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대/기획특집1-수필의 창

퓨전수필의 의미와 전망

최원현

nulsaem@hanmail.net

퓨전수필의 의미

근래 들어 장르를 초월한 예술 연합의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작과 소통과 향유는 생산과 유통과 소비만큼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생산에서 소비로 직거래가 되는 것처럼 문화도 예술가(작가)와 향유자(독자)가 자유롭게 접촉을 하고 그게 문화적 경제창출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힘이 생긴 예술인 계층도 형성 되었다. 뿐 아니라 예술가들만의 세계였던 것이 커뮤니티 아트로 공공예술이 되고 예술가의 집이 작업실이 되는가 하면 못 쓰게 된 공장시설이 예술창작 내지 문화공간도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창작·발표·향유가 제각각 이루어져 시민(향유자)의 삶과는 분리되어 있을 수밖에 없던 기존 예술 경향에서 창작-소통-향유가 하나의 장에서 가능한‘삶과 예술의 총합성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김윤환-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추진단장)이 되었고 그렇게 시민들이 문화의 주체가 되어가면서 시민(독자·관객)과 예술가(작가)의 활발한 접촉이 예술대중화 내지 예술소비시장의 확대로까지 이어지게 한다.

문학에서도 그런 시도들이 보인다. 문자라는 한계성을 갖던 문학에서 시각·청각적 문학이 시도되고, 그것도 단순히 듣고 보는 것이 아니라 첨단의 과학이 활용된 음악, 미술 및 전위적인 요소들까지 가세하여 종합영상문학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퓨전(fusion)은 이러한 창작-발표-소통-향유가 보다 자유롭고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여 문학 곧 그 작품이 추구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것을 보다 확실하게 제공될 수 있게 하는 노력이요 현상일 수 있다.

퓨전(fusion)이란 말은‘융합시키다’라는 동사 'fuse'가 명사화 된 것으로‘용해 또는 융해’의 뜻인데 원자력의 결합이나 정당들의 연합 내지 합동 같은 뜻으로 사용되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퓨전’이 문학에선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른 통합과 해체로 새로운 영역을 확보하는데 곧 시와 음악, 수필과 음악이 어우러지고, 시와 수필, 시와 수필과 음악, 시와 수필과 미술이 하나가 되어 독자들 속으로 파고들며‘fusion art'를 이루면서 창작-발표-소통-향유를 함께 누리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도 움직이는 영상과 입체적인 음향 내지 글 내용에 맞는 색감과 그림으로 독자에게 나아가면서 전달의 폭과 깊이를 확대하려 한다.

‘퓨전은 기존의 것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경계를 해체함으로 다양한 가치와 그로 인한 존재의 의미를 확대하고자 불기 시작한 참신한 바람이다’(퓨전수필을 말하다 중)라고 윤재천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에서 더 나아가 퓨전은 해체보다 형질을 변형시켜 재창조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기존의 것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경계’를 인정하면서 그것을 더 새롭게 해석하고 의미를 유추해 부여함으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가치와 존재 의미의 확대 그것이 바로 참신한 바람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냥 보았을 때는 밋밋한 모습이었는데 조명을 비추니 전혀 다른 이미지가 창출되었다면 그것은 기존의 고유한 경계를 해체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α를 하여 새롭게 재해석 했다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고유의 것 곧 우리의 오감(五感)으로만 보고 생각했던 것에 현대과학 그리고 3C(Contents-내용. Community-공동체. Commerce-경제성) 3D(Digital. Design. DNA), 3F(Female. Fiction. Feeling) 등 21세기의 특성이란 프리즘에 통과시켜 독자에게 내보내는 것이요, 그렇게 해서 보다 잘 공감하고 동감하고 감동 감격하는 단계까지 이루어가는 것이 퓨전수필이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게 어디 문학이냐 할 수 있다. 그러면 문학작품이 T.V 문학관으로 방영되면 그건 문학일까 영화일까. 영화로 실감나게 감상을 했으면서도 그것은 문학작품이라고 분명히 인식한다. 다만 그걸 영상을 이용해 보았다고 생각한다. 보는 방법이 영상이었던 것이고 그래서 독자는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실감나게 보게 되었다. 다만 이러한 모호해 질 수 있는 개념의 경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규정하는가 하는 것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퓨전수필은 수필작품을 독자에게 보다 현실감 있고 감동적이게 보여줄 수 있도록 현대사회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제반 과학적 기술적 역량을 첨가하여 문학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독자의 향유도와 향유의 폭을 증가시키도록 생동적으로 표현한 수필이라 할 수 있다.

퓨전수필의 전망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필름카메라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나 역시 필름카메라가 있지만 디카를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도 정성들여 셔터를 누르던 필카에 대한 미련과 향수는 여러 장을 찍어 맘에 안 드는 것들은 아무 부담 없이 지워버리는 디카를 쓰는 순간에도 늘 일어난다. 그렇다고 디카를 남겨두고 필카를 꺼내 사용하진 않는다.

지금도 원고지에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 나도 경험한 바이지만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쓰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글이 되어 나간다. 되어나간다는 말은 원고지 칸을 메워 나가는 순간에도 글자들이 살아서 더 좋은 말로 바뀌고 더 좋은 다음 문장을 이끌어온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이 시대가 그런 육필원고를 받아주지도 않기 때문에 다시 컴퓨터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다 수정과 퇴고를 거듭 할 때 편리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화의 시대에 변화에 적응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변화이기에 문학 또한 표현과 전달의 방법이 변하고 있다. 매체의 중심이 문자에서 영상으로 전환되면서 책이라는 전통적인 텍스트공간까지 변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는 사이버시대다. 수필에도 현대성이 필요하다. 바로 디지털 시대, 사이버시대에 맞는 수필쓰기다. 우선 글쓰기의 도구가 디지탈화 하고 있다. 컴퓨터를 사용한 글쓰기에 사이버공간에서의 소통체험은 더욱 많은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뿐 아니라 소재도 과학적 접근에서 이뤄진다. 감정보다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에서 찾게 된다. 바로 과학적 소재의식이다. 그런가 하면 표현도 과학적이 된다. 이미지의 표현을 위해 이모티콘이나 그림 도표 기호도 사용하고 여백도 의미화 된다. 여기에 구성도 과학적이 된다. 정형화된 단락을 깨트리는 구성으로 고정관념 해체의 효과를 부여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글쓰기가 이뤄지고 있다. 단순한 글쓰기에서 영상이 추가된 글쓰기다. 전통이 무시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받는 현상이다. 과감하게 기존의 타성에서 벗어나 변화에 맞는 새로운 글쓰기로 기존의 틀 해체가 필요하다. 여기서 퓨전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현상으로 수필은 독자에게 더욱 쉽고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그렇다고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더욱 격을 높이는 발전적 형태를 취해야 한다.

혹자는 퓨전은 잡탕이라 참 맛을 낼 수가 없고 본연의 격을 잃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 나 또한 그런 염려를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빔밥을 보고 세계인들은 놀란다. 절묘한 혼합의 비밀이다. 따로 따로 먹을 때보다 함께 비벼먹을 때만 나타나는 맛의 비밀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세련미가 덜한 수제품만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희귀성 때문에 더 고가로 팔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대는 매순간 선택을 위한 결단을 요구한다. 3C, 3D, 3F로 대표되는 이 시대에 수필을 쓰는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첫째, 퓨전수필은 기존 수필문학의 품격을 더욱 높이는 것이 될 것이다.

기존의 것이 없어져서 새로운 형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고유성과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보다 격 높은 문학의 품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때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채 그 이상을 시도하거나 추구한다면 사상누각(砂上樓閣)