가는 것,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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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9-28 0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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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그 색깔과 모양을 찾아내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세상이
참 재미있고 다채롭습니다.
나뭇잎들이 제각각 아름답게 물드는 가을날이 기다려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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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1-09-26 2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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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작은 모래알 하나에도 저마다 사연이 다 있으니, 세상 모든 사물이 이유 없는 것이 없습니다. 이진화 선생님 하시는 일 잘 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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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9-28 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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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선생님, 관심을 가져주시니 고맙습니다. 즐겁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내면에 감추어진 보물찾기가 마치 금광을 찾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가평에는 서울보다 먼저 가을이 다가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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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09-26 2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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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창으로 스미는 가을 볕이 점점 깊어만 집니다. 선생님의 글 오랫만에 대하니 그 또한 반갑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온 가을 편지처럼 편편이 아끼며 소중하게 읽었습니다.
' 꿈이 깊어지면 사막에 강이 흐르고,' 너무도 가슴설레이는 구절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시 건강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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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9-28 0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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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은 '감정을 흔드는 일(감동)'이라고 했는데 정말 가슴이 설레셨다면
저 역시 감동입니다, 임병문 선생님.
사막이 있는 나라에서 살았던 경험때문인지 사막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밤의 사막은 신비하고 매혹적이죠.
오늘은 낙타 타고 달 밝은 사막을 걷는 꿈이나 꾸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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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9-27 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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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주인공인 유리병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바쁜일과 중에도 이렇듯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재능은 아마도 선생님이 아니고는 해 낼 수 없는 상황인 듯 합니다. 어느 일 하나 뻬놓을 수 없이 완벽한 선생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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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9-28 0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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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명화 선생님,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아 주시니 고맙습니다.
요즈음은 사물과 사람을 좀더 깊이 있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함께 모아 준비하는 동인지가 잘 나왔으면 좋겠고,
출판기념회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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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10-03 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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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완벽이라는 말씀 거두어 주소서.
문학을 포함한 예술이란 자고로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완벽하면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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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1-10-01 0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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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주먹 만한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북아프리카 리비아 백사막(사하라사막)에서 하루를 보낸 일이 위 글을 보니 생각나네요. 그리고 혜초 스님이 갔다는 우루무치에서 둔황까지 갔다가 월아천에서 본 사막도.
"나는 종종 시원한 바람이 부는 사막에 누워 별을 헤아리다 달빛 한 자락을 홑이불처럼 끌어당겨서 덮고 자는 것을 꿈꾼다."는 구절이 그중 마음에 와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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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10-03 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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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도 사하라 사막에 가보셨군요.
저는 이집트에서 2년 간 살다와서 그런지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있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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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1-10-02 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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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글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진화 선생님 글을 읽으며 행복을 느낍니다.
유리병 속 모래알을 들여다보며
깊고 넓은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글 재주가 부럽습니다.
전 방송 일에 몰두하다보니 이런 사색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어요.
가을이 가기 전에 글 한 편 쓰고 싶은데 마음뿐이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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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10-03 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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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선생님은 존재 자체가 행복감을 주는 분입니다.
하늘이 맑고 구름이 아름다운 계절에 좋은 작품 낳으시기 바랍니다.
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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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1-10-03 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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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재, 사유가 균형을 이룬 좋은 수필이라 생각됩니다, 이진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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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10-03 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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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선생님, 그동안 저의 글이 좀 차갑다는 평이 있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었으면 합니다.
가을이 되었으니 생각보다 느낌을 찾아 마음의 여행을 떠나 볼까 합니다.
오늘은 개천절, 창덕궁 산책을 하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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