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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동호 |
날짜 : 11-09-19 21:12
조회 :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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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물
정동호
강물은 멈출 줄 모른다. 밀어내고 밀려가고 째깍 째깍 소리 내며 흐른다. 생성과 소멸이 있을 터, 어디서 생겨나 어디로 가는가.
강물의 발원지가 한두 곳 뿐일까 만, 진주 남강의 발원지는 두 군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장 높은 곳은 지리산 천왕봉 턱 밑 천왕샘이요, 가장 멀리는 남덕유산 중턱의 작은 약수터 참샘이다. 천왕봉 암괴와 덕유산 봉우리가 하늘의 은총으로 잉태하여 세상에 내보내는 생명수다.
작은 옹달샘에서 등산객들을 마중하다가 가는 물줄기가 사부자기 세상을 향해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어머니 탯줄을 떼 낸 갓난아이같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길인지도 모른 채 자드락길을 따라간다. 죽을 고비를 맞고 어려운 일도 수 없이 겪으며 용케도 살아간다. 어머니 품이 그리워도 돌아가지 못하고 낮은 곳을 향해 쉼 없이 가야만 한다. 때로는 땅속이나 바위틈에 숨어서도 생명을 이어 간다. 순리요 운명이다.
가는 곳마다 낯선 길, 갈수록 호기심이 인다. 지나온 길보다 새로운 세상이 더 행복할 것 같은 기대감에 발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빨리 갈수록 종말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은 왜 해 보지 못하는지.
물은 뭇 생명의 근원이요 힘의 원천이다. 그가 없이는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고 세상의 질서도 흐트러지고 만다. 그는 끊임없는 자정의 노력으로 스스로 깨끗함을 유지할 뿐 아니라 주위의 온갖 찌든 때와 더러운 것들을 정화해 가며 흐른다. 물과 같은 존재들이 세상에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세상을 시원케도 하지만 때로는 성난 파도같이 사나울 때도 있다. 폭우가 내리면 여러 계곡의 동류들이 한데 뭉쳐 성난 폭군으로 돌변한다. 큰 바위도 구부러뜨리고 산모롱이 옆구리도 할퀸다. 눈을 부라리며 곧추서서 어리석은 군상들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자연의 위용으로 세상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거칠던 바위들을 두루뭉수리 다듬어내고, 모나고 쪼뼛쪼뼛했을 돌멩이들은 만질만질한 냇가 돌로 바꾸어간다. 가장 부드러운 것이 참다운 승자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천왕샘에서 출발한 덕천강과, 참샘에서 시작한 경호강은 진양호에서 만난다. 잔잔한 호수, 평화로운 세상에서 이제 더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순간을 맞는다. 가뭄에 시달리며 굽이굽이 돌아오느라 힘겨웠던 일들이며 절벽에서 곤두박질까지 쳐가며 살아 온 지난 세월들이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요즘같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예전에 언제 있었던가. 물질적인 풍요와 문화적인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세상.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살까. 더 오래 살까. 재미있게 살까. 욕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세상이 허락하던가. 때가 이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뒤따라오는 세대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호수일 뿐이며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유한한 생명인 것을. 결국 물막이에서 밀려나고 만다.
비로소 남강이다. 이제는 가야할 길이 훤히 보이는 외길이다. 지난 삶을 돌아본다. 의미 없고 무가치한 세월은 결코 아니련만 회갑의 년 수가 어찌 그리도 쉬 지나간 것일까. 논배미마다 들락거려 녹색혁명을 일으키고, 채전(菜田)에서는 백색혁명도 이루어 냈다. 배고픔의 사천년 한을 풀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딴에는 많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모두가 지난 일이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진주 시내를 허리 삼아 S자로 빙빙 돌아가고, 뒤벼리 새벼리에서는 소용돌이까지 쳐보지만 무심한 물살을 막대로 막아 내겠는가, 가시로 막겠는가. 세월만 재촉 당할 뿐이다.
계곡을 굽이돌며 바윗돌을 간질이고 꽃도 보고 단풍도 구경하던 좋았던 시절, 개구쟁이들 물장구도 받아주고 피라미 송사리들과도 어울렸던 일들, 새소리에 맞춰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며 즐거워했던 지난 추억하며 순응할 밖에.
의령 함안을 거쳐 낙동강 본류를 만나면 을숙도에서 몸 풀 일만 남는다. 멀리 태백에서 내려왔건 지리산에서 내려왔건 다함께 남해바다에 빠지고 만다.
자신의 정체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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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1-09-20 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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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생애를 인생과 비유한 글로 이 아침을 엽니다.
물이 흐르는 것을 가만히 보면 윗물(뒷물)에 밀려서인 것이 우리 인생사 같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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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9-27 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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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이치는 인간의 삶과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선생님의 길을 읽으며 다시금 제 생각에 동감의식을 느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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